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후기 - 섬김과 나눔으로 세계를(제7차 필리핀 단기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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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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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섬김과 나눔으로 세계를
(제7차 필리핀 단기선교)
우리 필리핀 단기선교단 일행 40명을 태운 비행기는 3시간 40분의 비행을 마치고 마닐라국제공항, 정식 명칭으로는 니노이 아퀴노 국제공항(Ninoy Aquino International Airport)에 도착했다. 마닐라국제공항은 인천공항에 비해 작은 규모였고 공항 내에는 키가 작고 얼굴색이 가모잡잡한 필리핀 사람들이 주로 흰색 남방을 걸치고 누군가를 기다리며 무리지어 서성이고 있었다. 그 모습은 공항 밖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공항은 떠나고 도착하는 장소요, 만나고 헤어지는 장소이기에 언제나 묘한 설레임과 가벼운 흥분을 느끼게 되는 장소이다. 이제 필리핀 단기선교 현지 사역이 시작되었다.
각자의 여행용 케리어와 선교지에 전달할 선교물품 십여 박스를 가지고 밖으로 나오니 선교사님 내외분이 기다리고 계셨다. 최승일 선교사님은 성결교회 파송 선교사로 필리핀에서 사역을 계속해 온지 올해로 17년이나 되신 시니어(Senior, 선임) 선교사이시다. 키가 크고 어깨가 넓을 뿐 아니라 이목구비가 반듯한 호남형이시다. 죄송한 표현이지만 아마 그 풍채만으로도 필리핀 선교에 한 몫 하셨을 것 같다. 반면에 옆에 서 계신 황순이 사모님은 매우 가냘픈 몸매에 얼굴이 갸름한 미인으로 마치 필리핀 사람처럼 느껴지는 인상이셨다. 그렇게 느껴지는 것은 필리핀에 너무 오래 계셔서일까? 아니면 필리핀 사람을 너무 사랑해서일까? 17년 동안이나 이국에서 주님의 일을 하시느라 얼마나 수고가 많으셨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임대버스에 타고 곧장 마닐라 시내에 들어갔다. 나중에 자세히 살펴보니 버스는 우리나라 현대자동차에서 1999년에 출고되어 고속버스로 운행 되다가 퇴역하여 이곳 필리핀에까지 건너와서 관광객을 실어 나르는 사명을 감당하고 있는 중이었다. 공항을 벗어나자 각종 빌딩이며 상가가 펼쳐지기 시작했다. 간판은 주로 영어로 써 있었고 오래된 건물이 많아 다소 지저분하다고 느껴질 정도이다. 전력 사정이 안 좋은지 상가 안쪽도 다소 어둡게 보였다. 도로에는 승용차를 비롯해서 지프니, 트라이시클 등 온갖 차들이 몰려나와 매우 복잡했다. 며칠 경험해 보니 마닐라 시내는 언제나 교통 혼잡이 큰 문제였다. 혼잡한 교통 상황은 우리 같은 여행객들도 불편하게 할 뿐만 아니라 산업 물류의 원활한 소통에 장애가 되어 필리핀 경제의 발목을 잡는 큰 문제 덩어리로 작용할 것은 뻔한 노릇이다. 필리핀 정치 지도자들이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로 보였다. 우리 일행은 을 거쳐 로 향했다.
인트라무로스(Intramuros)는 16세기경에 스페인이 필리핀 통치의 근거지로 삼았던 성채도시로서 산티아고요새, 리잘기념관, 마닐라대성당 등이 자리하고 있다. 이곳은 원래 스페인사람들이 살던 옛 도시이다. 따라서 지금도 300년 이상 된 고색창연한 건물들이 여러 채 자리를 지키고 있다. 과거에는 사회 지배층인 스페인인과 스페인 혼혈계만이 인트라무로스 내에서 살 수 있었다. 비록 지금은 2차 세계대전 폭격으로 흔적만 남아 있지만, 산티아고요새는 인트라무로스 내 스페인 군사요새로서 북쪽의 파시그강(Pasig River)을 내려다보는 요충지에 자리를 잡았으며 1571년 목조로 축조 되었다가 석조 요새로 재건축되었다.
산티아고요새로 들어가 보니 공원처럼 꾸며져 있었다. 성벽 밑으로 동서양을 막론하고 고성축조 양식에서 빠지지 않는 해자(垓字, 웅덩이를 파고 물은 채워 넣어서 만든 물길로 성의 방어수단으로 사용)가 있는데 지금은 단지 일부만이 남아있는 것 같았다. 또 바닥에는 호세 리잘의 처형 당시, 두 발목이 쇠사슬로 묶인 상태로 걸어갔던 길에 발자국 모형이 남아있다. 그 당시 스페인에 반역한 필리핀의 독립 운동가들을 감금했던 처참한 지하 감옥이 아직도 남아 있었으며, 필리핀 국민 영웅 호세 리잘을 기념하는 기념관이 있다.
