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문학사 토론문 경계를 허무는 일국 문학사 이해와 연구의 또 다른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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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국문학사 토론문 경계를 허무는 일국 문학사 이해와 연구의 또 다른 방법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국문학사 토론문 (고려시대의 문학)
- 경계를 허무는 일, 국문학사 이해와 연구의 또 다른 방법 -
고려시대의 문학에 대한 또 다른 논의를 다루었다. 그 내용을 크게 나누자면 고려속요가 민요인지에 대한 논의, 신의(新意)와 용사(用事)의 관계, 시조의 발생 시기와 가사의 기원에 대한 것이었다. 토의를 하기 전 발표 범위에 대해서 나름의 이해를 하려 했지만, 사전 지식이 부족하여 이해가 잘 되지 않는 부분도 있었고 내가 나름대로 생각한 것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궁금했다. 이러한 의문을 갖고 토의에 참여했는데, 고려시대 문학에 대한 다양한 주제를 함께 다루면서 다소 모호했던 내용들이 비교적 명쾌하게 풀어졌던 것 같다. 또한 연구 방법의 방향성에 대해서 새로운 생각을 해보기도 했다. 이와 관련하여 특히 의미 있었던 논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 논의는 고려 속요가 민요인가에 대한 것이었다. 고려속요는 민요적 노래로써 그 작자를 알 수 없다는 설, 지식층의 개인 창작시라는 설, 이를 종합한 입장으로서 궁중가악의 가사라는 설이 있다. 이를 밝히기 위해 청산별곡, 쌍화점, 이상곡이 예로 등장하는데, 집중적으로 논의된 부분은 청산별곡의 작자에 대한 내용이었다. 저번 시간에 청산별곡의 내용을 중심으로 삼았다면, 이번 시간에는 청산별곡의 작자를 통해 고려속요의 기원을 찾고자 하였다. 발표자는 청산별곡의 이미지나 논리성을 살펴보면 민요의 특질과 다름이 없으며, 특히 청산별곡과 관련한 한문기록을 찾아볼 수 없어서 민요일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우리 조는 한문기록이 아예 소실되었을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했다. 자료가 모두 소실되어 발견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사실 자체는 소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자료의 한계성과 연구와의 관계는 이 글의 뒤에서도 다룰 것이지만, 실제로 발견할 수 없으며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그것이 실제 존재하지 않았다는 보장은 없을 것이다. 귀납법의 전형적인 오류사례, 즉 하나의 반례로 전체 가설이 성립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특히 역사 연구와 같이 근거를 과거의 기록으로부터 밖에 찾을 수 없는 상황에서 이러한 논의가 이루어진 것이 뜻깊다고 느꼈다.
두 번째로 신의와 용사의 관계에 대해 의견을 나눈 것도 나름의 문학사를 구상하는 데에 도움이 되었다. 신의와 용사라는 개념은 다소 생소한 것이어서 이번 발표를 통해 처음 접하게 되었다. 신의는 개성과 창조를 본질적 내용으로 삼는 문학 창작 방법론으로, 작시정신의 하나이다. 그리고 용사는 수사법의 일종으로, 이전의 작품을 끌어다 새로운 작품에 쓰는 것을 말한다. 신의와 용사의 관계에 대한 논의는 두 개념이 대립관계인가, 아닌가에 관한 것과 그렇지 않다면 어떠한 관계인가에 대한 것이었다. 규범적 문학으로서의 한문학이 지배적이었던 당시 상황을 고려하였을 때, 우리 조는 신의와 용사가 상호보완적 관계를 이룬다고 생각하여 용사가 신의를 펼치기 위한 일종의 주춧돌 역할을 하는 것이라 보았다. 발표자와 교수님께서도 두 개념이 상호보완적이라는 것에 동의하였는데, 여기서 교수님의 부연 설명이 와 닿았다. 실제 문학창작과 수업에서도 이외수와 이육사의 시를 베끼기도 하며, 옛날에 시작(詩作)을 가르칠 때도 이태백의 시 중에 기·승·전·결 네 부에서 맨 뒤의 시구만 창작하도록 했다고 하셨다. 이에 내 경험이 떠오르기도 했는데, 필사(筆寫)책을 사서 시를 베낄 때, 단순히 문장 하나하나를 베끼는 것이 아니라 시인의 감정을 느끼고 덧대어 쓰곤 했다. 그때 느낀 표현과 감정이 일상 속에서 떠올라 그것을 소재로 새로운 글을 써보기도 했다. 이러한 과정 또한 신의와 용사의 상호작용이 주는 깨달음일 것이다.
