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기 위하여 탐방 과제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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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살기 위하여 탐방 과제 보고서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 탐방과제 - 살기위하여
- 1998년부터 2003년까지 부안과 김제에서 살았던 저에게 “살기 위하여”라는 영화는 어느 어촌 지방의 사람들의 이야기 그 이상의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교수님께서 새만금에 대한 내용의 영화를 본다고 하셨을 때 저는 친구들에게 새만금 간척지에 가보았다며 자랑을 하는 어리석은 한 사람이었습니다. 제가 부안에 살고 있을 때 저는 겨우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새만금 간척사업은 좁은 국토에 더 많은 농경지를 확보하기 위한 획기적인 사업이자 모두를 위한 사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희 가족은 바닷가 근처가 아닌 부안군내에 살았기 때문에 어민들의 삶이 무엇인지, 간척사업으로 인한 그들의 고통이 무엇인지는 미처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새만금 간척 사업에 대한 내용의 영화의 제목을 왜 “살기 위하여” 라는 다소 극단적인 제목으로 정했는지 처음에는 조금 의문이 들었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왜 이 영화의 제목이 “살기 위하여” 이었어야 했는지 너무나도 잘 알 수 있었습니다. 그들의 한 평생 터전이었던 갯벌이 막혀서 그들의 친구인 조개들이 말라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슬픔과, 앞으로의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고통만이 아닌 더 많은 문제들이 그들은 괴롭혔습니다. 그 곳에서 한 발짝 물러서서 바라보는 사람들은 생태계의 보고인 갯벌을 지켜야 한다, 자연 재해가 우려된다와 같은 계화도 주민들에 비하면 맘 편한 걱정을 하겠지만 그들에게는 갯벌은 곧 그들의 삶이었기에 그들은 어떻게든 갯벌을 지켜야 했습니다. 한 평생 바다만을 바라보고 이것이 자신들의 천직인줄 알고 욕심 없이 살았던 그들에게 바다를 막는 일은 너무나도 잔혹한일이었을 것입니다. 나라의 더 큰 이익을 위해서 소수의 이익이 무시되는 것은 이 사회에서 어쩔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새만금 간척사업은 결코 미래의 큰 이익에 부합하는 사업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환경을 소중하게 쓰고 후손에게 물려주어야 할 당연한 임무를 가지고 있습니다. 미래의 후손들에게 필요한 것이 여의도 면적에 140배에 해당한다는 억지로 만들어진 땅덩어리인지 아니면 자연이 살아 숨 쉬고 철새가 쉬어가는 깨끗한 갯벌인지를 우리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땅덩어리 좁은 이 나라의 땅이 넓어져서 농사도 지을 수 있고 14000명의 고용창출로 실업문제를 해결해서 나라 경제를 살리겠다는 달콤한 말에 새만금 간척사업의 긍정적인 면만을 보아 왔을 것입니다. 이 사업을 추진하는 정부에서는 이로 인한 환경문제, 자연재해의 위험에는 큰 관심을 가지지 않았습니다. 환경단체와 시민단체가 관심을 가지고 반기를 들었지만 그들은 그들의 생각대로 일을 진행해 나갔고 결국 2006년 대법원은 새만금 사업의 정당성을 인정함으로써 이를 반대한 어민들은 자신들의 이익과 보상을 위한 투쟁을 한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정말 화가 났던 것은 어민들의 대표가 되는 대책위원회 사람들의 태도였습니다. 대책위원장이라는 사람의 인터뷰 내용은 너무나도 터무니없었습니다. 해상 시위를 계속 미루고 갯벌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모두 무시한 채 보상에 대한 말도 안 되는 내용의 인터뷰를 하는 모습은 정말 분하기까지 했습니다. 그 어떤 누가 그에게 어떤 제안을 했기에 저 사람이 절규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보상 몇 푼 받자고 시위하는 사람들로 만들어 버리나 하는 생각에 화를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영화에서 내내 당당하고 거침없던 이모들은 보상금을 원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보상금 따위는 필요 없으니 갯벌만 살려주어 욕심 없이 조개를 캐면서 울고 웃으며 살아 갈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보상금에 눈이 먼 대책위 사람들의 생각을 그곳 어부들의 생각이라고 단정 지어서는 절대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처절한 투쟁이 자신의 생존권만을 위한 투쟁이었다고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기에는 이모를 비롯한 많은 어부들의 갯벌에 대한 사랑과 지키고자 했던 마음들이 너무나도 억울하다고 생각합니다. 영화를 보면서 제가 정말 부끄러움을 느꼈던 부분이 있었는데 그것은 최근 제가 가족들과 오랜만에 부안을 찾아 여행을 할 때 여행코스 중 하나로 간척사업을 하는 곳을 찾고 간척사업 박물관을 갔던 기억이 떠올렸을 때 이었습니다. 지성인이라는 대학생이나 되어서 수많은 사람들의 눈물로 막혀진 그 곳을 웃으며 사진이나 찍고 내소사, 채석강, 이순신 촬영장과 같은 하나의 관광지로 스쳐 지나갔던 것이 너무나도 부끄러웠습니다. 제가 갔을 때 많은 관광버스와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저는 오히려 바다로 난 길 위에서 바람을 맞으면서 그 관광객들 중 한명으로써 관광을 하기에 바빴습니다. 만약 그곳에 있는 사람들이 자신들이 밟고 있는 콘크리트 덩어리 들이 어민들의 눈물과 한으로 가득하다는 것을 알았다면 혹은 이전의 아름다운 바다의 모습을 기억한다면 그렇게 웃으며 그 곳을 떠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 감독이 10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갯벌에서 그들과 함께 울고 웃어야 했는지, 쉽게 그곳을 떠나지 못했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습니다. 중앙 언론들은 환경운동가에게만 초점을 맞추고 새만금 찬성에 대한 보도만 내놓는 지역 언론 앞에서 감독만이라도 이모와 어부들의 편이 되어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카메라를 든 어부”라는 이름으로 그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얼마나 억울하고 분통이 터졌을까 생각하면 제 가슴까지 먹먹해 집니다. 공사가 마무리 된 후 가장 씩씩하고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했던 이모 故류기화씨는 생계를 위해 메마른 갯벌로 나갔다가 배수관문을 예고 없이 연 당국에 의해 생전 그토록 사랑하던 바다와 조개들 곁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처음 시작하는 영상에서 검은 옷을 입고 “ 왜 죽여 왜 죽이냐고 ” 라며 울부짖던 사람들의 모습의 이유를 알 수 있었습니다. 바다를 잃은 것으로 모자라 함께 동고동락하던 사랑하는 동료마저 잃은 슬픔을 그 무엇에 비유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