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존 던 피할 수 없었던 개종에 대하여

 1  시인 존 던 피할 수 없었던 개종에 대하여-1
 2  시인 존 던 피할 수 없었던 개종에 대하여-2
 3  시인 존 던 피할 수 없었던 개종에 대하여-3
 4  시인 존 던 피할 수 없었던 개종에 대하여-4
 5  시인 존 던 피할 수 없었던 개종에 대하여-5
 6  시인 존 던 피할 수 없었던 개종에 대하여-6
 7  시인 존 던 피할 수 없었던 개종에 대하여-7
※ 미리보기 이미지는 최대 20페이지까지만 지원합니다.
  • 분야
  • 등록일
  • 페이지/형식
  • 구매가격
  • 적립금
자료 다운로드  네이버 로그인
소개글
시인 존 던 피할 수 없었던 개종에 대하여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시인 존 던 - 피할 수 없었던 개종에 대하여
17세기 영국을 대표하는 시인 존 던(John Donne)에 대한 연구는 끊임없이 진행 중이다. 논쟁되고 있는 던의 종교적인 ‘배교’냐 ‘개종’이냐에 대해 그의 작품과 일생을 중심으로 다루어 보고자 한다. 먼저 배교와 개종의 정확한 의미와 그 차이를 정의하고자 한다.
종교학대사전에 따르면 배교(背敎)는 믿고 있던 종교에서 다른 종교로 바꾸는 것, 또는 비종교적 입장으로 이행하는 것이며 기교(棄敎)라고도 하며, 모두 포기된 종교 측에서의 비난을 담은 표현으로서 이용되는 경우가 많은데 주로 그리스도교 세계에서 큰 문제가 되었다. 개종(改宗)이란 특정 종교의 신앙을 다른 것으로 바꾸는 것, 이는 외발적인 것과 내발적인 것으로 구분된다. 전자는 가족이나 직업 등의 요청에 의해서 공동생활을 원활하게 수행하기 위해서 행하여진다. 후자는 아픈 인생체험에 의해서 자기가 속하는 종교에 의문을 가져서 발생하는 것으로 회심(回心)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서구세계에서는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 상호간에 많이 나타내며, 특히 가톨릭에서 타파로 옮기는 경우에는 기교(棄敎), 이교(離敎), 배교(背敎) 등으로 불린다.
존 던이 살았던 영국의 상황을 살펴보면 엘리자베스 1세가 즉위한 이후에는 종교적인 믿음은 변하지 않았고, 가톨릭과 공존하였다. 하지만 대학의 학위를 받거나, 관직을 얻기 위해서라면 영국국교회에 대한 최소한의 외적인 ‘개종’을 해야 하였으며, 영국국교회에 나가야만 완전한 영국인으로 여겨졌다. 그리고 영국국교회의 예배와 기도 그리고 의식을 통일하기 위하여 영국의회가 1549년에서 1562년까지 4차에 걸쳐 제정 및 공표한 통일령과 영국의 종교개혁에 있어서 국왕은 영국국교회의 ‘유일 최고의 수장’으로 규정한 수장령이 엘리자베스 치하에 통과되었고 그 결과 가톨릭들에게 개종을 장려하는 억압적인 환경이 조성되었다.
이렇듯 그 당시의 영국의 역사적 상황과 던의 일생을 중심으로 하여 던을 ‘배교자’라기 보다 ‘순응 순응(順應) : 환경이나 변화에 적응하여 익숙하여지거나 체계, 명령 따위에 적응하여 따름. (심리)환경의 변화에 따라 유기체의 형태, 구조기능이 환경조건에 가장 알맞은 상태로 변하는 현상.
자’이면서 ‘개종자’로 보며 글을 써내려가고자 한다.
그의 일생을 중심으로 : 피할 수 없었던 ‘개종’
존 던의 일생을 지도처럼 펼쳐서 보면 던은 부모님이 가톨릭이었으며 그의 어머니는 작가이자 순교자인 Thomas More경의 조카딸이었다는 사실은 익히 알고 있을 것이다. 우리가 말하는 모태신앙이라고 하는 것처럼 던의 성장기 시절 역시도 가톨릭 신앙과 문화에 많은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특히나 논의가 많이 되고 있는 그의 1591년의 초상화의 ‘변화하기 전에 먼저 죽을 것이다.’라는 모토는 Walton의 관점(내가 얼마나 바뀔까, 내가 변하기 전에)에서는 다르게 해석하였지만 그의 일생과 가톨릭적인 영향, 그리고 작품 속에 드러난 종교와 그에 대한 양심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에 ‘sooner dead than changed : 변화하기 전에 먼저 죽을 것이다’라고 주장한 여러 학자들의 의견에 동의한다. 특히 앞서 말한 Henry Goodyer에게 그리고 Robert Ker경에게 썼던 편지에 두 개의 교회 모두 완벽하지만 어느 쪽이든 구원받을 수 있다고 하면서 이전의 성향(로마 가톨릭)을 지우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 하다. 또한 ‘나의 교리는 항상 내가 태어난 종교의 보존을 위해, 그리고 국가의 평화와 양심을 바로 잡기 위함이다.’라고 말하였다. 당시 그가 받았던 사회적인 종교적 강요에 의한 나름대로의 소신을 표현했다고 생각한다.
던의 삶을 살펴보면 Oxford, Cambridge, Lincoln’s Inn에서 공부하였지만 영국국교회에 충성을 서약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학위를 받지 못했던 점, 1593년 동생 Henry가 가톨릭 신부를 은닉시켜 주었다 하여 감옥에 투옥되어 옥사하였던 일, 1601년의 Anne More와의 비밀 결혼으로 인한 Thomas Morton경의 비서직에서 해고되었던 일, 1602년경에는 Goodyer에게 Anne과의 비밀결혼으로 마땅한 직업이 없이 생활고에 시달렸던 것으로 생각되며 사회적 소외감이나 성공의 욕망에 대해 편지에 털어놓았다.(최재헌, 다시 읽는 존 던, p.105)
그리고 1606년 Mitcham에서의 경제적으로 궁핍한 삶과 능력은 있지만 종교라는 사회구조적인 문제로 인하여 평범한 삶조차 그에게는 주어지지 않았다. 특히나 그가 Mitcham에 있을 때 친구들에게 쓴 편지들에도 그의 상황을 보여준다. 이렇듯 그 당시 종교와 국가의 상황이 개인에 끼치는 영향을 던이 대표적으로 보여준다. 실제 던의 가족들은 종교라는 이름으로 처형을 당했기 때문에 심리적으로 그가 자라오면서 종교는 성스러운 것과 동시에 두려움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특히나 평범한 삶조차 그에게 허락되지 않자 조금씩 그는 사회적으로 순응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가 없다는 것을 점차 깨닫게 되었을 것이고 그 하나의 방법으로 외면적으로 개종을 시도하였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이후 1610년의 가짜순교자(Pseudo-Martyr)를 출판하고 1611년 첫 번째 기일(The First Anniversary)로 Robert Drury경의 후원을 받으며 그 전보다는 나은 삶을 살게 된다. 이것이 아마 그가 행했던 첫 번째로 순응하고 외면적으로 개종을 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참고문헌
참고문헌
1) 최재현. 다시 읽는 존 던. 경북대학교출판부, 2013.
2) Donne, John. John Donne : The Complete English Poems. Ed. A. J. Smith. London: Penguin, 1996.
3) The Oxford handbook of John Donne. Ed. Jeanne Shami, Dennis Flynn, M. Thomas Hester. Oxford. 2011.
4) 종교학대사전, 네이버 종교학대사전. 한국사전연구사. 19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