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가 우리땅인 역사적증거

 1  독도가 우리땅인 역사적증거-1
 2  독도가 우리땅인 역사적증거-2
 3  독도가 우리땅인 역사적증거-3
 4  독도가 우리땅인 역사적증거-4
※ 미리보기 이미지는 최대 20페이지까지만 지원합니다.
  • 분야
  • 등록일
  • 페이지/형식
  • 구매가격
  • 적립금
자료 다운로드  네이버 로그인
소개글
독도가 우리땅인 역사적증거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1. 삼국사기

2. 고려사

3. 세종실록 지리지

4. 그 밖의 문헌

* 울릉군수 심흥택의 보고서

본문내용

1. 삼국사기
삼국사기에 의하면, 지증왕 13년 6월 울릉도에 자리하고 있던 우산국이 신라에 귀속되어 해마다 토산물을 바쳐 왔음을 알 수가 있다. 우산국 사람들은 그 지형 및 토양으로 보아 반어반농민집단 생활을 하여 왔으며, 내륙보다 낮은문화 수준이었으나, 신라 사람과 언어가 통하고 왕래도 있은 듯하다.
이 곳 사람들은 본토의 군선이 접근하면 가파른 산정으로 피해 귀복을 거부하며 살아 왔는데, 이사부가 하슬라주의 군주로 있으면서 계략을 써서 굴복시킨 것이다. 우산국은 울릉도에 위치한 고대부족읍락국가였으며, 그 영역은 가시거리 내에 위치한 독도와 울릉도 주변의 소도서에 이르렀던 것이다.따라서 독도는 일찍이 우산국의 일부였다가 지증왕 13년(512년) 울릉도와 더불어 신라에 의해 영유화되었다.
三國史記 卷4
이찬 이사부 (이사부는 내물왕의 4대손으로 성은 김씨이다.)
너희들이 만약 항복하지 않으면 이 사나운 사자들을 풀어 모조리 밟혀 죽게 하리라. 그는 지증왕 6년(505) 실직주(삼척)의 군주가 되어 우산국을 정복 하려고 하였다. 우산국 사람들은 사납고 거칠었으므로 힘으로 굴복 시키기가 어렵자, 이사부는 한 꾀를 생각해 냈다. 그는 나무로 허수아비 사자를 많이 만들어서 배에 모두 싣고 우산국 해안에 이른 후, '너희들이 만약 항복하지 않으면 이 사나운 사자들을 풀어서 모조리 밟혀 죽게하리라'하고 위협하였다.그러자 우산국 사람들은 이사부가 생각했던 대로 순순히 항복하고, 매년 조공을 바치겠다고 하였다. 이사부는 그후,진흥왕 2년(541년)에 이찬(신라의 17등급 중 둘째 위계)이되었고, 진흥왕 6년에는 국사 편찬의 필요성을 왕에게 건의하여 거칠부로 하여금 국사를 편찬하도록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