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신동엽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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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시인 신동엽 분석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신동엽론
Ⅰ. 생애와 문학 활동
신동엽은 1930년 8월 18일 충남 부여읍에서 신연순 씨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 그는 식민지반봉건의 모순구조에서 겪는 가난을 체험한다. 그리고 가난을 서로 도움으로 극복해 보려는 이웃들의 모습에서 동엽 시의 원형을 마련한다. 1937년 부여초등학교에 입학한 신동엽은 졸업할 때까지 6년 내내 1등을 할 만큼 명석했다. 1942년 부여초등학교를 졸업하고 학비가 제공되는 전주사범에 진학한다. 해방과 미군정을 거치면서 좌우익 사이에서 고민하면서 엄청난 독서를 한다. 특히 앨리어트의 시와 시론, 그리고 뚜르게네프와 크로토프킨에 심취했다. 이중 동엽의 시에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은 무정부주의였다. 신동엽의 ‘원수성’으로 가는 ‘귀수적’ 과정의 개념은 크로토프킨의 자연적이고 진화론적인 무정부주의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그리고 자주인의 의미와 ‘전경인’의 의미는 서로 의미가 통한다.
신동엽은 학창시절을 겪으면서 현실과 이데올로기에 대한 강한 저항 의식을 갖게 된다. 이는 그가 전주사범 시절 아나키즘에 관련된 서적을 탐독하면서 얻은 무정부주의적 의식과 중립적인 이미지, 유토피아적인 정신세계를 형성했던 영향이 크다고 볼 수 있다.
1949년 신동엽은 단국대학교 사학과에 입학한다. 전주사범을 졸업하고 어려운 집안사정으로 인해 대학에 진학하지 못하고 부여에서 머문다. 이때 평생의 절친한 친구인 구상회를 만나 부여와 공주의 유적을 기행하면서 동양의 혼과 백제를 비롯한 한반도의 역사에 관심을 갖게 된다.
하지만 이듬해 한국 전쟁이 발생하고 전시연합대학에 소속되었다가 제2국민병으로 ‘국민방위군 사건’을 경험한다. 이 때, 대구수용소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낙동강에서 날게를 먹고, 죽음의 원인이 된 디스토마에 감염되었다. 그는 분단체험과 동학기행을 통해 구체화된 민족주의를 형성하게 된다. 또한 이 당시 중요한 독서 체험으로는 『노자』의 영향을 볼 수 있다. 그의 산문을 보면 노자의 이상적 이상주의 사회관과 원시주의의 영향을 볼 수 있다. 1957년 인병선과 결혼하고, 이듬해 충남 주산농고에서 교편을 잡는다. 하지만 디스토마가 재발하여 휴직하고 요양생활을 하면서 그동안의 경험과 독서로 얻어진 체험을 정리하여 「이야기하는 쟁기꾼의 대지」를 썼다.
1959년 장시 「이야기하는 쟁기꾼의 대지」가 신춘문예에 입선되어 본격적인 창작활동을 시작한다. 같은 해 『조선일보』에 시 「진달래 산천」, 『세계일보』에 「새로 열리는 땅」을 발표한다. 1960년 『교육평론사』에 근무하면서 『학생혁명시집』에 419를 지지하는 혁명시 「아사녀」를 발표한다. 1961년 명성여고 교사로 근무하게 되어 시작에 몰두할 수 있게 된다. 이 시기에 신동엽은 419, 516을 체험하고 근대화 과정에서 피해를 입은 자들의 아픔을 대변하고 그 모순의 근원을 모순된 정치체제와 신제국주의로 상정하고, 그것에 저항하는 작품을 생산한다.
1963년 「산에 언덕에」, 「아니오」 등을 담은 첫 시집 『아사녀』를 간행한 이후 1964년에는 이른바 63사태를 계기로 현실적이며 참여지향적인 작품을 발표하게 된다. 1965년 그는 한일협정 비준반대 문인서명운동에 차여하여 실천적으로 활동하며, 「3월」, 「발」등의 작품을 발표하여 동학혁명, 419혁명과 현실을 대비하는 의식을 보인다.
1967년 『52인 시집』에 「껍데기는 가라」, 「3월」, 「원추리」등 7편의 시를 실었는데, 그 중 신작인 「껍데기는 가라」는 당시 문단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당시 신동엽은 한국의 현실을 또 다른 식민지 현실로 파악하고, 자신의 시 안에 반봉건, 반외세의 민족주의 정신을 담아내고자 했다. 또한 같은 해 12월, 동학혁명을 현재화(顯在化)하는 서사시 「금강」을 발표한다. 그리고 분단 극복을 주제로 한 다양한 작품을 생산하고 1969년 4월 17일 간암으로 영면한다.
Ⅱ. 시론 - 「시인정신론」
신동엽의 시론 「시인정신론」에서 밝힌 세계인식은 세 가지 단계로 유형화될 수 있다.
잔잔한 해변을 원수성 세계라 부르자 하면, 파도가 일어 공중에 솟구치는 물방울의 세계는 차수성 세계가 된다 하고, 다시 물결이 숨자 제자리로 쏟아져 돌아오는 물방울의 운명은 귀수성 세계이고, 땅에 누어있는 씨앗의 마음은 원수성 세계이다. 무성한 가지 끝마다 열린 잎의 세계는 차수성 세계이고 열매 여물어 땅에 쏟아져 돌아오는 씨앗의 마음은 귀수성 세계이다.
