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 여의 실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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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 여의 실체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부여의 실체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 P.38에 나와있는 내용을 살펴보자.
부여는 만주 길림시 일대를 중심을 송화(쑹화)강 유역의 평야 지대를 중심으로 성장하였다. 농경과 목축을 주로 하였고 특산물로는 말, 주옥, 모피등이 유명하다.……부여는 연맹 왕국의 단계에서 멸망하였지만 역사적 의미는 매우 크다. 그 이유는 고구려나 백제의 건국세력이 부여의 한 계통임을 자처하였고, 또 이들의 건국 신화도 같은 원형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부여는 지금까지 실체에 대해서도 논란이 되고 있다. 교과서에서는 한 페이지 정도로 요약되어있지만, 고구려와 백제의 근원이라고 하는 큰 역사적 의미를 가지고 있는 부여를 우리는 다시 생각해 보고 구체적인 내용을 파악 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특히 요즘 이슈가 되고 있는 동북공정과도 연결하여 생각 해 볼 수 있는 문제이다.
◎ 北扶餘東扶餘卒本扶餘扶餘
고대 문헌에서는 성격이 다른 여러 종류의 부여가 있었음이 확인된다. 이러한 성격이 다른 여러 부여에 대해 먼저 알아보는 것이 부여의 실체를 확인하는 데 있어 선행해야 할 작업일 것이다. 따라서 먼저 여러 문헌에 등장하는 북부여, 동부여, 졸본부여, 부여 등의 존재에 대하여 확인해 보고자 한다.
『三國遺事』에서는 북부여와 동부여에 대해 각기 독립된 항목으로 나누어 서술하고 있다. 북부여에 대해서는
『고기』에 이르기를 前漢의 선제 신작 3년 임술 4월 8일에 하느님이 흘승골성에 내려와서 오룡차를 타고 도읍을 정하여 왕이라 칭하며 나라 이름을 북부여라 하였다. 스스로 이름하여 해모수라 하였는데 아들을 낳아 이름을 부루라 하고 해로써 씨를 삼았다. 왕은 후에 상제의 명으로 도읍을 동부여로 옮겼다. 동명제가 북부여를 계승하여 일어나 졸본주에 도읍하여 졸본부여라 하였는데 바로 고구려의 시조이다. 『三國遺事』卷1 「紀異」〈北扶餘〉條. “古記云. 前漢書宣帝神爵三年壬戌四月八日. 天帝降于訖升骨城. 乘五龍車. 立都稱王. 國號北扶餘. 自稱名解慕漱. 生子名扶婁. 以解爲氏焉. 王後因上帝之命. 移都于東扶餘. 東明帝繼北扶餘而與. 立都于卒本州. 爲卒本扶餘. 卽高句麗之始祖.”
라고 하고 있고, 동부여에 대해서는
북부여왕 해부루의 상이었던 아란불이 꿈을 꾸었는데 하느님이 내려와 이르기를 “장차 내 자손으로 하여금 이곳에 나라를 세우도록 하려 하니 너는 이곳을 피하라. 동쪽의 바닷가에 가엽원이라 이름하는 땅이 있는데 토양이 기름지니 왕도를 세우기에 알맞다”고 했다고 하였다. 아란불이 왕에게 권하여 도읍을 그곳으로 옮기고 나라 이름을 동부여라 하였다. 『三國遺事』卷1 「紀異」〈東扶餘〉條. “北扶餘王解扶婁之相阿蘭弗夢. 天帝降而謂曰. 將使吾子孫. 立國於此. 汝其避之. 東海之濱. 有地名迦葉原. 土壤膏. 宜立王都. 阿蘭弗勸王. 移都於彼. 國號東扶餘.”
고 기록되어 있다. 여기에 북부여, 동부여, 졸본부여의 존재가 확인되고 있다. 북부여왕 해부루가 동쪽의 가엽원이라는 곳으로 옮겨 동부여를 건국했으며 동명제(동명성왕)는 졸본부여라는 곳에서 고구려를 건국했다는 것이다.
졸본부여에 관한 기록으로는 『삼국유사』에
참고문헌
참고문헌
* 한국학 논집 10권(1983) 동부여에 관한 몇 가지 문제에 대하여(계명대)
* 서병국, 동이족과 부여의 역사, 혜안, 2001.
* 한국사고대논총 5집(1993 - p37~p68) 노중국, 주몽의 출자전승과 계루부의 기원(한국고대사연구소)
* 상명사학 제3,4합집(1995 - p447~p480) 윤내현, 부여의 분열과 변천(상명사학회)
* 송호정, 한반도와 중국 동북 3성의 역사 문화- 고고학 자료를 통해 본 부여의 기원과 그 성장과정(441~474), 서울대 출판부, 1999.
* 강경구, 고구려의 건국과 시조 숭배, 학연문화사, 2001.
* 김기흥, 고구려건국사, 창작과 비평사, 2002.
* 손영종, 고구려사의 제문제, 신서원, 2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