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랑 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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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랑 론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김영랑론
1. 약전 및 작품경향
1903년 전남 강진군 강진면에서 지주의 아들로 태어남.
1917년 두 살 손위인 김씨와 결혼하고 얼마 뒤 사별. 휘문 의숙에 입학
1919년 3.1운동 때 학생 운동 모의하다 대구 형무소에서 6개월간 옥고.
1920년 일본 아오야마 학원 중학부 3학년에 편입학.
1922년 아오야마 학원 인문과에 입학 영문학 전공 중 관동 대지진으로 귀국.
1925년 개성 호수돈여고 출신 여교사 김귀련과 재혼.
1930년 박용철정지용 등과 함께 지 창간. 30여 편의 시를 발표하면서 일약
각광을 받음.
1934년 박용철 주간의 지에 ‘모란이 피기까지는’과 ‘사행소곡(四行小曲)’ 등을 발표.
1935년 이 시문학사에서 간행됨.
1946년 대한독립촉성국민회 청년단장 맡음. 전조선문필가협회 추천위원. 조선청년문학가협회 결성대회에서 ‘추대’로 뽑힘.
1948년 510 선거 때 초대 민의원에 출마하여 낙선. 서울로 이사.
1949년 공보처 출판국장에 취임. 한국문학가협회 중앙집행위원으로 추대.
1950년 지 시 추천인으로 위촉됨. 공보처 출판국장 사임.
625 때 포탄의 파편을 맞고 이틀 뒤 사망.
영랑의 시집에는 1935년 11월 시문학사에서 낸 , 1949년 서정주가 편집한
참고문헌
5. 참고문헌
- 김봉군 외 2명(2001), ‘한국 현대 작가론(증보 3판)’, 민지사.
- 김용직, ‘한국현대시인연구’, 서울대학교출판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