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연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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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wp1.들어가며
‘조정래’라고 하면 일단 , , 등 분단과 이데올로기를 소재로 한 장편 소설가라고 떠올리게 된다. 우리나라 국민이라면 반드시 읽어봐야 한다는 소설들.. 하지만 나는 그 양에 겁이 난 것인지 내 독서능력이 모자라서 인지 아직까지 이름 난 저 소설들을 아직 읽지는 못했지만 언젠간 꼭 보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러고 있는 중 그의 새로운 장편소설 이 내 눈에 들어왔다.
소설의 줄거리를 짧게 말하자면 소설의 주인공인 ‘윤혁’과 그의 ‘운명의 쌍생아 박동건’ 그들이 자신의 삶보다 더 소중히 생각했던 사회주의 정권, 즉 북한의 인민당에서 사명을 받들고 남파한다. 하지만 그 작전은 시작도 하지 못한 채 남한 정부에 채포되어 강제적인 전향압박과 ‘적화통일’의 망상을 가지고 남한을 전복했다는 이유로 30년 이상의 투옥 생활을 하게 된다. 석방 후 사회는 물론 가족들에게도 버림받고 외롭고 쓸쓸한 고통의 나날들을 보내면서 동지의 죽음 (박동건), 비전향자의 북송, 몰락해 버린 사회주의 체제에 대한 충격 등 혼란한 인생을 살아가는 이념형 인간의 삶의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가, 아니 소설의 주인공인 ‘윤혁’이 왜 나에겐 큰 의미로 남아있는 것일까? 그 이유는 먼저 사회주의, 공산주의에 대한 ‘반공’의 개념을 직접적으로 보여주지 않은 학교 교육과 사회적 분위기에 자라온 나에게 있어서 ‘윤혁’의 삶의 이야기는 나에게 신선한 충격 안겨주었기 때문이고 또 하나로는 ‘윤혁’을 이념을 떠나 한 인간의 모습으로 생각해 볼 때 자신의 이념에 대한 믿음 ,실패, 그리고 실패에 따른 충격을 극복해 나가는 과정을 통해 본 인간의 존재에 대한 생각이 내 가슴속에 오래 남아있었기 때문이라 본다.
그럼 ‘윤혁’이란 인물을 소설에서 크게 절망과 희망이라는 대별되는 두 가지 이미지를 통해 그를 이야기 해 보도록 하겠다.
2. 이념의 실패와 절망, 그리고 죽음
소설 속 ‘윤혁’은 앞서 줄거리소개에서도 언급했듯이 해방 후 사회주의 이념에 대한 강한 믿음으로 자신의 삶의 거의 모든 시간을 살아간 인물이다. 그럼 ‘윤혁’은 왜 그렇게도 이념에 대한 강한 신념을 가지고 있었던 것 일까? 소설 속에서 어떤 계기로 당에 입당 했는지는 직접적으로 언급하고 있진 않지만 그의 성품을 통해 짐작 해 보면 그는 ‘유식한 사람’이었다. 석방 후 ‘윤혁’을 감시하는 형사의 말에서도 그렇고, 주인집 아주머니가 ‘윤혁’에게 호의적인 태도를 보인다는 점에서 이런 사실을 알 수 있다. ‘유식하다’ 이 말을 그의 나이에 짐작해 보면 어려운 시대 때(일제 강점기) 꽤 교육을 받은 자 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는 지식을 자신을 살고 있는 세상을 위해 소신 있게 펼쳐 보려고 노력했던 인물이라 보여 진다. 일제시대 때 고문을 당한 후부터 고문 공포증이 생겼다는 대목에서도 지식인으로서 어느 정도 사회에 대한 저항을 하였다고 유추할 수 있었다. 또 그가 전향하는 것을 그렇게도 저항하는 모습에서도 해방 후 대부분 지식인들이 자신의 선택에 의해 월북하였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따라서 ‘윤혁’에 있어서 그 이념은 자신의 지식을 실현시킬 수 있는 공간이며 해방 후 혼란한 당대에 백성(피지배계층)들에게는 희망을 줄 수 있는 이상향 이였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선택과 당의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것에 대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면서까지 자랑스럽게 여기며, 남한정부에 채포되었을 때도 고문의 고통을 버틸 수 있는 힘이 되었을 것이다.
