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럼버스가 발견 한지상 낙원 바하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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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콜럼버스가 발견 한지상 낙원 바하마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콜럼버스가 발견한 지상낙원
“The Bahamas!”
Ⅰ. 서론
최근 현대인들의 여가시간과 소득이 증대함에 따라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이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다. 굴뚝 없는 산업이라 불리는 관광산업이 활성화 되면서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한 경쟁들이 치열하다. 그 지역의 특색이 그 지역의 경제력이 되는 요즘 시대에 세계 각국이 저마다의 지역 특색을 살려 관광지로 개발하는 Place marketing, 즉 장소 판촉에 경쟁이 불붙고 있다. 그 지역을 개발하기 위해 전해져 내려오는 전설이나 역사 등의 이야기를 그 지역에 대입하여 그곳의 가치나 흥미를 상승시키는 storytelling도 많이 행해지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이 여행을 떠나는 곳은 이미 여행지로 유명한 몇몇의 도시와 나라로 정형화 되어있다. 그 예로 그리스 신화에서 다루어지는 지중해지역이나 모차르트의 주 활동 무대였던 오스트리아의 빈이나 잘스부르크 등을 들 수 있다. 현대인의 여행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 일으키기 위해 이 글에서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생소한 관광지를 소개하려고 한다. 서인도 제도에 위치한 바하마(The commonwealth of the Bahamas)는 대항해 시대의 해적의 주활동 무대이면서 낭만적인 인어공주의 전설이 깃들어 있다. 이 글에서는 그곳의 자연·인문환경과 그곳의 관광문화, 그리고 그것을 이용한 place marketing을 소개할 것이다.
Ⅱ. 바하마의 기본 정보
그림 . 바하마 지도(goolgle 지도 참고)
미국의 플로리다주와 쿠바 섬 사이에 위치한 약 700개의 크고 작은 섬들과 2000여개의 산호초와 암초들로 이루어져 있는 바하마는 카리브해의 매력을 만끽할 수 있는 대표적인 관광국가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잘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미국의 대부호들에게 인기가 많은 이곳의 공식 명칭은 바하마 연방 (The common-wealth of the Bahamas)이다. 바하마(Bahama)는 섬들에 사주와 간석이 많아서 스페인어의 얕은 여울과 간조를 뜻 하는 바하마르[baja mar]에서 유래 했다고 한다.(책 ‘세계의 섬’-나카무라 츠네오 저. 150쪽 참고.) 수도는 나소(Nassau)이며 수도가 위치한 뉴프로비던스섬에 인구의 2/3가 집중되어 있다. 인구는 31만 명(2008기준) 정도로 약 35만 명인 부산의 인구수 보다 약간 적다. 바하마의 섬들은 북회귀선을 가로지르면서 서(西)대서양으로 약 23만 3,000km2에 걸쳐 자리 잡고 있으며 섬들의 면적을 모두 합하면 1만 3939km2 정도로 우리나라의 경상남도의 면적보다 조금 크다. 바하마의 대부분의 섬들은 석회암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대개 길고 평평한 모양을 하고 있고 해안선은 산호초로 덮여있어 그림 같은 풍광을 선사한다. 기후는 북회귀선 부근에 위치한 관계로 대부분 아열대성 기후를 띄고 있으며 총 강수량은 우리나라와 비슷한 1,000에서 1,500mm정도 이지만 여름에는 허리케인의 영향권에 속하기 때문에 매우 위험할 수 있다. 이곳의 국민은 대부분 유럽계와 노예로 끌려온 아프리카계의 혼혈이 대부분이고 영어를 공용어로 쓰지만 아이티에서 온 일부 이민자들이 ‘크레올’이라는 아이티의 토속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원래 이곳의 원주민은 루카얀으로 알려진 아라와크 인디언이다. 종교는 35%정도가 개신교를 믿으며 그 외에 영국국교회, 로마 카톨릭 등이 우세하다. 특히 기독교 계열을 믿는 독실한 신자가 많아 대부분의 사람들이 성경을 가지고 다니며 전 세계에서 1인당 교회 수가 가장 많은 나라라고 한다. 천혜의 자연환경을 배경으로 대부분 국토가 관광지로 개발되어있으며 수입세나 법인세가 없는 까닭에 바하마 내에 수백 개의 은행과 신탁회사가 들어섰다. 그들의 활성화된 관광산업과 여러 가지 혜택을 줌으로서 유치해낸 해외 기업들로 인해 창출된 이익으로 1인당의 GNP(Gross National product, 국민총생산)가 선진국과 비슷한 수준으로 성장하였다.
