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덕 감독 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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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덕 감독 조사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김기덕 감독 조사
남성적 시선의 압도
에 나오는 여성은 자신을 창녀로 만든 남성을 끝내 사랑하고 만다. 그래서 그곳에서 벗어날 기회가 있음에도 스스로 창녀가 되기를 소망한다.
그런데 나는 해병대 제대하고 스물일곱엔가 처음 여자를 알았다. 여자에 대한 사고가 바뀐 것은 프랑스에 가서다. 거기서 여자를 사귄 것은 아니지만, 나체촌 등에 가서 ‘성’이라는 것의 자유로움, 나체촌의 10대 아이들이 발가벗고 배구하고, 할머니 아줌마들이 다리 벌리고 누워 이 잡는 모습 등을 보면서 여자에 대해 상당히 나를 가둬왔구나, 내가 너무 여자를 모르는구나 생각했다. 그리고 여자를 보는 시각이 바뀌었다. 난 여자한테 용감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중에 내가 택한 여자에 대한 표현을 많이 후회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김기덕)
여기서 나온 나체촌은 그들 스스로가 성에 자유롭게 행동하며, 다른 사람의 시선에 거리낌없이 행동할 수 있는 공간이다. 그러나 창녀촌이라는 공간은 자신들의 성을 남성들과 대등하게 드러내는 것이 아닌 화폐로 교환되는 매개물로써 일정량의 돈을 받은 시간동안 상대에게 소유되게 만든다. 자유로운 성의 주체가 되는 공간과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성의 매개물이 되는 공간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을 것이고, 실제로 김기덕 감독도 이 점을 의식하고 있음은 창녀들이 받는 억압, 폭력을 통해 드러난다.
의 여성이 창녀촌으로 들어올 때 사기극에 걸려들어 온몸으로 저항하지만 끝내 탈출하지 못하고 창녀촌의 공간에 갇히는 모습을 여과없이 드러내준다. 그리고 의 여자주인공 역시 건달에게 돈을 착취당하고 집안식구들에게 무시를 당하면서도 그 삶을 유지해야만 하는 비애감을 보여준다. 그렇지만 이러한 그녀들에 대한 시각을 가지지만 여기서 그 시선은 리얼리즘영화가 갖는 계급적인 피지배와 지배계급간의 갈등, 해방으로 나아가지 않고 김기덕 스스로도 말했듯이 반추상, 즉 현실에서 벗어난 우화적 이미지로 마무리를 지으며 그가 영화 전반에 보였던 창녀에 대한 억압적 시선은 환타지공간 속에서 그 존재를 감춘다. 그럼으로 인해 여성에 대한 시각은 그녀가 창녀가 되는 과정속에서 보이는 반항을 관음증적이고 쾌락적인 남성적 시선의 욕망을 채운 것에 만족하며 마무리 된다. 에서도 창녀여성이 몸을 파는 현장을 여대생이 도청하며 함께 남성적 시선으로 그 쾌감을 즐긴다. 역시 마찬가지로 창녀의 삶에서 또 다른 사회로 나아가지 못하고 같은 집에 살던 여대생 역시 자신의 삶으로 포함시키며 그 둘 사이의 유대감과 화해로 영화는 만족하며 끝이 난다.
“사실은 그의 성향 자체가 그가 슬픈 리얼리즘을 차분하고 냉정하게 밀고 나가지 못하게 하는 듯 하다. 그 대신 그는 위악적인 모습과 행위들을 과정적으로 극단화 하다가 돌연 그것들에 성스러운 그림자를 드리우거나 더 나아가 성스러움의 봉인을 찍음으로써 그것들을 구원하려 한다. 여기서 구원은 종교적으로 개입한다. 위악적 나르시즘은 위성적 나르시즘과 결탁한다. 내가 보기에 이것이 최악이다. ”(위악과 위성의 결탁 - 김진석영화평론가, 인물과 사상)
김진석 평론가가 최악이라고 언급한 부분은 여성 주인공들이 영화 후반부에서 어떻게 결말에 다다르는 가와 연관이 있다. 영화 전반부에서 창녀가 되거나, 혹은 이미 되어 있는 여성들이 갖는 고통과 슬픔은 후반부로 갈수록 그 비애감은 색이 옅어지고, 오히려 그러한 여성을 만들어낸 남성들을 위한 구원의 이미지로 나아가거나,(악어, 나쁜남자,사마리아) 동성간에 화해(파란대문)로 결론이 난다. 그런데 이때의 여성은 자신의 삶을 긍정하지도, 부정하지도 않은채 주어진 삶에 순응하는 모습을 보인다. 오히려 중요하게 초점이 맞춰지는 것은 그 과정 속에서 남성이 모성성에 의해 구원받으면서 피어나는 성스러운 이미지다. 김진석 평론가가 위성적 나르시즘이라고 말한 이것은 극악한 행동을 하던 남성이 그 행동에 대한 비판 없이 갑자기 결말에 도달해서는 성스러움을 입고 구원을 받는 것을 가리킨다. 그럼으로 인해 그 전에 남성이 저지른 행위들에 대한 비판은 자리를 잃고 오히려 폭력적인 행동들은 그가 입은 은혜에 눈이 가려져 정당화 된다. (나쁜남자의 복음성가가 울려퍼지는 장면, 섬에서의 구원, 악어에서의 죽음을 통한 구원, 활에서 노인이 죽어 여자와 영혼결혼을 통해 구원) 그리고 여기서의 여성은 남성을 위한 타자로써의 역할을 다할 뿐이고 그 전에 그녀가 받은 폭력은 남성의 성스러운 구원을 이룩하기 위한 준비단계로 변모하게 된다. 나체촌을 자유로운 성의 공간으로 인식했던 김기덕 감독의 인터뷰 내용과는 달리, 실제 그의 영화에서 여성의 성은 주체적인 입장을 잃고 도구로써 쓰이면서 행복해한다.
