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울가치가있는 힘 A Power Worth Fighting f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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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싸울 가치가 있는 힘 (A Power Worth Fighting for)
루퍼트 머독은 아버지 키스 머독이 시작한 신문사를 1952년에 물려받았다. 그가 물려받은 회사의 주요 자산은 타블로이드 신문인 ‘더 뉴스’였다. 루퍼트 머독은 1973년 ‘샌 안토니오 익스프레스 뉴스’를 매입해 뉴스코퍼레이션을 영업이익 54억 달러의 세계적인 회사로 키웠다. 반면 구글은 1998년 설립됐으며 대중적으로 알려진 것은 2004년이었다. 하지만 구글은 2009년 320억 달러에 달하는 자산과 66억 달러의 영업이익을 냈다. 조사연구기관인 밀워드 브라운은 구글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브랜드로 손꼽는다. 구글의 급성장은 갑자기 나타난 10대 청소년이 싸움 한번 하지 않고 반백의 대부들로부터 휘장을 빼앗아 온 것에 비유할 수 있을 정도다.
뉴스코퍼레이션, 타임워너, 월트디즈니 같은 회사들은 그들의 거대한 규모와 막대한 부에도 불구하고 디지털 도입 단계에선 다소 뒤쳐져 있었다. 그래서 이들은 디지털 쾌속선에 승선하기 위해 ‘마이 스페이스’ 같은 유망한 인터넷 회사를 사들이느라 바쁘다. 하지만 그들은 이미 늦은 것은 아닐까? 그들은 디지털 커뮤니케이션을 또 하나의 신기술에 불과하다고 잘못 생각했던 것은 아닌가? 역사가 여기에 대한 답을 알려주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새로운 철도 기술로 인해 열차가 시속 25마일 이상으로 달리게 되면 신체에 미치는 바람의 영향으로 인해 사람이 폭파되고 말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철도 발전의 핵심은 단순히 속도에 관한 것이 아니었다. 철도는 철도를 발전시킨 개척자들조차 상상할 수 없는 방식으로 사회와 문화를 바꿨다. 전보도 초기에는 속도가 큰 장점 중에 하나이긴 했지만 핵심은 속도가 아니었다. 이는 저널리스트들이 스토리를 쓰는 방식과 뉴스를 모으는 방식을 바꿨고, 이런 과정을 통해 신문의 디자인과 콘텐츠를 바꿨다. 궁극적으로는 저널리스트들은 자신들의 일에 대한 생각 자체를 바꿨다. 이는 1850년 폴 줄리우스 로이터가 비둘기를 이용해 아헨에서 브리쉘까지 뉴스 서비스를 했을 때는 결코 상상할 수 없었던 것이다.
디지털 시대는 미디어 환경도 바꾸고 있다. 초기에 이 변화는 분명히 기술 주도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웹 페이지 콘텐츠를 어떻게 상품화할지, 무한한 웹 환경에서 인쇄 기반 매체의 질을 어떻게 유지할지, 불법 파일 공유를 어떻게 통제할지 등에 대한 의문은 디지털 세계가 창조해 낼 엄청난 변화에 의해 모두 사라질 것이다.
버락 오바마의 대통령 선거 캠페인은 페이스북 선거로 묘사된다. 정치 전문가들에 따르면 많은 젊은 투표자들의 출현, 25세 이하 그룹에서 오바마가 70%의 득표율을 올린 것은 모두 페이스북 때문이었다. 미디어 조직의 심리, 컴퓨터·디지털 기술과 기존 미디어의 충돌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2차 세계대전 이후 봇물을 이룬 규제 완화와 미디어 기업의 합병을 조사하고, 이것이 어떻게 저널리즘과 자본주의의 불편한 관계를 만들어냈는지를 고찰하는 것이 필요하다.
