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연극이 살아남을 수 있는통로제의로서의연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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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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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오늘날 연극이 살아남을 수 있는 통로 - 제의로서의 연극
1. 제의의 본질
* Artaud는 1931년 식민지 전람회에서 발리 무용 공연을보고 제의적이라 칭찬했다. 하지만 그것은 그가 언어와 문화를 잘 파악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그저 신비롭고 정신적인 의식으로 짐작하고 내린 생각에 불과하다. 20C 초의 많은 고전주의자들이 그리스 비극을 Artaud의 발리 공연 해석과 같은 방식으로 이해하고 있다. 고대 그리스 사회는 현대 유럽이나 미국 사회보다 훨씬 종교 의례적이었다. 신을 존경하는 뜻의 종교 제의적 행위를 수행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고 공동체를 결합시키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심지어 델포이에 있는 아폴로 신탁은 아테네인들에게 거리에서 춤을 추고 제단에서 화환을 쓰며 길가에 술을 놓고 하늘을 향해 그들의 팔을 들어올려 보임으로써 디오니소스를 존경한다는 것을 법령으로 정했고 이는 절대적 규칙으로까지 되어있었다.
우리에게 극장을 전승한 이런 그리스인들을 근본적으로 우리와 같은 사람이라는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을까? 아님 그들은 다채롭고 정신적으로 풍부한 다른 화신으로 오늘날 우리와는 비교도 안될, 더 총체적이고 더 순수한 극장을 창조해낼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고 이해해야 할까?
→ 5세기 아테네를 대표할 수 있는 비극은 그리스의 풍토, 사상, 신화 등 제문제에 걸쳐 이해되어야 한다.
풍토 : 우선 그리스는 산이 많고 평야가 적다. 자연적으로 산악 지구가 이루어져 이는 그리스가 여러 폴리스로 형성되었던 이유이다. 폴리스는 특별한 기질을 가진 정치 형태로서 고대 동방의 신정 독재 정치, 특권 관료의 사제가 지배하는 정치와는 완전히 다른 자유시민단의 정치였다. 그리스의 폴리스는 도시가 국가로 발전하여도 늘 도시적인 색깔을 갖게 했다. 아테네는 결코 로마가 될 수 없었는데, 그들이 정치적으로 자유 독립의 자유 시민이고 시민의 자유가 허용되는 것을 중요시한 그리스인의 성향 때문이다. 플라톤의 이상국가나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에서도 소시민 국가를 이상으로 하고 있다. 또한 전 국토는 석회암질이 지질이며 양질의 대리석이 생산된다. 좋은 품질의 대리석은 파르테논 신전을 가능케 했고 그리스 조각이 발달할 수 있던 밑거름이 되었다. 지중해성 기후로 겨울이 우기고 나머지는 대체로 건기였지만 덥지도 춥지도 않아 1년 내내 실외 생활이 적당했다. 노천에서 민회를 열고 극을 공연할 수 있었던 것도 이 기후 탓이다. 강렬한 햇빛과 그림자의 대조는 우울이나 신비적인 것보다 명랑하고 실제적이며 모험정신을 갖게 했고 그리스 예술의 시각성을 발달시켜 주었다.
사상 :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그리스 인은 남의 지배를 받지 않는 것, 자율적으로 사는 것, 자유롭게 사는 것을 최대의 보람으로 ‘자유를 잃을 바에는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는 정신이 그들의 인간관이었다. 그들은 합리주의에 투철했고 공상적인 추리를 배격했다. 관찰과 경험을 토대로 한 추리만을 믿는 과학적 정신이 있었다. 불충분하기는 하지만 그들은 천지개벽에 관한 신화를 과학적으로 설명하려 했고 인륜의 도를 그리스 비극에까지 파고들어 철저히 탐구하여 인생의 의의를 찾아내려 했다. 그리스 비극은 운명의 필연에서 인간 존재의 여러 모습, 특히 고난을 시간적인 국면에서 탐구하는 것이었다. 문제는 언제나 인간 그 자체였으며, 실존 그 자체였다. 인간 그 자체의 탐구가 극시의 궁극적인 목표였다.
신화 : 그리스 비극은 그들의 정신적인 양식인 신화를 소재로 하고 있다. 하지만 비극의 발생 과정에서 디오니소스 제례 때에 신을 즐겁게 하려는 가무가 있었지만 사실 비극은 단순히 현실의 신화적 표현은 아니다. 비극의 세계에서 인간의 존재를 탐구하여 인간 존재의 밑바닥까지 꿰뚫고 들어가 우리들의 실재의 세게, 본질의 세계를 찾으려는 것이다. 또한 그리스는 예부터 영웅을 제사지냈고 이 제례는 디오니소스 신 숭배 이전부터 나타났다. 영웅숭배 사상과 디오니소스 숭배 사상이 합류되었다. 따라서 그리스 비극이 영웅을 주제로 한 호메로스이 서사시를 원천으로 삼는 것이 이해될 수 있다. 더불어 비극에서는 항상 장엄성, 숭고성을 제시하려 했기에 테베의 랍다코스 집안(오이디푸스, 안티고네, 에테오클레스 등) 아르고스의 아트레우스 집안(아가멤논, 오레스테스, 엘렉트라 등)을 소재로 삼기도 했다.