세 번째로 논의된 것은 시조의 기원에 대한 것이었다. 우리나라의 시조는 그 생성 시기에 중국의 영향을 많이 받았음에 비하여 중국의 한시와는 독자성을 갖는다고 할 수 있다. 고려는 원나라의 영향을 받았으나, 원나라의 문학이 고려보다 못하다고 생각하여 문학 분야에서는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기본적인 형식의 동일성을 향가에서부터 이미 찾아볼 수 있는데, 10구체 향가는 평시조와 같은 3장 6구로 볼 수 있으며 ‘아으’와 같은 여음구도 시조로의 과도기적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조금 세부적인 내용일수는 있지만 고려 말 정착설의 근거로 제시되어 있는 ‘성리학의 이념을 담기에 적절한 시조의 형식적 요건’에 대해서도 함께 살펴보았다. 처음에는 성리학과 관련한 시조의 형식이 따로 있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성리학을 담기 위한 내용적 요건, 즉 효(孝)나 충(忠)과 같은 것이 주제라고 하면 설명이 가능하지만, 형식의 경우에는 감이 오지 않아 시조의 형식이 엄격하게 정해져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러나 이것은 고려 말과 조선 초를 비교하기보다는 고려 말과 조선 초의 시조를 비슷한 양상으로 보고, 이를 조선 후기와 비교해야 하는 것이었다. 고려 말에서 조선 초에는 국가 이념의 내용을 담아낸 것에 비해, 조선 후기에는 사설시조와 연시조에서 삶의 모습을 담아냈다. 즉 정형성이 국가라는 틀과 연관이 있기 때문에 조선 후기로 갈수록 전기에 비해 엄격성이 약화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마지막으로 가사의 기원에 대한 논의는 앞으로의 연구가 어떤 방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좋을지 고찰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가사의 기원과 형성기에 대한 발전 논의에서는 를 가사의 효시 작품으로 보는 관점과 을 가사의 효시 작품으로 보는 관점이 대립되었다. 여기에서 를 효시로 보는 것에 대한 의문점, ‘조선조의 사대부들이 승려 계층의 창안물인 가사를 주요 문학 형태로 삼지 않았을 것이다’에 관련한 보충 설명을 듣고 가사의 기원에 대한 입장을 조금이나마 결론지을 수 있었다. 조선 초에 유교질서를 공고히 하기 위해 불교를 억압한 것이지, 고려 시대에 걸쳐 이미 널리 퍼져있는 불교를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었다는 것이다. 또한 조선 초기의 짧은 시간동안 ‘정극인’이라는 한 인물에 의해 가사 문학이 완전히 완성되었을 리도 없다. 따라서 고려에서부터 유사한 형태를 가진 갈래가 내려왔고, 조선 초기 이후 차츰 형성되어 정립되었을 것이다.
논의를 통해 이러한 결론들을 내면서 아직은 조금 조심스럽기도 하다. 모든 자료를 접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에 우리 문학사의 쟁점에 대해 확답을 내릴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한 분야의 한정된 자료 속에서 새로운 사실들을 발굴해 내는 것은 어려울뿐더러 한정성에서 비롯되는 편협을 피할 수 없다. 이 생각은 가사의 기원에 대한 발표조의 결론에서, ‘색다른 연구방법을 적용하는 방법론상의 전환’의 구체적인 사례가 무엇일지에 대한 생각에서 나온 것이었다. 물론 실증이나 고증을 위해 증거가 풍부하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 하지만 현황은 그렇지 않다. 이와 관련하여 교수님이 시조의 기원에 대한 예로 드신 신광수의 〈시절가(時節歌)〉의 구절 "시조는 장단을 배제한 노래로서 장안(평양)의 이세춘으로부터 왔다."가 떠오른다. 이 해석은 ‘이세춘이 시조를 부른 한 사람이었다.’라는 뜻이 알맞지만 현 교과서에는 ‘이세춘이 시조를 만들었다.’라고 나타나있다고 한다. 이러한 결과는 교과서 집필에 있어 다양한 지식이 반영되지 못한 것에 있다고 하셨다. 특정 학교에서 동일한 내용을 동일 학파에 의해 전달받은 데에서 온 것이다. 국정 교과서에 대한 논의도 같은 맥락에서 이루어질 수 있겠다. 아무리 지배적이고 정제된 이론이더라도 검증 가능성이 아주 없다면 그 지위를 보장받을 수 없을 것이다.
이렇게 한 학문에 여러 가지 의견과 지식이 반영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나아가 학문 간의 통섭 또한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이를 문학사와 관련짓는다면 문학사에 외부의 학문을 끌어들여와 더욱 다채로운 문학연구를 추구하는 것이다. 이광수의 작품 속에서 삼각관계에 둘러싸인 남자 주인공의 모습은 작가 이광수를 심리학과 연관시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로 풀어낼 수 있다는 교수님의 말씀처럼 말이다. 시조의 기원을 찾기 위해 음악과 시조를 동시에 탐구하고 그 관계를 구체적으로 분석하는 방법도 마찬가지이다. 이렇게 다양성을 추구하고 경계를 허무는 것이 우리 문학사를 이해하고 밝히는 또 다른 방법이 될 수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강의를 통해 우리 고전문학의 기원이나 성격에 대해 살펴보기 전에는 ‘이미 지난 것을 밝히기 위해 과거에 얽매일 필요가 있을까? 현재를 바탕으로 의미 있는 문학을 만들어 가면 되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 적도 있었다. 그러나 매 시간 문학사에서 중점이 되는 논의들을 접하다 보니 그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으며 과거를 되돌아보는 것은 현재와 미래의 이해를 위해 빠질 수 없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또한 이번 토의를 통해 여러 방면에서 고려의 문학사를 고찰해볼 수 있었고, 문학사를 밝히고 연구하는 방법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지금보다 더 깊은 고민이 필요하겠지만, 국문학사뿐만 아니라 내가 앞으로 몸담을 교육을 구성함에 있어서도 문학과 그 소재와 관련한 학문의 내용을 제시하는 등 경계를 허물려는 노력이 필요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