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틴 루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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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마틴 루터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루터
1. 루터의 생애와 그의 삶의 원동력
(1) 루터의 생애
- 루터 [ Luther, Martin , 1483.11.10~1546.2.18 ]
독일의 종교개혁자, 신학자로서 1483년 11월 10일 작센 안할트주 아이슬레벤에서 태어났다. 어린시절부터 폭넓은 공부를 했고 14세 때에 마그네부르크의 공동생활 형제단 학교에 출석하게 되었다. 이 어린시절의 짧은 경험은 수도원 생활에 관해 루터에게 중요한 경험이 된다. 그 후 루터는 1501년에 에르푸르트대학교에 입학했고 1505년에 학부과정을 마친 후 아버지의 영향으로 법률공부를 시작하였다. 이때에 루터는 삶의 의미에 관한 질문과 구원 문제, 죽음의 대한 공포 등으로 많은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 후 여름방학 때 고향집에서 에르푸르트로 돌아오는 길에 우뢰를 만나게 되고 그때 루터는 두려움에 떨며 수도사가 되겠다고 서원을 하게 된다. 루터의 서원에 대해서는 많은 이야기가 있는데 그의 서원은 단순한 공포도 어느 정도 원인이 되지만 어렸을 적부터의 엄격한 교육분위기, 부모님의 과도한 기대로 인한 심리적 부담감, 당시 루터가 고민하던 삶에 관한 문제들이 복합적으로 연결되어 낳은 결과라고 보는 사람도 있다. 그 후 루터는 아버지의 만류를 뿌리치고 1507년에 에르푸르트의 아우구스티누스 수도회에 들어간다. 계율에 따라 수도생활을 하며 1507년에 신부가 되고, 오컴주의 신학교육을 받아 수도회와 대학에서 중책을 맡게 되었다. 1511년 비텐베르크대학교로 옮겨, 1512년 신학박사가 되고 1513년부터 성서학 강의를 시작하였다.
그는 이때, 하느님은 인간에게 행위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인간에게 접근하고 은혜를 베풀어 구원하는 신임을 재발견하였다. 이 결과가 당시 교회의 관습이 되어 있던 면죄부 판매에 대한 비판으로 1517년 95개조 논제가 나왔는데, 이것이 큰 파문을 일으켜 마침내 종교개혁의 발단이 되었다. 그는 교황으로부터 파문칙령을 받았으나 불태워 버렸다.
1521 년에는 신성로마제국 의회에 환문되어 그의 주장을 취소할 것을 강요당했으나 이를 거부, 제국에서 추방되는 처분을 받았다. 그로부터 9개월 동안 작센 선제후의 비호 아래 바르트부르크성에서 숨어 지내면서 신약성서의 독일어 번역을 완성하였다. 이것이 독일어 통일에 크게 공헌하였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비텐베르크로 돌아와서는 새로운 교회 형성에 힘썼는데, 처음에는 멸시의 뜻으로 불리던 호칭이 마침내 통칭이 되어 루터파 교회가 성립되었다.
그 뒤 만년에 이르기까지 가톨릭 교회와 종교개혁 좌파 사이에서 논쟁 ·대결하면서, 성서강의·설교·저작·성서번역 등에 헌신함으로써 종교개혁 운동을 추진하였는데, 영주들간의 분쟁 조정을 위하여 고향인 아이슬레벤에 갔다가, 병을 얻어 그곳에서 죽게 된다.
(2) 루터의 개혁적 삶의 원동력
종교개혁의 위대한 길을 연 루터의 삶의 원동력은 무엇일까? 루터에대해 공부하며 발견한 그의 가장 큰 장점은 자신이 행한 일의 시행과 성공에 대해 스스로를 내세우지 않고 하나님을 내세웠다는 것이다. 그는 개혁 이란 오로지 하나님만의 궁극적인 개입일 뿐이고 자신은 하나님의 주도아래 이끌림을 받았다 말하며 스스로를 개혁자라 부르지 않고 복음주의자, 설교자, 박사, 교수 라 불리기를 원했다. 그가 말했던 Sola Gratia 처럼 언제나 은혜안에서 그것을 구하며 한걸음 한걸음 주님을 인식하고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며 사명을 감당했던 것이다.
루터는 면죄부 논쟁으로부터 시작하여 새로운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그는 자신의 탁상담화와 편지에서 밝혔다고 한다. "이 일에 나는 하나님에 의해 끌려갔소,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나는 집어 던져졌소."