신동엽은 인류의 역사와 문명이 대지에 누어있는 “씨앗의 마음”에서 싹이 터서 형성 발달되어 왔지만(원수성 세계), 그 과정에서 인간들의 욕망 때문에 본질적 순수성을 상실하게 되었다고 인식한다. 그 결과 인류 사회는 모순과 부조리, 악덕과 타락, 약탈과 살육이 풍미하는 세계로 전락했다(차수성 세계)고 이해한다. 그는 따라서 원수성의 세계로 돌아가는 길은 원초적 존재를 회복하는데 있다고 인식한다. 즉, 귀수성의 세계인 “땅에 쏟아져 돌아오는 씨앗의 마음”을 회복하는 데 있다. 그에게 귀수성의 세계는 전경인적 삶이 깃들인 공간일 뿐 아니라 나라의 통일과 평화를 이루어내는 공간이며 살아있는 인간의 의지가 충만한 공간이다. 또한 진정한 시인은 귀수성의 세계를 준비하고 실현하는 주체이다. 그래서 그의 시는 차수세계에 대한 강력한 저항과 그를 원수성, 귀수성의 세계로 합일시키려는 의욕에 바쳐지고 있는 것이다.
참고문헌
□ 참고문헌
구중서, 「민족시인 신동엽」, 소명출판사, 1999.
구중서, 「신동엽, 그의 문학과 삶」, 온누리, 1983.
김학동 외, 「한국 전후 문제시인 연구1」, 예림기획, 2005.
송기한, 「1960년대 시인 연구」, 역락, 2007.
윤병노, 「한국 근현대 문학사」, 명문당, 2003.
강은교, 「신동엽 연구」, 동아대학교, 1989.
오신숙, 「신동엽 시 연구」, 건국대학교, 1999.
이심훈, 「신동엽 시 연구」, 청어람문학회, 1994.
정선호, 「신동엽 시 연구」, 창원대학교, 2006.
※ 문학사적 특징적 자료
1. 1960년대의 문학
1) 시대적 배경
이승만 정권의 독재와 부정부패에 대한 저항으로 일어난 419혁명은 자유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을 적극적으로 표현한 것으로서, 516군사정변으로 인해 그 성과가 제한된 것이 되고 말았지만, 어쨌든 문학의 경우 전후문학이 빠져들었던 위축과 무기력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였다. 다른 한편 급격한 산업화로 인해 이농현상과 인구의 도시 집중이 가속화함에 따라 전통적인 윤리의 붕괴와 개인주의물질만능주의의 만연 등 여러 면에서 사회적 변화와 혼란이 초래되었다.
2) 1960년대 문학의 특징
419혁명을 겪고 난 후 문학은 점차 전후 문학이 보여주었던 피해의식과 정신적 위축으로부터 벗어나기 시작하였다. 1950년대 전후소설에서 현상 위주로 그려진 전쟁의 상흔이 일단 뒤로 물러나고, 전쟁과 분단의 문제를 비교적 객관적인 시각에서 그리는 작품이 등장했으며, 사회 현실을 비판적으로 그리는 리얼리즘 소설이 다시 등장하였다. 소설에서는 김승옥이청준 등 419세대이자 한글세대의 작가들이 소시민적 삶과 개인의 내면의식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을 새로운 감수성과 표현 기법을 통해 보여주었다. 시에서는 419혁명에 영향을 받아 신동엽김수영 등 민족의 현실에 적극적 관심을 둔 이른바 ‘참여 시인’들이 등장했으며, 평단에서도 문학의 사회참여 문제가 중요한 관심사로 등장하여 이른바 ‘참여-순수논쟁’이 일어났다.
3) 1960년대 문단의 참여-순수 논쟁
419혁명의 영향과 전후 프랑스의 실존주의 작가 사르트르 등이 주장한 앙가주망(사회참여)의 영향으로 인해 1960년대 한국문단에서는 두 차례에 걸쳐 참여-순수 논쟁이 일어났다.
순수문학론자들은 순수문학이야말로 언제나 문학의 본질에 충실한 문학임을 강조했다. 그 과정에서 문학의 본질이 무엇인가에 대한 논의가 더러 있기는 했지만, 그 논의가 충분히 깊이 있게 이루어지지는 못했다. 순수문학의 진영의 이론은 해방 직후 좌파와의 논쟁 당시 제시한 것과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고 할 수 있다.
참여문학론자들은 오랫동안 우리 문단을 지배하던 순수문학에 대해 저항했고, 순수문학과 결별함으로써 우리문학을 혁신할 것을 주장했다. ‘휴머니즘’을 주장하는 순수문학의 이율배반성에 대해 공격하면서, 문학인의 사회적 책임과 문학을 통한 사회 참여의 당위성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역시 깊이 있는 논의는 보여주지 못했다.
2. 참여문학
참여 문학은 개인의 주관적인 서정보다는 사회정치적 현실의 문제와 해결에 관심을 갖는 문학을 지칭하는 것으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프랑스의 사르트르에 의해 주창되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1920년대 계급 문학을 표방했던 ‘KAPF’에 의해 본격적으로 등장하였으며, 1960년대 김수영, 신동엽, 최인훈 등에 의해 분단과 통일, 억압적 체제에 대한 비판 등 현실 문제가 문학의 주요한 제제로 다루어지면서 우리 문학의 큰 흐름을 형성하였다. 1970년대 이후에는 이들을 계승한 민족 민중 문학 계열의 작가들이 대거 출현하면서 통일 문제, 농민 문제, 노동 문제 등 민족적사회적 현실에 대한 문학적 참여가 활발하게 진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