학촌 이범선의 작품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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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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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학촌 이범선의 작품세계
영상문학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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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선의 연보
호는 학촌(鶴村).
1920년 평안 남도 안주군 신안주면 운학리 출생
1938년 진남포 상공학교 졸업.
( 평양에서 은행원으로 근무하다가 일제 말기에 평북 풍천 탄광에 징용됨 )
1949년 동국대 국문과 졸업.
1954년 거제고교 교사, 그후 대광고교 교사 (오랫 동안 교직자 생활을 함.
1955년 『현대문학』에 < 암표 >와 < 일요일 >로 등단 (김동리의 추천)
1960년 제 4회 현대문학 신인상 수상 < 갈매기 >
영상문학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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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리문화사에서 단편집 을 간행하였다. 이듬해에 그의 대표작이라고 불려지는 을 발표하고, 신흥출판사에서 단편집 을 간행하였다. 그의 작품은 문장력이나 구성에 있어 빈틈이 없을 뿐만 아니라 토착적인 정서를 담으면서도 현실에 대한 성찰과 비판을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1961년「오발탄」으로 동인문학상 수상
(같은해 작품은 유현목 감독에 의해서 영화화된다. 이 영화 오발탄에는당시 유명 배우였던 김진규, 최무룡, 문정숙 등이 출현하였으며, 6ㆍ25 전쟁 후에 나타난 한국 사회의 빈곤과 부조리를 고발적으로 그렸다는 점과 철저한 리얼리즘에 입각한 영상을 추구하였다는 점에서 전후 최대의 문제작으로 평가되었다.
영상문학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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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십 분이 넘는 주인공 영철(소설 속의 철호)의 마지막 방황 장면은 이 영화가 제시한 영상적인 리얼리즘의 순수하고 시적인 표현으로 주목 받았다. 한편 이 영화는 그 주제의 심각성과 표현의 무서운 현실성으로 5ㆍ16 군사 쿠데타 직후 한때 상영이 금지 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작품성을 인정 받아 제7회 샌프란시스코 영화제에 출품되기도 하였다.)
1962년 외국어대 전임 강사, 오월문예상 수상
1970년 제 5회 월탄문학상 수상< 청대문집 개>
1982년 뇌일혈로 사망
영상문학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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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선 작품의 배경
크리스트교의 영향, 풍족한 경제생활.
이범선의 소설에는 하나같이 선량하고 욕심 없는 서민층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데 독특한 것은 그 인물들이 대부분 북에서 월남한 실향민이라는 것이다. 그는 청소년 시절에 크리스트 교의 영향 밑에서 경제적으로 풍족한 생활을 누렸던 것 같다. 어린 시절 보통학교에 다닐 때 눈비가 오는 날이면 머슴의등에 업혀 학교에 다닐 정도였다.
영상문학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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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을 떠나 월남하다.
“그건 그래. 하지만 나는 마을이 그리워서 못 견디겠다. 앞들, 뒷산, 그리고 어머니, 아버지, 얌전이, 갑돌이. 이렇게 저녁 무렵이면 난 그 마을 서산의 빨갛게 타던 노을이 미치게 그립다. 그리구 밤이면 그 초가 지붕 처마 끝이나 낟가리 속의 따스한 보금자리.사실이지 전에 그 속에서 잘 때는 겨울밤이 그렇게 길고 추운줄은 몰랐었단 말야!” 등의 실향민의 고향의식이 들어난다.
단편 중에서…
영상문학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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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의 영향
이후 그는 6ㆍ25 전쟁 때 피난하지 못하고 서울에서 3개월간을 숨어 지냈으며, 1ㆍ4 후퇴 때 부산으로 피난하면서 전쟁의 참상과 인간의 타락상을 체험하는 등 어려운 시기를겪는다.
이범선은 창고에서 지내면서 부두 노동자 생활을 하고 아이들은 내내 질병에시달렸다. 1950년대의 이범선은, 아니 그 이후에도 계속 그의 관심은 전쟁과 전쟁이 남긴 상처에서 쉽사리 떠나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