Ⅲ. 바하마의 역사
그림 . 콜럼버스의 설명으로 재현된 루카얀
그림 . 산살바도르섬
바하마의 역사는 남아메리카에 살던 종족의 일부가 카리브 인디언들 때문에 북쪽 카리브 해 쪽으로 쫓겨 오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이곳으로 쫓겨 온 종족이 바로 루카얀(Lucayans)이다. 이들은 자신들을 Lukkucairi(섬사람들)로 불렀으며 이곳에 들어온 유럽계 사람들에 의해 영어이름인 ‘루카얀’을 얻게 된다. 그들의 문화는 도자기와 바위위에 그려진 그림, 카누 등과 같은 단순한 것들에 제한되어있다. 평화로웠던 이곳을 발견한 사람은 우리에게 신대륙 발견으로 너무나 익숙한 콜럼버스(Christopher Columbus, 1451.8 ~ 1506.5.21.)이다. 1942년에 콜럼버스가 인도에 도착을 목표로 유럽을 떠나 도착한 곳이 바로 바하마의 산살바도르섬(와틀링섬)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콜럼버스는 죽을 때 까지 이곳을 인도라고 믿어 서인도 제도라고 명했으며 많은 스페인 사람들이 이곳으로 들어와 원주민들을 노예로 삼았다. 그들은 정착하지 않고 노예사냥을 계속하여 원주민의 수를 급감시켰으며 17세기에 영국이 바하마에 도착 했을 때에 이곳에는 아무도 살고 있지 않은 무인도 였다고 한다. 계속해서 이곳에 유럽인 이민 정책을 실시했지만 뜻대로 잘되지 않았고 그 주변의 버뮤다 지대의 사람들이 조금씩 이주를 하기 시작했다. 17세기 말이 되자 이곳의 사람들은 해적행위를 일삼았으며 후에는 영국의 지원을 받아 해적의 규모는 점점 커졌고 그들은 찰스타운(Charles Town)을 그들의 본거지로 삼았다. 18세기 초 스페인과 프랑스의 연합군이 찰스타운을 파괴했고 찰스타운은 후에 바하마의 수도인 나소(Nassau)가 되었다. 해적시대가 끝난 후에 바하마는 계속해서 빈곤에 허덕였고 미국의 남북전쟁으로 인해 바하마는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되었다. 남북전쟁이 시작되자 밀항자들이 바하마로 몰려들었고 미국에서 금주법을 시작하자 사람들은 바하마에서 밀조주 사업을 하여 그들에게 전성기를 맞게 해주었다. 미국의 경제 대공황으로 인해 바하마도 심각한 경제난을 겪게 되지만 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전후의 슬럼프를 벗어나기 위해 미국과 캐나다 같은 부유한 주변 국가를 통해 관광을 활성화했고 1959년에 쿠바혁명이 일어나면서 바하마는 여행의 새로운 메카로 떠오르게 되었다. 1960년대가 되면서 흑인들의 세력이 우세한 진보자유당이 정권을 장악하게 되었고 백인이 중심이 되었던 그동안의 사회구조를 억압하여 영국에서의 독립을 꾀했다. 1973년 바하마는 영국의 식민지에서 벗어나 영연방국가로 남게 되었다. 독립에 영향을 주었던 진보자유당의 과도한 정책상의 변화는 그들 자신의 세력이 마약밀매와 연결되어 부패하는데 도움이 되었고 80년대의 마약밀매 단속을 강화시키고 90년대에 당선된 새로운 정부는 바하마의 관광 산업을 활성화 시켜 지금의 그들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Ⅳ. 역사와 자연환경을 이용한 관광화
그림 . ‘캐리비안의 해적 2: 망자의함’의 배경이 된 바하마의 화이트키섬
그림 . 1992년 당시 바하마 1달러(네이버 참고)
그림 . 인어공주 전설의 장소인 엘레우테라 섬
바하마 사람들은 자신들의 처한 자연환경과 역사를 이용하여 그들이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는 산업, 즉 관광산업으로 발전시켰다. 항해와 약탈의 역사였던 그들의 해적시대의 배경이 된 나소(Nassau, 과거의 찰스 타운)를 수도로 삼고 초호화 관광지로 발전 시켰다. 과거의 해적시대의 흔적은 남아있지는 않지만 해적활동의 기반이 된 그들의 맑은 바다와 고운 모래사장을 중심으로 리조트를 만들어 개발하였으며 그 자연환경을 이용하여 영화 촬영지로도 각광받고 있다. ‘캐리비안의 해적’과 ‘007 카지노 로얄’ 등 때묻지 않은 순수한 환경을 배경으로 촬영함으로써 보는 사람들의 눈을 즐겁게 해주고 있다. 또 바하마를 발견한 콜럼버스(Christopher Columbus, 1451.8 ~ 1506.5.21.)의 일화를 부각함으로써 사람들의 호기심도 유발하고 있다. 1992년에는 콜럼버스 대발견의 500주년 기념으로 그들의 1달러에 콜럼버스의 사진을 싣기도 했다. 그곳에 살았던 원주민들의 수를 급감하는데 중심적인 원인이 되었던 사건이지만 그들을 홍보하고 알릴 수 있는 사건으로 부각시켜 관광객들의 관심과 호기심을 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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