(3) 루터와 라이프찌히 논쟁
1519년 6월 27일부터 7월 16일까지 라이프찌히 논쟁이 일어났다. 7월 2일까지는 에크와 칼슈타트가 예정과 자유의지에 대하여 논의했으나 칼슈타트는 에크의 적수가 못되었다. 그는 전형적인 학자였고, 탁월한 언변에 유명한 잉골스타트의 교수들도 압도하였다. 7월 4일부터 에크와 루터가 서로 토론했을 때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루터와 에크는 우선 교황의 수위권과 공의회의 권위에 대해서 토론한 후 "면죄부", "참회", "연옥" 문제를 다루었는데 교황의 수위권에 대한 토론은 라이프찌히 논쟁보다 앞서 일어난 루터와 에크의 공개적인 논쟁이었다. 1518년 12월 에크는 이미 라이프찌히에서 "contra novam doctrinam" 을 변호하고자 12개 논제를 작성했다. 1519년 초 루터가 이 논제를 알게 되었을 때 그는 12개의 반대 논제로 응답했다. 이것은 에크를 다시금 자극하여, 그의 논제를 수정하고 추가하도록 만들어 주었다. 이 논제중 13번째 논제는 교황의 수위권에 관한 것이며, 여기서 그는 "로마교회가 실베스터 (교황 실베스터 1세, 314-335) 이전에는 다른 교회보다 높지 않았다는 주장을 우리는 부인한다. 오히려 그 반대로 성베드로의 신앙과 직위를 가진 그를 우리는 항상 베드로의 후계자요 그리스도의 대리자로 인정했다"고 주장했다. 루터 역시 이에 상응하여 논제 13번을 추가했고, 에크의 논제 13번에 반대하여 "로마교회가 다른 모든 교회보다 우위에 있다는 것은 400년 이후에야 등장한 로마교황의 빈약한 교령에 근거한 것이다. 그러나 천백년의 신앙의 역사와 성서 본문과 모든 공의회 가운데 가장 거룩한 공의회인 니케아 공의회 는 이것을 반대한다"고 썼다. 도전적인 이러한 논제로 교황제도는 12세기에 비로소 생겼다는 것을 루터가 말하고자 한 것은 아니다. 루터는 그레고리 9세 이후 이루어진 교령의 법령화가 교황들에게 특별히 독일에서 그들의 요구를 완전히 관철시키는 것이 가능케 했음을 단지 주장하고자 한 것이다. 루터는 라이프찌히에서 이 논제를 토론할 기회가 없을 경우를 대비해 토론에 앞서 이미 "교황의 권력에 대한 13개 논제 해설" 을 작성했고 인쇄를 의뢰했다. 루터는 여기서 교황의 수위권은 엄격한 의미로 볼 때 황제 콘스탄틴 4세 (Constantin IV, 669-683) 치하에서 비로소 형성되었다고 피력하며, 다른 동방교회들처럼 희랍교회는 한번도 로마의 통치를 받지 않았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마교회와 동일한 권한을 가진 기독교 교회로 말해지고 있다는 논제를 피력했다. 루터는 교황의 수위권이 신적인 법 (de iure divino) 이라는 것을 부인하며, 교황은 인간이 만든 하나의 제도요, 이런 의미로 인정되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교황에게 순종하는 것은 그 때문에 구원의 조건이 아니다. 또한 희랍의 기독교인들에게는 한번도 구원을 위해 기독교 최고의 권위인 로마 감독을 인정해야 한다는 요구가 제기되지 않았다. 에크는 이제 위클리프와 후스를 정죄했던 여러 가지 말을 거론하며 로마의 수위권은 신적인 법이라는 강조했다. 이들은 1415년 콘스탄쯔 공의회에서 정죄받았다. 루터는 비록 콘스탄쯔에서 정죄받은 후스의 주장에 옳고 복음적인 것이 있음을 확신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후스와 동일시하는 것에 강력하게 항의했다. 이것은 다시금 공의회도 오류를 범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교회는 성서에 근거가 없는 어떤 것을 구원에 절대적인 것이라고 선언할 수 없다. 이것은 라이프찌히 논쟁의 핵심이 더 이상 면죄부와 참회 문제가 아니라, 성서가 증거하듯이, 그리스도 한분만이 교회의 머리요, 교황이 아니라는 새로운 교회 이해였음을 보여준 것이다. 1519년 8월 루터는 라이프찌히 논쟁에서 전개한 자신의 논제에 대해 세 개의 글로 그 정당성을 입증했다. 에크가 라이프찌히에서 외적으로는 승리를 한 듯 했으나, 라이프찌히 논쟁은 그에게 신학적으로 하나의 패배를 의미했다.
참고문헌
5. 참고문헌
- 마르틴 루터와 개혁사상의 발전 , 조병하, 한들출판사
- 마르틴 루터의 삶과 신학이야기, 김주한, 대한기독교서회
- (루터와 시대정신) 루터를 생각하며, 김동건, 도서출판 한들, 1996
- http://www.godislove.net
- http://lck.or.kr/luther/index.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