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자와 시민 - 유가적 인간과 근대적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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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군자와 시민 - 유가적 인간과 근대적 인간
1. 인간이란?
인간은 생물학적으로 생물에 속하고, 더 좁게 말하면 생물 가운데서도 동물에 속한다. 생물학적으로 동물에 속하는 인간이 동물과 구별되어 인간으로 불리는 것은 이성의 발달에 기인한다. 이성은 자신을 반성하고 추동하는 역할을 한다. 인간은 이성을 통해 스스로의 삶을 돌아보고, 수정하며, 설명하고, 계획을 세운다. 인간은 이러한 이성의 힘에 의지하여 도구를 만들면서 불리했던 초기 자연환경의 어려움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원시시대에 맹수들보다 결코 유리하지 않았던 자연환경의 위험에서 벗어난 인간은 사회적 유대 관계를 공고히 하면서, 독특한 역사를 형성해갔다. 많은 세월이 흐르는 동안 각각의 무리들은 각각의 삶터에서 각각의 특수한 문화를 형성하면서, 때로는 서로 단합하고 때로는 서로 싸우며 삶의 영역을 지구 전역으로 확대해갔다. 상호 교류와 전쟁이 지속되는 가운데서도, 역사의 진행은 멈추지 않았다. 이러한 역사의 진행 속에서 인간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세워나갔다. 그들은 각각의 환경과 문화의 특징을 반영하면서 고유한 정체성을 확립해갔다. 수십만 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인류의 문명은 눈부시게 발전했다. 오늘날 우리 문화와 가치관의 원형 역시 이러한 고대 문명으로부터 계승되고 발전된 것이다. 특히 기원전에 형성된 고대 아테네의 민주주의 사상과 중국 선진(先秦) 시기의 유가(儒家) 사상은 이른바 서양 문명과 동아시아 문명의 양대 중추를 이루면서 오늘날 우리의 가치관을 형성하는 데 적잖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고대 아테네의 시민 의식과 중국 선진 시기의 군자관은 그들 각자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인간의 모습이었다. 고대 아테네의 민주주의 사상이 비록 여성과 노예가 제외된 상태에서 소수 귀족을 위해 기능했을지라도, 그 사상은 근대 서양의 시민 의식을 토대로 하는 민주주의 이념의 원형이 되면서 오늘날 서양 사상의 초석 역할을 하고 있다. 또한 도덕을 중시하는 중국 선진 시기의 유가 사상이 비록 한대(漢代) 이후에 관학화되면서 경직된 측면이 나타나지만, 그들이 제시하는 군자관은 오늘날 한국과 중국을 비롯한 적잖은 동아시아인들에게 이상적 인간상의 원형 역할을 하고 있다.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철학, 문화를 읽다』, 동녘, 2009, p.13~15 인용
2. 유가적 인간 - 군자
유가에서 중시하는 군자(君子)의 개념은 사실 공자(孔子 : 551~479B.C.)시대 이전부터 있었다. 이 개념은 갑골문(甲骨文)이나 금문(金文)에 나타나지 않는다. 이 때문에 많은 학자가 이 개념이 주(周)나라가 성립된 이후에 형성된 것으로 여긴다. 중국에서 공자 이전에 사용되었던 이 개념은 정치적 신분을 지칭하는 개념이었다. 당시에 이것은 ‘군주[君]의 아들[子]’과 같이 왕족이나 귀족 등 신분이 높은 인간을 일컫는 말이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이 개념에는 신분이 높은 정치인과 더불어 이상적인 정치가의 의미가 뒤섞였다. 이 때문에 많은 사상가가 자신의 관점을 투영시키는 과정에서 이상적인 정치인상으로 군자 개념을 사용했다. 곧 공자 시대 이전의 군자는 지배층의 성격을 띠고, 피지배층에 해당하는 소인(小人)과 상대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신분 개념이었다.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철학, 문화를 읽다』, 동녘, 2009, p.15 인용
그러나 공자 시대에 이르러 이 개념은 달리 쓰이기 시작했다. 공자 역시 이 개념을 부분적이나마 신분의 뜻으로 사용한 적이 있다. 그러나 공자는 이 개념을 대부분 신분의 뜻과 구별되는 도덕성을 갖춘 인간의 의미로 사용했다. 공자는 자신이 살던 시대를 혼란한 시대로 보았다. 그는 생산력의 발전으로 인해 새롭게 등장하는 신흥 세력들이 주나라의 질서 체계를 붕괴시킨다고 생각하고, 이를 안타깝게 여겼다. 그는 신흥 세력들이 추구하는 부국강병 정책을 약육강식의 논리에 기초한 비인간적인 것으로 여겼다. 그는 주나라 초기에 주공(周公)이 정립한 질서 체계[周禮]를 인간이 추구해야 할 바람직한 규범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인간을 도덕적 존재로 여기는 주공의 사상을 수용한 후, 이것을 더욱 체계적으로 정립하여 유가 사상의 종지로 삼았다. 인(仁)으로 대표되는 그의 철학 사상은 효제충신(孝悌忠信)ㆍ박시제중(博施濟衆)ㆍ애인(愛人)ㆍ충서(忠恕)ㆍ정명(正名)ㆍ극기복례(克己復禮) 등을 비롯한 수많은 사상을 내부에 함유하며, 도덕적 인간에 관해 종합적으로 취급하고 있다.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철학, 문화를 읽다』, 동녘, 2009, p.16 인용
공자에 따르면, 성인(聖人)은 이러한 도덕적 내용을 완벽하게 실현하는 인간이다. 그러나 보통의 인간으로서 이러한 도덕성을 완벽하게 실현하기란 쉽지 않다. 곧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이러한 도덕성을 실현할 가능성을 갖추고 있지만, 모든 인간이 이러한 도덕성을 즉시 실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현실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이러한 성인의 모습을 닮으려고 노력하는 일이다. 이러한 일은 비록 성인과 같이 완벽한 역량을 갖추지 못했을지라도, 평범한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일은 덕과 재주가 평범한 인간보다 뛰어난 인간이라야 할 수 있다. 공자는 이러한 인간을 군자라고 명명한다.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철학, 문화를 읽다』, 동녘, 2009, p.16 인용
