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크푸르트학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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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About 프랑크푸르트학파
1. 프랑크푸르트학파
프랑크푸르트학파는 1930년대 이후 독일 프랑크푸르트 소재 사회연구소에서 호르크하이머를 중심으로 공동 작업을 했던 연구자 집단을 지칭한다. 1931년 호르크하이머가 연구소장으로 취임하고 새로운 연구 프로그램을 제시함으로써 프랑크푸르트학파라 일컬어지게 되었다. 이들은 기존 사회를 비판하고 이에 대한 대안적 사회를 모색하려는 사회 변혁 이론을 규범적인 이념으로 삼았다.
사회연구소는 이런 연구모델에 따라서 생산, 개성, 문화라는 세 가지 사회구성영역에서 일어나는 시대적 변화 과정을 추적하면서 이를 통해 사회적 억압을 비판하고, 대안적 사회상을 모색하려고 하였다. 이를 위해서 당시 독점자본주의의 등장에 대한 정치경제학적 연구, 개인의 복종적 성격 형성에 대한 사회심리학적 연구, 이데올로기적 대중문화 확산에 대한 문화이론적 연구에 몰두하였다.
하지만 나치의 등장으로 사회연구소는 폐쇄되었고, 호르크하이머는 뉴욕의 콜롬비아 대학으로 사회연구소를 이주시킨다. 이 기간에 이루어진 연구는 주로 권위주의에 대한 것이었지만, 전체주의적 소련과 독점자본주의의 미국을 경험하면서 점차 현대 사회의 파괴적 잠재력에 눈을 돌리게 된다. 그리고 전쟁이 끝나고, 연구를 발전시키고 수용할 수 있는 세대가 존재한다는 희망을 가지고 독일로 귀국한다.
프랑크푸르트학파는 이렇게 근 80여 년 동안 현존사회를 비판하고 대안적 사회를 모색한다는 학문적 자기의식 때문에 세대를 거쳐 그 지적 전통을 지속적으로 계승할 수 있었다. 물론, 학자들 중에서는 사회비판을 시도하되 규범적 토대가 모호하다거나, 대안제시로 나아가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2. 마르크스주의
사전적인 의미로는 마르크스의 사상과 학설의 체계이다. 과학적 사회주의라고도 불려지며,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이론적인 기반을 차지하고 있다. 마르크스주의의 이론적 기초로는 변증법적 유물론, 자본주의 사회의 내부구조와 법칙에 대한 분석, 노동자 계급을 주체로 한 사회주의 혁명과 그 사회의 건설 등이 있다.
3. 호르크하이머, 아도르노, 마르쿠제, 하버마스
호르크하이머는 자유와 이성의 실현을 막는 조건이 사회적 억압이라는 측면에서 비판했다. 기존의 이론을 전통이론(단순히 조건에서 결과를 도출하는 방식이고, 존재하는 것과 존재하는 것의 반복에 관한 이론이라고 생각하였다.)으로 보고, 비판적인 태도(말 그대로 비판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려고 하는 것이다. 잘못된 현상을 필연적으로 등장하게 만드는 사회구조 전체를 겨냥한다.)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호르크하이머는 모든 사회구성원의 개인적 이익이 합리적인 방식으로 충족될 수 있는 세계가 확립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사회적 양극화가 심화되고, 소수 자본가를 제외한 대다수의 노동자들의 이익이 부정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공동의 이익을 절대화하는 것은 이들을 지배하려는 이데올로기적 억압일 뿐인 것이다. 개인의 이기적인 충동을 부정하는 가치관 및 인간관이 확산되면서 공동의 이익을 위해 행동해야 한다는 믿음이 생겨나기 시작했지만, 이는 현실적 착취를 수용하는 결과를 낳았고, 현실의 문제를 은폐하는 이데올로기적 역할을 수행해왔다고 보았다.
호르크하이머에게 문화영역은 일종의 초개인적인 영역이다. 문화와의 관계를 통해서 인간은 세계를 이해하고 자신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인식지평을 획득하고, 인간의 사회화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문화이다. 그렇지만 문화가 경제적 생산관계에 종속됨으로써 생산과정에 필요한 역할에 맞게 개성을 형성하게 된다. 문화는 개인을 사회체제에 편입시키고, 이를 통해서 기존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경제적 생산관계와 개성의 형성을 매개하는 일종의 ‘개인형성권력’이라고 보았다. 즉, 문화는 현존하는 생산관계를 정당화하고 재생산하는 이데올로기로 변질되었고, 개성은 그에 따라 왜곡된 결과물인 것이다.