필리핀은 제대로 된 나라로서의 채비를 갖추기도 전에 무려 333년 동안이나 스페인의 강압 통치를 받았고, 다시 미국에게 40여년, 또 일본에게 3년여 통치를 받은 아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2차 세계대전 후에 이르러서야 겨우 독립을 이루었다. 필리핀이란 나라이름조차도 스페인의 필립 왕의 이름을 차용한 것이니 더 말 해 무엇하랴. 필리핀에도 자국의 자주적 독립을 위해 영웅적으로 투쟁한 이가 있었으니 그 이름이 바로 호세 리잘이다.
호세 리잘(Jose Rizal, 1861.6.19~1896.12.30)은 루손섬 칼람바 출생으로 부유한 지주의 집안에서 태어나 아테네오데마닐라대학과 산토토마스대학에서 공부하였다. 1882년 스페인 마드리드대학에 유학, 의학을 공부하는 한편 필리핀 식민지의 개혁을 요구하는 언론활동에 참여하였다. 당시 필리핀은 300여 년에 걸친 스페인 식민통치의 폐해가 도처에서 나타나, 민중의 저항은 소요로 번져갔다. 1886년 발표한 첫 소설 《나에게 손대지 말라 Noli me tangere》와 《체제전복 El filibusterismo》(1891)으로 개혁운동의 대변자로서의 위치를 굳혔다. 필리핀 혁명(1896∼1902)과 필리핀 민족주의의 사상적인 기반은 그의 문필활동에 힘입은 바 컸다. 1892년 마닐라에서 필리핀민족동맹을 조직, 사회개혁운동을 전개하다 체포되어 다피탄섬으로 유형되었다. 그 후 1896년 민족주의 비밀결사단체인 카티푸난이 일으킨 폭동에 연루되었다는 혐의로 체포되어 12월, 그의 나이 불과 35세에 마닐라에서 공개 처형되었다.
기념관에 들어가 보니 호세 리잘의 사진, 유품 등이 전시되어 있었다. 박물관 한켠에서는 방명록에 서명을 받으며 얼마간의 기부금을 요구하는 직원이 있어 씁쓸했다. 우리 일행은 전시관을 쓱- 둘러보고 나와 분수와 온갖 꽃 등이 가꾸어진 스페인식 정원에서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산티아고요새를 빠져나와 마닐라대성당으로 향했다.
필리핀은 전 국민의 9%만이 개신교도인 반면에, 약 83%가 가톨릭교도로 아시아에서는 유일하게 가톨릭 국가이다. 이는 오랜 동안의 스페인 식민지 생활에 영향을 받은 것이다. 가톨릭 신앙은 필리핀 사람들의 생활에 깊숙이 자리하고 있으나 그들의 내면을 변화시켜 영적으로 충만케 하거나 도덕성을 높이거나 사회 진보와 개혁의 동력으로 작용하지는 못하였다. 오늘의 필리핀 사람들의 어두운 일상이나 뒤쳐진 필리핀 경제가 그 것을 증명한다. 하루 빨리 이들이 개신교 복음을 통해 개인의 영성과 삶의 질이 향상되고 사회와 국가의 발전을 이루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마닐라대성당[大聖堂, Manila Cathedral]은 인트라무로스 내 로마광장에 있는 대주교좌성당이다. 가톨릭 포교의 중심지로서 스페인 식민지배시대인 1581년에 처음 건축되었으며 이후 여러 차례 재건되었다. 처음에는 니파(nipa) 야자나무와 대나무로 지었는데 태풍과 화재로 부서져, 1592년 석재로 다시 지었으나 1600년 지진으로 파괴되었다. 세 번째 건물은 1614년에 완공한 것으로 3개의 본당과 7개의 예배당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1645년 마닐라를 휩쓴 지진으로 무너졌다. 이후에도 지진, 전쟁 등으로 파괴된 것을 연이어 재건하였고, 지금의 건물은 제2차 세계대전 때 미국의 공격으로 완전히 부서진 것을 1945년에 다시 짓기 시작하여 1958년에 완성한 것이다. 필리핀 건축가 페르난도 오캄포(Fernando Ocampo)가 로마네스크-비잔틴양식으로 설계하였고, 바티칸의 원조를 받아 과거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였다. 특히 필리핀의 종교적 상징주의를 표현한 스테인드글라스 창과 대성당의 역사를 나타내고 있는 청동문이 유명하다. 1981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하여 특별한 혜택을 누리는 소 바실리카(minor basillica)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