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학 열풍과 신중화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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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학 열풍과 신중화사상
중국학의 개념과 성립배경
‘중국학’이란 1990년대부터 ‘중국’의 민족과 자연과 역사와 문화와 사상 등 전통적인 내용을 탐구하는 학문을 의미한다. 중국의 학계에서는 1990년대 초부터 형성된 ‘중국학열(中國學熱)’과 ‘중국학열’에 참여한 사람들에 의해 연구되는 ‘중국학(中國學)’에 대해 ‘중국학열’과 ‘중국학’이라고 부르지 않고, ‘국학열(國學熱)’과 ‘국학’(國學)이라고 명명한다.
그런데 중국학계에서 사용하는 이 ‘국학’이라는 말은 1990년대 출현한 것이 아니라, 근대 문화 발전사에 나타난 학술 명칭이라고 할 수 있다. 1840년의 아편 전쟁에 실패한 후, 중국인은 외적을 방어하고 부국강병을 위해 서양 문명을 학습하는 열기가 나타났다. 중국인은 서양의 기계제조 등의 물질문명으로부터 정치 제도와 철학과 종교 등의 정신문명에 이르기까지 끊임없는 서양 문화를 수입했다. ‘국학’ 이라는 말은 이러한 배경 아래에서 중국 전통 문화나 학술을 연구하는 학문이나 학과로 여겨지면서 나타났다. 이철승 저, 현대 중국사상계에 나타난 중국학열과 신중화사상 501~502P 참조
즉, 이 개념은 과학기술로 무장한 서양의 침입에 무기력하게 당하던 근대전환기의 중국에서 활약한 적지 않은 사상가들에 의해 당면한 국가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을 찾는 과정에 중국의 전통 사상을 연구하는 붐이 조성되면서 전해지고 확산되었다.
그런데 이 개념은 더 근원적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일본의 학계로부터 시작되었다. 즉 근대 전환기 중국의 학자들에 의해 사용되기 시작한 이 ‘국학’이라는 말은 중국에서 창안된 것이 아니라, 일본의 학계로부터 차용된 것이다. 일본에서는 17세기에서 18세기에 이르는 시기에 왕조 시대의 역사와 제도와 문학 등의 일본 고전을 연구하는 학과인 ‘국학파(國學派)’가 있었다. 이들은 청대의 ‘한학(漢學)’이 고문사학(古文辭學)과 고문헌학(古文獻學)을 통해 중국 성현의 도를 밝힌 것과 달리, 일본의 고문사학과 고문헌학을 통해 일본의 옛 도를 밝히고자 하였다. 이철승 저, 현대 중국사상계에 나타난 중국학열과 신중화사상 502P 참조
이와 같이 중국의 ‘국학’ 개념은 근대 중국에서 형성한 것으로 청대의 한학을 계승하고 근대 교육 제도에 입각하였으며, 중국의 전통 문화(역사철학언어문학 등)를 대상으로 하는 실증적인 학문 체계이다. 중화민국 이후에 사용한 ‘국학’ 개념 또한 주로 중국의 전통 문화 체계와 근대에 형성한 전통 문화를 연구하는 학술 체계이다. 이것은 ‘국학’ 개념이 일본의 경우에 중국의 학문과 상대해서 말한 것이고, 근대 중국의 경우에 서양 문화의 전래와 근대 교육 제도가 건립된 후에 서양 학술과 상대해서 말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철승 저, 현대 중국사상계에 나타난 중국학열과 신중화사상 502P 참조
따라서 이것은 일본과 중국 등 동아시아 역사에서 출현한 ‘국학’이라는 개념이 강자의 위치에서 자발적으로 형성된 것이 아니라, 약자의 처지에서 자신들의 전통적인 문화와 사상을 탐구하여 자기정체성을 확보하고자 하는 방어적인 측면에서 사용되어졌음을 말해준다. 즉 과거에 일본과 중국에서 사용된 이 ‘국학’이라는 개념은 보편성을 담보한 개념이라기보다, 자기 민족의 특수성에 국한하는 제한된 의미를 띠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철승 저, 현대 중국사상계에 나타난 중국학열과 신중화사상 502~503P 참조
2. 중국학열의 성립배경
중국에서 중국학 열풍이 본격적으로 조성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부터이지만, 신지도부는 이미 1980년대 초부터 전통문화를 회복하기 위한 방안을 강구하기 시작한다. 중국 정부는 국가 재정이 넉넉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1981년에 전문가들로 구성된 ‘국무원 고대서적 정리 출판 계획 소조’를 가동하여 고대서적에 관한 전문적인 출판사를 설립한다. 그리고 정부는 매년 고대서적과 전통문화의 정리와 연구와 출판을 활성화하는 데 이 기구를 활용한다. 정부의 이러한 노력에 힘입어 1990년대에는 고대서적에 관한 전문적인 출판사가 10여 개이고, 약 20개의 고대서적 연구소가 설립된다. 이러한 출판사와 연구소에서는 대대적으로 전통 문화의 연구와 전파를 추동시키며 중국학 열풍을 확산시키고 있다. 이철승 저, 현대 중국사상계에 나타난 중국학열과 신중화사상 506P
중국 정부의 이러한 노력과 더불어 사상계에서는 1980년대의 ‘문화열’을 통해 나타난 서양 문화의 충격에 대한 반성과 민족주의적 성향이 결합되어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면서 연구와 토론이 진행된다. 사상계의 이러한 분위기를 반영하여 1992년에 북경대학에 ‘중국 전통문화 연구센터’가 설립되고, 1993년에 『국학연구國學硏究』라는 잡지가 출판되었다. 이철승 저, 현대 중국사상계에 나타난 중국학열과 신중화사상 506P
관영 ‘중앙텔레비전 방송국’(CCTV)과 북경대학은 1993년 말에 공동으로 150집 분량의 을 촬영하면서 ‘옛것은 현재를 위해 사용한다.’는 원칙을 비판적으로 계승하고, 중화민족의 우수한 전통문화를 널리 떨치며 민족의 자존심과 자신감과 애국주의 사상을 드높일 것을 주창한다.
이와 같이 중국 전통문화의 회복에 관한 언론의 집중적인 관심은 중국학 열풍에 대한 관심을 중국 전역으로 확산시키는 면에 크게 기여한다. 특히 그들은 당면한 중국의 문제를 해결하고 미래의 중국문화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결정하는 면에 유가사상이 필요함을 절감하면서 마르크스주의 이념과 유가사상을 결합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1995년 12월에 중공중앙당교와 공자기금회가 연합하여 주최한 ‘마르크스주의와 유학’에 관한 학술발표대회는 이러한 사회 분위기를 적극적으로 반영한 결과이다.
이와 같이 중국 정부와 언론의 적극적인 지지 속에서 조성된 중국학 열풍은 21세기에 더욱 확산되고 있다. 중국의 사상계에서 중시되고 있는 이러한 중국학 열풍은 현재에도 광범위하게 진행되고 있는 사상적 조류임과 동시에 중화민족을 단결시키고 있는 이데올로기이다. 이철승 저, 중국학 열풍과 유학의 재인식
3. 화이관과 신중화사상
현대 중국 사상계의 ‘중국학열’에 배태된 중화사상은 전통적인 화이관에 나타난 문화중심주의적인 면과 현대 사회의 다양한 면을 결합하여 형성한 새로운 형태의 신중화사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철승 저, 중국사상에 나타난 ‘중국학열’과 신중화사상 511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