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직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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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직할시 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 개성직할시(開城直轄市) >
경기도 북서쪽에 있는 시로 북동쪽은 강원도 철원군, 남동쪽은 군사분계선을 경계로 연천군파주시와 접하고 서쪽은 예성강을 경계로 황해남도 배천군, 남서쪽은 한강을 경계로 김포시강화군과 마주하고 있으며, 북쪽은 황해북도 금천군토산군과 접하고 있다. 행정구역은 개성시(開城市)개풍군(開豊郡)장풍군(長豊郡)판문군(板門郡) 등의 1시 3군으로 이루어져 있다. 면적은 1,308.6㎢, 인구 381,774 추정된다.(1991)
◆ 개성시
개성직할시 북부 중앙에 자리한 시로 동쪽은 장풍군, 서쪽은 개풍군, 남쪽은 판문군, 북쪽은 황해북도 금천군과 접해 있다. 행정구역은 손하덕암부산동현용산동흥삼거산성신성용흥 등 10개 리와 학운만월고려역전태평자남북안관훈남안선죽해운보선남산송악남문서문송지고덕대운사직 등 20개 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고려의 수도로서 신라시대 후기의 행정단위를 송악군과 개성군으로 개편하면서 개경 또는 송도로 불렸다. 919년 고려 태조 왕건이 이곳에 도읍을 정하고 개성군과 송악군을 통합하여 개주라 하였으며, 960년에는 개경, 995년에는 다시 개성부로 개칭했다. 1394년 조선 태조가 한양으로 수도를 옮기면서 개성유후사(開城留侯司)를 두었다가 1438년에 다시 개성부로 고치고 유수를 두었다. 1895년 13개 군을 관할했고 1906년 개성군이 되었다. 1930년 부제 실시에 따라 송도면과 청교면의 덕암리, 중서면의 관전리, 영남면의 용흥리가 통합되어 개성부가 되었으며, 이외의 지역에 개풍군을 신설했다. 1949년 시제 실시에 따라 개성시가 되었으나 625전쟁 후 북한 관할하에 들어갔다. 1952년 행정구역 개편 때 개풍군을 편입하고 황해북도에 속하다가 1955년 개성시개풍군판문군이 합쳐져 개성직할시가 되었다.
시의 북부를 제석산(749m)천마산(762m)화장산(588m)송악산(489m) 등의 험한 바위산이 둘러싸고 있으며, 남쪽은 화강암의 삭박작용 삭박작용 : 침식작용에 대응하는 말이다. 삭박작용에 의하여 가동성을 가진 물질이 주로 중력(重力)의 작용으로 아래쪽에 이동하여 토지를 평탄화한다. 침식작용이 선적(線的)으로 작용하는 데 비하여 이 작용은 면적(面的)이다. 넓은 의미로는 침식작용까지 포함하여 사용되므로 침식작용과 혼동되기도 한다.
으로 된 개성분지를 이루었다. 박연천이 시의 북부에서 북류하여 황해북도 금천군을 거쳐 예성강으로 흘러들고 마미천이 시의 중앙부를 남쪽으로 흘러 판문군을 지나 사천강과 합류한다.
개성시는 고려시대 이래의 행정교육문화상업 중심지로서 예로부터 고려자기와 고려인삼이 유명하다. 시내에는 개성성터를 비롯하여 만월대첨성대성균관남대문선죽교 등 고려시대의 유물유적이 많고 역사박물관이 있다. 천마산 북쪽에 있는 박연폭포가 유명하다. 본 시는 625전쟁 이후 분계연선지대(分界沿線地帶)로 지정되어 외부의 출입이 제한된 통제구역에 해당된다. 북한의 남쪽 관문으로서 판문점과 연결되어 있으므로 시가지가 잘 정비되어 있고 문화 관광도시로 개발되었다. 인구 130,500 추정된다.(1988)
◆ 개풍군
개성직할시 남서부에 자리한 군으로 북동쪽은 개성시, 남동쪽은 판문군, 서쪽은 예성강을 경계로 황해남도 배천군과 접하고 있다. 남쪽은 한강을 사이에 두고 인천광역시 강화군과 마주하며, 북쪽은 황해북도 금천군과 접해 있다. 개성직할시의 1개시 3개군 중 하나로 현재의 행정구역은 개풍읍과 연강신서삼성남포신광의포도원해평신성광수묵송광랍오산고남해선연릉묵산여현 등 1개 읍, 18개 리로 이루어져 있으며, 군 소재지는 개풍읍이다.
개풍군은 본래 풍덕군과 개성군의 일부가 통합되어 만들어진 군이다. 옛 풍덕군은 고구려의 정주였는데, 1018년 고려 현종 때에 개성현에 속하여 상서도성의 관할이 되었다. 그후 해풍군이 되고 조선시대에 개성유후사에 예속되었다가 세종 때 풍덕군으로 개칭되었다. 1914년 군면 폐합 때 개성군에 병합되고 1930년 지방 행정제도 개혁에 따라 개성군 중에서 송도면은 개성부로 승격하고 나머지 개성군과 옛 풍덕군이 통합되어 개풍군이 되었다. 1945년 국토가 분단되면서 북면연남면영북면이 38°선 이북의 북한 관할하에 들어갔으며, 1950년 625전쟁 이후 군의 전 지역이 군사분계선 이북 땅이 되었다. 1952년 행정구역 개편 때 군의 동남부가 분리되어 판문군이 신설되었고, 1954년에는 황해북도에 일시 속했다가 1955년에 개성직할시에 편입되었다. 그후 1961년 황해북도 금천군의 일부를 흡수하여 현재의 개풍군이 되었다.
북동부는 높고 남서부로 가면서 점차 낮아지는 구릉지가 많다. 북동부는 아호비령산맥의 말단부가 뻗어내려 송악산(489m)봉명산(411m) 등의 낮은 산들이 서해 쪽으로 뻗어 있고, 남부와 서부에는 비옥한 충적평야가 펼쳐져 있다. 예성강과 한강이 군의 남서쪽에서 만나고 그 지류인 죽배천과 금성천이 합류하면서 풍덕벌신광벌섬성벌을 이루었다. 지층은 화강암이 많고 점판암과 석회암이 분포하며, 상부지층에 적갈색 삼림토가 넓게 덮여 있다. 또한 하천연안과 저지는 점토질의 충적토양으로 이루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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