여성의 모습 - 성녀, 광기, 창녀
자본주의가 나타나 화폐가 나타나며 모든 경제적인 부분이 화폐로 환산되었다. 그러나 가정내의 여성의 가사노동은 화폐로 환산되지 못하고 여성의 권위 또한 가정내에서 힘을 잃어가며 그로인해 여성은 사적인 영역으로 위치가 밀려난다. 따라서 공적인 영역으로 나아간 남성들이 근대적인 이성과 합리적인 주체성을 가진 시각으로 보았을 때, 여전히 사적인 영역에서 근대화를 이루지 못한 여성은 전근대적인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모든 것을 치유하는 대지의 어머니, 모성의 이미지를 지닌다. 그런데, 그러한 여성이 공적인 영역으로 나올 때는 여성의 물질적 욕망은 자신의 육체를 매개로 남성의 성적 욕망과 교환될 수 있는 것으로 바라보고, 창녀의 이미지를 갖는다. 여기서의 창녀는 비합리적이고, 비이성적인, 아직 근대화되지 못한 여성이 공적영역으로 나왔을 때, 받게 되는 시선이고 이것은 사적 영역에서의 모성적 이미지와 다를 바 없다.
“남자들은 주체로서의 자기 자신의 자족성을 확실히 해 두기 위해 자신의 거울이 될 수 있는 여성을 필요로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초자연적이고, 비현실적인 영역에서 살고 있는 미친 여성을 구해내 가부장제가 이성이라고 부르는 영역으로 인도해야 할 필요가 있다.”(쇼사나 펠만 ,여성과 광기)
이러한 시선은 영화 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는데, 활점을 풀이하며 배에서만 살아온 여성은 비현실적인 영역에서 대사보다는 묘한 매력의 미소만을 보이며 살아간다. 그런 그녀는 낚시를 나온 청년에 의해 이성적인 세계인 사회로 나갈 수 있는 기회를 가진다. 그렇지만 악어와 사마리아의 여자처럼, 그녀는 자신을 비이성적 공간으로 몰아넣은 노인에게 돌아가 그와 결혼을 해 10년동안 그가 품어왔던 소원을 성취시켜 준다. 그녀가 십년동안 배 위에 묶여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지막에 노인의 자살과 영적인 섹스 배의 하얀 돗대만이 푸른 바다위에 떠있는 성스러운 이미지, 그리고 활에 대한 자막,(팽팽히 당겨진 것은 아름답다. 난 언제나 그런 아름다움을 사랑한다)으로 인해 노인은 납치에 대한 죄의식을 무너뜨리고 구원받으며, 성녀의 역할을 끝낸 여성은 조용히 타자의 역할을 다하고 또다른 가부장적 이성의 사회로 사라진다. 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봄이 활과 마찬가지로 사회에서 분리된 공간임에도 이곳을 사는 남성에게는 비이성적이고 탈출해야 할 곳이 아니라, 정신적 수련을 통해 초월적인 위치를 점할 수 있는 내면의 세계로 그려진 것과 비교해볼 수 있다. 그 곳을 찾은 여성은 남성을 세속적인 공간으로 이끌어 죄를 짓게 만드는 요부의 이미지를 갖는다. 활에서의 남성이 주체적으로 여성을 근대화된 사회로 안내했던 것과 달리, 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봄은 여성이 남성을 불안하고, 파멸의 공간으로 이끄는 것을 비교해서 생각해볼 수 있다. 그리고 에서의 여성이 감옥으로 찾아가 광기에 찬 행동으로 자신의 상처를 내보이다가, 자신의 죄를 뉘우친 가부장제의 사회로 돌아가는 모습도 이에 해당한다. 의 사랑을 위해 성형을 한뒤, 미친 사람처럼 남자를 찾아헤매는 여성과 에서 자신을 망가뜨리기 위해 먹을 것을 찾고, 토하는 여성도 마찬가지다.
참고문헌
참고문헌.
인물과 사상 -한국영화감독의 힘은 센가? , 김진석 평론.
너무 많이 알았던 히치콕-타니아 모들스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