공자에 따르면, 군자는 개인의 이익 추구를 중심 가치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공적 의로움의 실현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인간이다. 개인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인간은 군자의 대척점에 있는 소인이다. 소인은 자기의 사사로운 이익 추구를 중요한 가치로 여긴다. 이 때문에 소인은 자신의 이익을 확보하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소인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일조차도 서슴지 않는다. 소인은 남을 배려하지 않으며, 비열한 방법조차도 스스럼없이 사용한다. 비록 사회적 지위가 높거나 경제적 여유가 풍부한 인간이라도, 자신의 이익만을 위하는 삶을 추구한다면 이러한 인간은 모두 소인이다. 소인의 기준은 사회적인 지위의 높고 낮음이나 지식의 많고 적음에 있지 않다. 공자의 견해에 따르면, 공공의 질서 의식이 약하고 개인의 이기심을 강하게 추구하는 인간은 모두 소인이다.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철학, 문화를 읽다』, 동녘, 2009, p.17 인용
공자와 맹자를 중심으로 하는 선진 유가의 이러한 도덕성을 근거로 하는 군자관은 순자(荀子)와 왕충(王充)을 비롯한 적잖은 후대의 학자들에 의해 도덕성의 근거 부분에 대한 반론에 직면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비판적 지식인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선비[士]’의 모습으로 동아시아의 전통 사회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면서, 수천 년 동안 한ㆍ중ㆍ일을 중심으로 하는 동아시아인들의 중심적 가치관으로 자리매김했다.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철학, 문화를 읽다』, 동녘, 2009, p.18 인용
3. 근대적 인간 - 시민
시민(citizen)이란 비록 고대 아테네에서 시작했지만, 1789년 프랑스 혁명을 전후로 새롭게 형성된 근대적 개념이다. 이 시민은 역사적으로 민주주의 이념과 깊게 관련된다.
오늘날 많은 나라에서 채택하고 있는 민주주의 이념의 어원은 데모크라티아(demokratia)에서 유래한 것으로, 인민(demos)의 지배(kratia)를 의미한다. 고대 아테네에서 시행된 민주주의는 인민이 민회ㆍ평의회ㆍ법원 등의 제도를 통해 통치에 직접 참여했다. 그러나 이러한 아테네의 민주주의는 많은 노예의 노동에 의해 산출된 잉여가치를 소수의 성인 남자 중심의 자유민, 곧 시민이 소유하는 형태의 민주주의였다. 이러한 귀족 중심적 민주주의의 성향 때문에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아테네의 민주주의에 대해 회의적인 태도를 취하기도 했다.
그런데 아테네의 이러한 민주주의 제도는 로마의 제국주의와 중세 봉건 사회에서 견실을 거두지 못하고, 산업 사회의 도래와 함께 신흥 세력으로 성장한 부르주아 계층인 시민들의 ‘천부인권(天賦人權)’론으로 인해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자유ㆍ평등ㆍ박애 등의 이념을 자연권으로 생각하는 신흥 세력은 인간에 대해 누구나 태어나면서부터 생명ㆍ건강ㆍ자유ㆍ재산 등의 권리를 가질 수 있는 존재로 여겼다. 그들은 타인에게 양도할 수 없는 이러한 자연권을 천부인권으로 여기며 절대왕정에 맞서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주장했다. 그들은 최소 국가를 지향하면서 사회에서 최소의 안전과 질서를 위해 사회계약의 필요성을 제기했는데, 대표적인 사상가로는 로크와 루소 등이 있다.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철학, 문화를 읽다』, 동녘, 2009, p.18~19 인용
특히 로크는 사유재산권을 자연권으로 옹호했는데, 이것은 부르주아 계층의 관점을 반영할 뿐만 아니라 이기심을 긍정하는 시민들의 의식을 확산시키는 면에 기여했다. 그러나 이기심이란 기본적으로 자기 중심주의적인 성격이 강하게 작용하는 심리 상태다. 이 때문에 상대에 대한 배려와 양보 없이 전개되는 이기심은 동일한 경향의 다른 이기심과 마주할 때 필연적으로 충돌할 수밖에 없다. 각자의 이기심을 양보 없이 확보하려고 노력하는 과정에, 서로의 이기심은 반드시 모순 관계에 빠진다. 이 때문에 그들은 각자의 손실을 최소화하고 이익을 최대로 확장하려면 서로 이기심의 발현을 제한할 필요가 있음을 인식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이익확대에 대한 손실을 축소하기 위해 역설적으로 자신들의 이기심을 제약하는 규약에 합의할 수밖에 없었다. 곧 그들은 개인의 도덕성을 신뢰하는 상태에서 서로 양보함으로써 자신들의 이익을 확보하는 방법을 택하지 않고, 강제적인 규약이라는 제도를 통해 이익을 확보하고자 했다. 이것은 신뢰에 대한 주관적 심리 상태를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방법이 아니라,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기준을 통해 이익을 확보하려는 태도다.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철학, 문화를 읽다』, 동녘, 2009, p.19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