규제 완화와 증식
세계화와 규제 완화는 방송 공공성에 대한 인식이 약했던 미국이나 다른 나라들보다는 영국에서 더 큰 이슈였다. 미디어 회사들은 대부분 인쇄 매체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TV 방송이 발전하기 시작하면서 시장이 과거와 다르게 판단하기 시작한 시점에도 영국에서는 상당수가 인쇄 중심의 기반을 유지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해럴드 윌슨의 노동당 정부도 마찬가지였다. 토니 벤 산업부 장관은 1975년 ‘스카치 데일리 뉴스’에 보조금을 주기로 결정했다. 이 신문은 비브브룩 뉴스페이퍼스가 ‘스카치 데일리 익스프레스’를 폐간하고, 당시 정리 해고된 기자들이 조합을 만들어 운용한 매체다. 노동당 정부는 이 신문사가 글레스고우에 있는 옛 비브브룩 빌딩을 살 수 있게 120만 파운드를 지원했다. 그러나 신문 판매가 썩 좋지 않았기 때문에 지원은 6개월만 지속됐다. 정부 보조금을 받는 신문은 결코 신뢰할 수 없고 객관적인 뉴스보다는 오히려 허위 선전을 유포할 거라는 인식도 있었다. 이는 아무리 좋은 의도라고 하더라도 영국의 신문사가 정부 지원을 다시 받는 것은 어렵다는 점을 확실히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방송 매체에서는 경우가 달랐다. 미국에서는 미디어 팽창에 대한 기본적인 입장이 변함없이 시장 주도적인 관점이었다. 그러나 영국에서는 BBC의 막강한 영향력으로 인해 지금까지도 공공 서비스라는 입장이 시장 지향적인 입장을 압도하고 있다. 1985년 당시 영국 보수당 정부는 방송 재정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피코크위원회를 설립했다. 피코크위원회의 기본적인 입장은 자유 시장에 우호적이었지만, 구체적인 문제를 어떻게 풀어갈 지에 대한 내용은 명확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코크위원회에 내재된 기본 철학은 방송 소비자가 스스로 원하는 것을 선택하고, 지불 가격도 스스로 정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새로운 미디어 세계에서 BBC의 위치는 여전히 어정쩡하지만, 위성과 케이블 기술은 어느 정도 이런 목표를 달성했다. 단순화해서 말하자면 수신료를 BBC가 다 가져갔지만, 수신료가 BBC만이 아니라 다른 방송사에도 지불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영국 소비자들이 BBC에 수신료를 지불하되, 만약 그들이 스카이 TV나 버진 케이블 등이 제공하는 다양한 채널을 보기 원한다면 추가로 수신료를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전송 시스템의 전제 조건 중 하나는 충분한 전문성과 자금력을 가진 미디어 기업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는 곧 시장 지향적인 해결책을 의미한다. 1965년까지도 세계 300대 기업 중에 미디어 회사는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20세기 말에 9~10개에 이르렀다. 이러한 성장은 규제 완화와 1차 디지털 기술 혁신 덕분이었다. 루퍼트 머독의 뉴스코퍼레이션 등 대규모 미디어 회사는 저널리즘 세계를 장악했다.

위성 방송의 세계에서는 하나의 왕국이 돋보였다. 바로 스카이 TV와 폭스 TV를 거느린 뉴스코퍼레이션이고, 지휘자는 루퍼트 머독이었다. 그의 기업은 5만3000명을 고용하고, 매출은 330억 달러에 이르며, 1일 시청자는 거의 10억 명에 육박한다. 그의 영지는 그의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남 호주 지역 애들레이드의 신문사를 기반으로 형성됐다. 그는 호주 주요 도시의 12개 신문 중 7개를 거느리게 됐다. 그리고 10개의 일요 신문 중 7개를 장악했다. 또 인쇄업체까지 소유했다. 종합적으로 그는 호주 주요 신문의 거의 70%를 좌지우지했다. 이에 따라 호주는 서방 세계에서 언론사 소유가 가장 집중된 곳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