하지만, 호르크하이머는 인간의 정신적인 역량이 사회적으로 왜곡되는 과정만 밝히고, 왜곡되지 않게 실현될 수 있는 사회적 조건이 무엇인지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다시 말해, 자본주의적 생산관계를 비판하면서 여기에 내재된 사회적 지배체제가 문화와 개성 영역으로 확장되는 과정 해명에만 몰두하였다는 한계를 가진다. 호르크하이머는 문화적 이데올로기의 확산과 이에 따른 개인적 자아왜곡의 근본적인 원인인 사회적 생산관계를 이성적인 원칙에 따라 변혁하면 인간이 자아에 대한 문화적 억압과 왜곡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고 보았다. 왜냐하면 생산관계는 사회의 문화와 개성을 결정하는 근본적인 토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한다는 것이 문화적 개인 형성 권력의 소멸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변화된 생산관계에 상응하는 새로운 문화와 개성을 이야기할 수는 있지만, 문화를 매개로 개성형성을 결정하는 생산관계의 영향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존 생산관계의 유지에 기여하는 문화와 개성 형성이라는 억압구조는 여전히 존재하게 된다.
아도르노는 정신과 존재의 선차성에 대한 관념론과 유물론 사이의 논쟁은 변증법과는 무관하다고 여겼다. 헤겔의 관념론적 변증법이든, 마르크스의 유물론적 변증법이든 관념과 유물 중 하나를 선택하면 현실을 비판하는 힘이 사라진다고 보았고, 한사람이라도 고통을 받는 사람이 있다면 철학은 끝까지 사회를 비판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체주의는 하나를 끝없이 선택하도록 강요하는 지배체계이다. 자본주의적 전체주의에서는 자본으로 환산될 수 있는 교환가치에 의해 결정되는 유용성으로 사물을 분리한다. 살아있는 것과 죽어있는 것의 차이는 단지 값의 차이일 뿐이고, 모든 사물은 유용성의 정도로 평가되며, 사물은 사유가 아닌 선택의 대상일 뿐이다. 이런 사회에서는 선택에서 빠져나가려는 시도는 용납되지 않는다. 당시 나치를 피해 미국으로 망명했던 아도르노는 실증주의, 실용주의, 과학주의 사상이 지배적인 미국에서의 사유는 사실을 입증하고 현실을 긍정하는 것으로만 허용된다는 점을 보았다. 특정 음악프로그램의 청취율과 선호도를 연구하는 것은 광고와 시장의 변화에 프로그램을 종속시키는 연구라 보았고, 실증주의적 연구는 모든 것을 시장의 교환가치에 따라 분류하고 평가하는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즉, 자본주의에서의 선택이 자발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시장에서 결정된 교환가치에 순응하는 선택을 할 뿐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시장의 교환가치에 의해 철저히 관리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선택의 차이는 질적인 것이 아니라 양적인 것이다. 이런 사회 속에서 개인의 유일무이성은 다른 사람이 경제적 능력으로 선택할 수 없는 것을 선택할 수 있는지에 대한 능력으로 대체된다고 보았다. 개인의 차이와 비동일성조차 교환가치를 높이려는 상품의 전유물이 된 것이다. 그렇지만, 아도르노가 교환가치 자체를 문제삼았다기 보다는 교환가치라는 하나의 양적기준으로 모든 것의 질적 차이를 무시하거나 배제하는 문화가 전면화됨을 문제삼았다. 다시 말해서, 개별자들을 편가르고, 한쪽의 선택을 강요하는 논리가 된 보편적 이성은 한쪽을 선택하도록 강요하고 우리의 의식과 욕망을 총체적으로 관리하며 조작한다. 그리고 그런 사회에서 개인은 자신이 자율적으로 선택하고 향유한다고 착각하게 된다. 이 착각 속에서 관리와 조작은 은폐된다.
마르쿠제는 선진 산업사회를 비판하고, 정치적인 급진주의를 옹호했으며, 신좌파의 대표적인 사상가로서 68학생운동의 이론적인 지도자였다. 그는 마르크스주의를 실존주의 및 현상학과 결합시키려고 시도하였다. 기존의 기계론적 마르크스주의를 비판하면서 헤겔주의 및 휴머니즘의 관점에서 마르크스주의를 새롭게 해석하였다. 이를 가리켜 휴머니즘적 마르크스주의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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