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대년의 종합창신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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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대년의 종합창신론
1. 장대년의 생애와 사상
장다이녠은 1909년 중국 허베이(河北) 성 셴 현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장롄은 학자였고, 큰형인 장선푸는 서양 철학에 밝았다. 유년 시절에 그는 어머니와 함께 시골에서 살면서 『논어』, 『맹자』, 『대학』 등 중국 고전을 두루 읽었다. 1920년 4월 어머니가 병으로 돌아가시자, 그는 아버지를 따라 베이징으로 이사 가 그해 겨울 베이징 사범 대학 부속 초등학교로 들어가게 된다. 중학교에 다니는 동안 그는 노자(老子) 철학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졌고, 1928년 고등학교 2학년 때에는 처음으로 논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철승,,[위대한 아시아] ,황금가지, 2003, p669
베이징 사범 대학에 다닐 때 그는 중국의 전통 철학과 서양 철학에 고르게 관심을 쏟았다. 서양의 신실재론, 실용주의, 생명철학, 진화론, 신헤겔주의 등을 비교 연구하면서 그는 특히 변증법적 유물론을 실제에 부합하는 가장 가치 있는 철학으로 여겼다.
1933년 베이징 사범 대학을 졸업한 그는 큰형인 장선푸의 소개로 철학계의 선배인 슝스리, 평유란, 진웨린 등과 교류하게 되고, 평유란과 진웨린의 추천을 받아 칭화 대학교 철학과 조교가 된다. 1934년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그는 칭화 대학 철학과 조교자리에서 물러났다가 1936년 복직하여 ‘철학 개론’과 ‘중국 철학 문제’등을 강의한다. 1937년 중일 전쟁이 발발발하고 일본군이 베이징에 진군하자 청화 대학은 원난 성의 쿤밍으로 옮겨 가지만 그는 베이징에 홀로 남아 연구에 몰두한다. 1943년 가을 그는 사립대인 중궈 대학의 강사가 되고, 1944년 부교수가 된다. 그런 후 1946년 여름 칭화 대학이 베이징으로 돌아오자 칭화 대학 철학과의 부교수가 되고, 1951년 교수로 승격한다. 이 당시 베이징 대학 철학과의 학과장은 진웨린이었고 펑유란은 중국 철학 연구실의 책임자였는데, 이들은 마르크스주의의 관점에서 중국 철학사를 연구하고 있었다. 1957년 ‘반우파’ 투쟁이 일어나면서 장다이넨은 유산계급 우파로 몰리면서 가르칠 권리를 박탈당한다. 이철승,,[위대한 아시아] ,황금가지, 2003, p670
1966년 문화 대혁명이 시작되자 그는 비판을 받고 재산을 몰수당한 후 1969년 9월부터 1년 동안 장시 성 리위 주로 하방된다. 1976년 마오쩌둥이 사망하면서 문화 대혁명이 종결되었고, 1979년 베이징 대학은 장다이녠의 명예를 회복시켜 준다. 그후 그는 1979년부터 10년 동안 ‘중국 철학사 학회’의 회장을 역임하고, 1985년부터 1994년까지 청화 대학 사상문화 연구소 소장을 역임한다. 1966년 허베이 인민출판사에서 그의 글들을 모아 총 여덟 권으로 된 『장다이녠 전집』을 출간한 바 있다.
그는 젊은 나이인 20~30 대에 이미 방법론, 우주론, 지식론, 인생론 등에서 자신의 관점을 제기하기 시작했고, 유심론과 유명론과 유리론에 대해 비판적인 관념을 유지했으며, 변증법적 유물론과 형식 논리학 및 유물론과 중국 전통 철학을 결합시키기 시작했다. 이 당시에 서향 철학을 배타적으로 여기는 ‘동방문화파’와 그 정반대 선에 있는 ‘전반서화파’ 양쪽을 비판하면서, 서양 문화의 우수한 내용과 동양 문화의 우수한 전통을 전통적으로 결합시켜야 한다는 내용의 ‘문화 창조주의’를 주장했다. 이철승,,[위대한 아시아] ,황금가지, 2003, 671쪽 인용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수많은 글을 발표했는데 어떻게 유심주의와 유물주의를 정확하게 평가할 것인가, 철학의 계급 분석 방법과 이론 분석 방법, 철학 유산의 비판적 계승등의 문제와 중국 전통 철학사 정리, 중국 전통 철학에 나타난 각 개념의 의미와 범주 등의 문제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피력했다. 또한 철학의 특수성과 보편성에 대해서도 선험적으로 존재하는 보편성이 특수성을 제약하는 것이 아니라, 특수성 속에서 보편적인 법칙이 도출되는 것으로 이해했는데, 이것은 그가 “이치는 사물보다 먼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물 속에 존재 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중국 전통철학자의 견해를 현대의 변증법적 유물론의 관점에서 재해석한 것이다. 그에게 인간이라는 의미는 불특정 다수의 모든 인간을 추상적으로 가르키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역사의 현장에서 성실하게 일하는 무산 계급의 사람들을 의미했다. 이철승,,[위대한 아시아] ,황금가지, 2003, 672쪽 인용
