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심리학과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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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제8장 분석심리학과 예술
1. 심리학적 탐구 대상으로서의 예술
융이 창설한 취리히의 융 연구소에서는 그림분석을 필수적으로 수련해야 하며 피분석자에게 그림을 그리게 한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무의식의 상징을 파악하는 심리학적 치료 목적에서 실시되는 것일 뿐, 예술평론과는 거리가 멀다.
심적 과정의 과학으로서의 심리학이 문학이나 예술과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것은 당연하다. 왜냐하면 마음이란 모든 과학의 어머니인 동시에 모든 예술작품의 어머니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마음의 과학은 한편으로는 예술작품의 심리적 구조를, 다른 한편으로는 예술창조자의 심리적 조건을 제시하고 이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심리학은 예술의 모든 것을 설명하지 못한다. 심리학적 관점은 이 경우 매우 제약되어 있다.
심리학이 대상으로 삼을 수 있는 것은 오직 예술적 형상 과정의 일부일 뿐이다. 예술 고유의 본질, 즉 예술 그 자체인 것은 심리학적 대상이 될 수 없다. 그것은 오직 미학적 예술적 관점의 대상이다. 심리학은 다만 정감적 상징적 현상만을 대상으로 삼을 수 있을 뿐이다.
상징은 사실 표징이나 증후를 의미하므로 본질적 의미의 상징이 아니다. 상징이란 언어로는 아직 남김없이 이해할 수 없는 관점을 표현한 것이다. 만약 플라톤이 그의 인식론적 문제를 동굴의 비유로 표현하거나 그리스도가 하나님 나라의 개념을 비유로서 말했다면 그것이야말로 그에 해당하는 언어개념이 없는 것을 표현하려는 진정한 상징이다.
창조적 콤플렉스는 개인적 무의식보다 집단적 무의식을 구성하는 원형들이다. 이와 같은 원초적 상들은 작가에 의해 그 시대의 예술로 번역됨으로써 그 시대 사람들의 무의식의 심층을 활성화하고 의식을 새롭게 한다. 그런 의미에서 언어는 사회적 의미를 지니며 시대정신의 교육에 종사한다. 그 상들은 바로 시대정신에 부족한 것을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술은 한 국가나 한 시대의 삶을 조절하는 과정을 묘사한다.
소설 가운데 심리적 소설이 있고 비심리적 소설이 있는데 전자는 작가 자신이 소재에 심리적 의미를 부여하고 해석해 나간 경우이다. 그런데 심리적 소설보다는 비심리적 소설이 훨씬 심리학적 분석의 대상이 된다고 융은 지적한다.
인간은 선사시대부터 미지의, 어떤 예감한 것에 상을 부여할 필요를 느껴 왔고 선사시대 암벽화에서 발견되는 많은 추상적 표지가 이를 암시하고 있다. 현대인들은 이미 그러한 원초적 환상세계를 멀리하지만 예술가는 신화적 상을 받아들여 자신의 경험에 알맞은 표현을 구상한다. 그 상들은 바로 집단적 무의식의 상들이며 그 상들이 의식 표면에 출현하게 되는 것은 집단적 무의식이 갖는 보상작용 때문이다.
"하나의 시대는 한 개인의 마음과 같다. 그는 제약된 의식상황을 가지고 있으므로 어떤 보상을 필요로 한다. 이 보상은 집단적 무의식에 의해서 시인이나 예언자로 하여금 그 시대가 말하지 않은 것에 표현을 부여하고 상으로 혹은 행동으로 이를 나타나게 함으로써 이루어진다. 그것은 좋은 것에서든 나쁜 것에서든 하나의 시대의 구원이든 그 파괴든 모든 사람들이 알지 못한 채 그 필요를 느끼고 기대하던 것이다.
모든 창조적 인간은 하나의 이중성, 또는 모순된 성질의 합성이다. 한편으로는 그는 인간적·개인적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비개인적인 창조적 과정이다. 인간으로서 그는 건강하든가 병든 사람일 수 있다.
그의 개인적 심리학은 그러니까 개인적으로 설명될 수 있고 또한 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예술가로서는 오직 그의 창조행위로써만 이해될 수 있다. "
2.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와 피카소에 관한 융의 평설
(1) 「율리시스」 론
조이스의 「율리시스」는 그 표현방법이 정신분열증의 정신상태와 매우 흡사하지만 「율리시스」에는 정신병에 특유한 단조로운 常同性이라는 특징이 없다고 융은 말하였다. 「율리시스」의 묘사는 일관되고 유동적이며 모든 것이 움직이고 고착된 것이 없다.
현대의 예술가는 혼돈된 시대현상을 지각하여 이를 작품 속에 옮겨 놓는다. 그것은 온갖 기존의 아름다움과 질서를 무자비하게 파괴함으로써 새로운 질서에의 변환을 준비하고 예언한다.
『율리시스』는 스티븐 디달러스와 레오폴드 블룸이라는 두 주인공이 더블린에서 하루 동안 겪는 모험을 다루고 있다. 그러나 이 위에 삶, 죽음 같은 보편적인 주제부터 아일랜드의 시대 상황과 아일랜드 민족주의에 이르는 온갖 주제에 대한 “관념의 흐름”을 올려놓으면 이야기는 사뭇 달라진다. 또한 호머의 『오디세이』를 수차례 인용하기까지 한다. 이런 인용은 때로는 도움이 되지만 때로는 스티븐과 블룸의 시간을 마냥 잡아먹으면서 그들의 야망과 목적을 계속 흩트려뜨리는 사소하고 지저분한 화제들을 상쇄하기 위해 일부러 집어넣은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이 책은 더블린을 세밀하게 현실화하고 있지만, 사실 그 풍부한 디테일은 틀렸거나 적어도 의심의 여지가 있는 것들이다. 그러나 이들은 단순히 마음의 내면 활동을 탐구하기 위한 배경으로 쓰일 뿐이며, 마음이란 것 역시 고전 철학처럼 단정하고 확실하기를 거부하고 있다. 조이스는 생각 자체가 매우 드문 길을 재현하려 하고, 인생에는 곧고 확실한 길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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