이렇게 ‘윤혁’의 전부였던 그 이념, 그에게는 성지와도 같은 ‘사상의 조국’(소련)이 붕괴되어버렸다. 이에 대한 충격은 ‘윤혁’은 물론 그의 ‘운명의 일란성 쌍생아 박동건’에게는 더 이상 이 세상에 살 이유를 읽어버린 충격으로 죽음까지 이르게 한다.
박동건, 그가 끝내 죽었다. 그를 저세상으로 데려간 것은 어떤 병이 아니었다. 가을 찬바람 속에서 떨어지지 않을 단풍이 어디 있겠는가. 서릿바람에 못 견디어 떨어지는 무수한 낙엽들을 누가 기억하겠는가, 그는 계절풍이 아닌 야릇한 바람에 휩쓸려 한 잎 낙엽으로 떠나갔다.
‘계절풍이 아닌 야릇한 바람’이라고 이념붕괴와 박동건의 죽음에 대한 표현은 그가 받았던 충격과 더 나아가 그의 삶의 대한 재평가를 하게 하게끔 하는 표현으로 보인다. 30년 넘는 감옥살이와 석방 후에도 사회에서 처절히 버림 받은 그들의 삶, ‘강제적 전향’했던 그들.. 그들에게 있어서 ‘전향’은 사상의 변질자이며 북의 논리에서는 용서받을 수 없는 행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선택이 아닌 할 수밖에 없었던 것 이였기 때문에 평생 동안 이념의 존재에 대해 늘 죄스럽게 살아간 고통의 삶의 궤적은 결국 실패의 삶이었다. 한평생 자신의 존재를 입증시켜주었던 이념, 그 이념의 실패는 결국 죽음과 회의, 어느 곳에서 보상받을 수 없는 아무 쓸모없는 생산물에 불과 했다.
여기에서 ‘윤혁’은 어디 가서 하소연하지도 저항하지도 않은 채 혼자 마음속으로 그 혼란과 패배감을 받아들이며 아파한다. 수감생활 때 겪은 심한 어지럼증의 재발과 계속되는 악몽에도 불고하고 ‘윤혁’은 겉으로 자신의 상태를 결코 들어내지 않는다. 감시하는 형사의 조롱 앞에서도 그는 호소와 저항은커녕 ‘형사의 덫’에 걸리지 않게 거듭 고개만 숙이고 형사의 비위 맞추기에만 주력한다. 이런 그의 모습은 단지 나이가 들어서 젊을 때의 모습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라고 여겨 지지 않는다. 강한 이념에 대한 신념 앞에서도 결국 그도 ‘인간’이기 때문에 세월이 흐름에 따라 남한의 체제와 권력에 적응해 버린 그의 성격변화로 보인다. 다시 말해 사회주의자로서의 ‘윤혁’이 아닌 자신이 꿈꾸고 믿었던 것에 대한 패배, 그 지독한 패배감 앞에 ‘윤혁’은 그저 불완전한 인간의 모습을 드러냈던 것이다.
3. 새로운 희망의 삶
다행스럽게도 윤혁은 박동건처럼 패배감에 빠져 죽음에 이르지 않고 다시 세상을 향해 일어서는 희망적인 삶을 맞이하게 된다. 그 희망은 바로 타인과의 유대감을 통해 이루어진 것이라 보여 진다. ‘꽃’으로 비유되는 두 아이와 자신을 세상에 드러나게 하는데 지대한 영향을 준 운동가였던 강민규, 남은 생의 보금자리를 마련해주는 보육원의 원장과의 인연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이렇게 ‘윤혁’은 주변의 사람들과 함께 좌절감을 이겨내어 새로운 희망적인 삶을 이어나간다. 따라서 그는 겉으로는 실패한 삶을 살았지만 그 속에서는 실패를 극복하는 긍정적이고 정신적으로 강한 인물이라 생각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