그는 「가치의 층차를 논한」과 「가치와 가치관을 논함」이라는 글에서 가치에는 서로 다른 층차가 있고, 그중에서도 내재적인 가치가 중요함을 역설하면서, 개인과 사회 및 물질문명과 정신문명이 함께 어우러질 때 비로소 참(眞), 착함(善), 아름다움(美)이라는 최고의 가치가 실현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철승, ,[위대한 아시아] ,황금가지, 2003, 673쪽 인용
또한 그의 문화 중심의 ‘종합 창신론’은 과학적 세계관을 견지하며 민중을 역사의 주역으로 생각하는 마르크스주의와 합리적인 체계가 생산력 향상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생각하는 서양의 근대 문명과 중국의 우수한 전통 문화, 이 세 가지를 창조적으로 종합하여 새로운 문명으로 건설해야 한다는 주장이 현대 중국 철학계에서 매우 의미 있게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지금도 그의 사상에 대한 후학들의 연구가 나날이 증가하고 있다. 이철승, ,[위대한 아시아] ,황금가지, 2003, 674쪽 인용
2. 비판계승론
1976년 가을 모택동의 사망과 함께 그간 진행되어왔던 ‘문화혁명’이 막을 내리자, 중국 사상계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였다. ‘문화혁명’ 기간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인 측면에서 노동자와 농민에 비해 상대적으로 입지가 좁았던 상당수 지식인들은 새로운 상황을 능동적으로 맞이하여 ‘문화혁명’에 대해 평등 사회가 실현된 것으로 평가하기보다 모택동에 대한 개인숭배 사상의 만연과 강요된 평균주의의 이념에 의해 광대한 인민의 인권이 침해된 것으로 평가했다. 1978년 ‘제11기 3중전회’를 전후로 중국 정치의 전면에 등장한 등소평을 중심으로 한 신흥 세력들은 ‘실천이 진리를 검증하는 유일한 기준’이라는 관점 아래, 중국 사회를 전면적으로 개혁하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모택동에 대한 개인 숭배 사상의 흔적 가운데 하나인 ‘양개범시론’의 허구성에 대해 비판하고, 모택동 시대와 구별되는 새로운 시대에 적합한 ‘실사구시’와 ‘사상해방’을 주장하며, 신‘백화제방’, ‘백가쟁명’의 시대를 열었다.
경직된 사회 구조에서 벗어난 중국의 지식인들은 1980년대에 더욱 자유로운 분위기속에 인간의 본질, 소외, 개인의 주체성, 실천, 자유주의, 사회주의, 전통, 현대, 동양, 서양, 보편성, 특수성 등 제반 문제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며 다양한 사조를 출현시켰고, 학계에서는 이와 같이 다양한 사상이 자유로우면서도 왕성하게 논의된 1980년대의 상황을 ‘문화열’이라고 명명한다. 이철승,,(오늘의 동양사상) 25집, 한국동양철학회 2006.7, 58쪽 인용
이 당시 논의된 여러 사조 가운데 대표적인 유파는 반전통의 관점에서 서양의 자유주의 이념을 전면적으로 수용하여 중국의 봉건적 잔재를 제거하여 새로운 중국을 건설해야 할 것으로 생각하는 ‘서화론’, 서양의 과학 사상을 본체로 여기고 중국 역사의 동력이라고 할 수 있는 문화 심리 구조가 반영된 전통 사상을 작용으로 여기는 ‘서체중용론’, 전통의 유가사상을 새롭게 해석하여 시대의 흐름에 부응시키고자 하는 ‘유학부흥론’, 마르크스주의의 세계관을 기본 이념으로 하면서 전통 사상에 대해 비판할 것과 계승할 것을 선별하여 전통 사상과 마르크스주의를 결합시키고자 하는 ‘비판계승론’, 서양의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시스템으로 중국 사회와 문화를 전면적으로 바꾸어야 한다고 보는 ‘철저제건론’ 등의 문제에 대해 내부 논쟁을 벌였다. 1980년대의 중국 사상계는 이처럼 직면한 시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각자의 관점에서 치열한 탐구를 진행하며 자신들의 논지를 강화시키고자 하였다.
비판계승론의 대표 이론가인 장대년, 임계유 등은 모택동사상의 성립 속에서 이론을 세워온 전통사상 연구자들이다. 비판 계승론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계승하기 위해서는 선택이 있어야 함을 말한 것으로 이것은 ‘계승의 대상’문제와 관련된 것에 비해, 자신의 추상계승법은 어떻게 계승 하여야 할 것을 논하는 것으로서 ‘계승의 방법’문제와 관련된 것이라는 논지다. 그래서 계승의 대상을 선택한 뒤에 대두하는 문제 즉 어떻게 계승 할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하여 자신의 추상계승법이 해결해 줄 수 있다고 하였다. 김진근, 「장대년의 중국철학사 연구 방법론에 관한 고찰」, 『東洋哲學』 제6집, 1995 151쪽 인용
때문에 모순,충돌 관계라기 보다는 서로 보완관계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이 더 정확한 모습이라고 한다. 예컨대 비판적 계승이 자신에게 유리한 것은 계승하고 해로운 것을 버리는 것이라면 이것은 국가와 민족, 개인이나 가정에서 공통적이라고 한다. 판단의 착오가 아니라면 해로운 것을 선택할 리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중국이 사회주의 혁명과 사회주의 건설을 하고자 할 때, 마르크스주의적인 것들을 선택 하는 것은 ‘비판적 계승’의 차원에 속한다고 말한다. 김진근, 「장대년의 중국철학사 연구 방법론에 관한 고찰」, 『東洋哲學』 제6집, 1995 152쪽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