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당사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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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 견당사에 대하여-
견당사(遣唐使)는 무엇인가?
견당사란 당(唐)이 건국된 이후 일본이 당나라에 파견한 일종의 사신이다. 이러한 견당사 파견의 목적은 의례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물적 교환을 통한 무역활동, 새로운 사상을 받아들이는 창구로서의 역할 등 여러 가지로 정리해 볼 수 있다.
견당사의 시초는 견수사(遣隋使)이다. 당시 일본은 쇼토쿠(聖德)태자의 섭정아래 국가적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불교를 장려함으로써 화려한 아스카 문화 : 일본 최초의 불교문화. 한반도 등에서 건너간 것으로 중국, 그리스, 페르시아, 인도의 영향이 미친 국제적인 색체가 농후한 문화이다. 백제문화의 연장이라고도 한다.
아스카 문화(飛鳥文化)가 발달하고 있었다. 쇼토쿠 태자는 외국문물(불교)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데 그치지 않고 당시 선진국이라고 일컬어지는 수나라에 사신단을 파견하는데, 이것이 바로 견수사이다. 607년 첫 파견된 견수사는 사신의 역할뿐만 아니라 수나라의 제도와 학문, 법률, 기술 등을 배우는 데 힘썼다.
이때부터 일본은 백제 등 한반도의 영향보다는 중국의 영향을 더 크게 받게 된다.
618년 수나라가 망하고 당나라가 중국의 주인이 되면서 그 이름을 견당사로 바꾸게 된다.
630년 제 1회 견당사가 파견된 이래, 894년 건의에 의해 폐지될 때까지 견당사는 13회 파견되었다. 특히 견당사의 전성기라고도 할 수 있는 8세기에는 그 조직도 대규모이었으며(한 회에 500명이 함께 파견되기도 하였음), 견당사 이외에도 유학생, 유학승등이 동행하여, 국제적으로 앞선 당나라의 정치제도와 문화를 적극적으로 수입하여 일본 문화 발전에 기여하였다.
견당사의 파견과 일본의 정치적 발전
여러 가지 문화적, 정치적 발전 중에서도 가장 눈여겨봐야 할 것은 바로 율령체제의 확립이다. 지방의 고조쿠들의 세력을 억제함으로써 강력한 중앙집권 국가를 이룩하고자 한 쇼토쿠 태자는 그 모델을 중국적 정치 체제에서 찾았고, 이를 받아들여 율령(律令) 국가를 건설하고자 하였다.
쇼토쿠 태자가 죽은 이후에도 이러한 움직임은 계속되었고, 반전수수법(班田收授法) 등의 제정을 통해 토지의 국유화를 시행하였다. 또한 여기에 당나라의 조.용.조(租=세금, 庸=병역, 노역 調=특산물)제도를 그대로 모방하여 세제를 개혁하였다.
이러한 것들을 골자로 하는 개혁이 바로 다이카(大化)개신이다. 701년 법제가 정비되면서 율령국가로서의 완성을 보면서, 비로소 일본은 고대국가의 시대에서 벗어나게 된다.
견당사는 (당나라의) 새로운 제도와 문물을 받아들이는 중요한 창구 역할을 함으로써 국가를 개혁하고, 일본의 정치.문화.경제적 발전의 원동력이 되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크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