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김동리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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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김동리론
Ⅰ.약전
- 1913년 11월 24일 경상북도 경주시 성건리에서 부 김임수와 모 허임순 사이에서 5남매의 막내로 태어남. 아명은 창봉(昌鳳), 본명은 시종(始鍾). 맏형은 한학자 김기봉(범부선생)
- 1920년 ~ 1928년 짧은 학창시절을 보냄. (1926년 부친 별세.)
- 1929년 서울 경신 중학교 4학년 중퇴. 귀향 후 박목월 등과 사귀면서 철학서적과 세계 문학, 동양 고전에 심취. 매일신보와 중외일보에서 시 「고독」,「방랑의 우수」 및 수필을 발표.
- 1933년 범부 선생 숙소에서 서정주를 소개받아 사귐.
- 1934년 조선일보 신촌문예에 시 「백로」입선.
- 1935년 1월 단편 ‘화랑의 후예’가 중앙일보 신춘현상모집에 당선. 본격적 문학활동을 하고자 경남 사천의 다솔사와 합천의 해인사를 전전하며 작품활동을 함.
- 1936년 1월에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산화’가 당선, 문단의 화제를 일으킴. 상경하여, ‘무녀도’, ‘바위’, ‘술’, ‘산제’ 등을 발표.
- 1937년 서정주, 김달진 등과 시인부락 동인이 되어 활동. 다솔사 소속 광명학원에서 교편을 잡음.
- 1938년 유진오가 「순수에의 지향」이란 글에서 신인들이 현실 도피적이라고 비난하자 문학의 순수성을 주장한 평론 , 이란 평론으로 반박. 김월계와 혼인. 그 후 1940년까지 단편 ‘솔거’, ‘잉여설’, ‘황토기’등을 탈고하고 시 ‘구강산’, ‘행로음’, ‘내 홀로 무어라 중얼거리며 가느뇨’를 발표.
- 1940년 어용문학 단체인 문인보국회, 국민문학연맹 등의 가입을 거부
- 1942년 광명학원 강제 폐쇄. 백형 김범부 구속 후 절망과 분노를 안은 채 절필(絶筆)선언. 해방까지 침묵을 지키며 만주 등지를 방황, 사천에서 해방을 맞이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