→ 위에서 보았듯이 역사적으로 낳는 결과물들은 그것을 가능케 하는 제반적 요건이 형성되어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 지역이나 사람들의 고유성을 획득하고 그로 인해 나름대로의 색깔을 띠게 된다. 그렇다면 분명 우리나라에도 그리스와 같은 형태의 다른 색깔의 전통이 있고 그것에 기인한 문화적 결과물들이 있다. 이제 우리는 그 점에 더 초점을 맞추어 나가야 하지 않을까? 우리 것을 버리고 그리스 비극만을 공부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오늘날 세종문화회관이나 LG아트센터 같은 그럴듯한 공간에서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그것이 오히려 대중 속에 깊이 들어갈 수 있게 한 우리의 옛 연극, 마당극, 곡마단, 굿, 풍물 연주, 탈춤 등은 우리 고유의 색깔이 풍부히 들어간 굵직한 유산이다. 이 것들은 돗자리 하나, 아니 그조차도 필요치 않아 어디서든 판을 벌일 수 있었고 참여한 누구에게나 신명을 돋굴 수 있었다. 우리 연극의 모태 양식이 갖고 있는 힘은 그리스 비극과는 다른, 놀이를 하는 사람과 참여하는 사람의 벽이 허물없이 툭 트여 경건함이나 비장함보다는 좀더 소탈하고 용이한 그래서 소통이 더 자유롭다는 데 있다. 물론, 인간 존재의 보편적 통찰을 하게 하는 교훈적 그리스 비극의 미도 아름답지만, 대중들을 같이 끌어올리고 그들의 밑바닥에 흐르는 삶의 괴로움들에게서 해방시키는, 해우소같은 우리 전통 연희도 그 못지 않은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다. 서양 연극의 영향에 치우쳐 우리 전통을 사장하는 우를 범하지 않도록 더 깊은 관심과 연구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2. 제의와 공연
* ‘연극’은 항상 같은 모습으로 반복되는 데 비해 ‘제의’는 항상 다른 모습(현재적이고 일회적인) 으로 나타난다는 점을 들어 구별할 수 있다. 예를 들면 햄릿을 공연하는 텍스트는 항상 같지만 교회 예배에서 설교는 항상 새로운 내용을 담고 있다. 디오니소스제에서도 전에 바친 적이 없는 새로운 황소를 요구하는 것처럼 새로운 연극을 요구했다.
* 드라마가 이야기 즉 신화를 말하는 것에서 기인했는지, 디오니소스 무용 즉 제의를 말하는 것에서 기인했는지는 뜨거운 논쟁이 되어왔다. 첫 번째 가설은 디오니소스에 대한 드라마의 연결은 역사적 사건이라는 점에서 지지되고 있다. 두 번째 가설은 드라마가 즉흥극에서 시작되었고, 비극은 디오니소스에 대한 남근을 숭배하는 찬가를 부르거나 춤추는 나레이터로부터 기인했으며, 희극은 남근을 숭배하는 내용을 부르는 노래로부터 시작했다는 증거로 뒷받침되고 있다.
어느 것이 처음인가? 작가/이야기해주는 사람인가, 혹은 춤추는 사람/연기하는 사람인가? 언어인가, 몸인가?
→ 그리스 연극의 기원은 디오니소스 참배에서 시작되었다. 디오니소스 신은 술과 풍요, 쾌락의 신이며 그리스 연극의 뮤즈와 예술의 보호자이기도 했다. 포도를 수확할 때쯤 포도로 술을 만들어 마시며 이를 준 디오니소스 신을 찬미하기 시작하며 그리스 희극이 싹텄다. 그리스 비극 또한 디오신소스 신을 찬미하는 디시램브(dithyramb)라는 디오니소스 찬가에서 시작되었다. 아리온이 축연을 관장하며 비극이 발전했는데, 그는 합창 도중 코러스 장과 합창단이 가사를 주고받는 새 방법을 창안했다. 코러스 장과 합창단이 교환하는 이야기는 디오니소스 신의 모험에 관한 이야기였다. 연극사상 최초의 배우로 알려져 있는 테스피스가 디오니소스 신 찬미단에서 배우를 창조했고 배우가 동작을 할 수 있는 무대를 만들어냈다. 배우들은 가면을 많이 활용했는데, 이는 한 배우가 여러 인물 역을 맡은 이유도 있겠고 무대와 관객석이 멀어 표정을 볼 수 없기 때문에 시각적 효과를 노린 이유이기도 하다. 하나밖에 없던 배우가 아이스킬로스에 의해 둘로 나뉘어지고 소포클레스에 의해 제3의 배우가 형성되었다. 디오니소스 축연이 본격적 연극으로 발전하다가 기원전 5세기에 거의 완벽한 연극이 형성되었다.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뛰어난 극작가 출현과 함께 이 모든 행사를 아테네 국가에서 적극 관장하고 후원했기 때문이다. 재정적 면을 전담했고 배우들은 병역을 면제해주며 인정받는 경우 국가가 생활을 책임져 주었다. 즉, 그리스 연극은 디오니소스 신을 찬미하고 경연을 통해 연극을 즐기는 것 뿐 아니라 국민 교육과 국민의 단결을 도모하는데도 적극 활용된 것이다. 막도 없고 조명도 없던 당시의 야외극장에서 동이 틀 무렵 아이스킬로스의 ‘에우메니데스’나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를 보기 위해 몰려들었던 관객은 하루 7-8 시간을 돌계단에 앉아 공연을 지켜보며 그들의 과거를 알고 미래를 그려보았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