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과 문화] 간도 문제에 대한 우리의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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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민족과 문화] 간도 문제에 대한 우리의 고찰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2005년 8월 23일 이혁 아태국장과 함께한 대담에서...

과연 간도란 무엇일까?

간도 영유권 분쟁사의 개괄

그렇다면 간도는 우리 땅이라 말할 수 있을까?

간도협약이 무효인 이유

간도문제에 대한 현재의 우리 상황은 어떠한가? 

앞으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간도지역 선택 지도 이미지 맴( 지도로 그림)

1. 간도의 유래와 범위

2. 간도의 위치

3. 간도 분재의 성격

4. 간도 지역의 역사

5. 간도 협약의 무효성

6. 간도를 되찾아야하는 이유

7. 간도연표

북간도 ‘亡國民의 삶’ 생생(사진첨부)

동북공정에 맞서 고구려의 옛 땅 (북)간도를 되찾자!

간도되찾기운동 어디로 가려나?

간도영유권 관련 일지

본문내용
과연 간도란 무엇일까? 자칫 듣기에도 생소한 이 명칭은 지금은 중국의 영토가 되어버린 압록강과 두만강 이북의 우리의 옛 땅이다. 우리가 만주로 인식하는 압록강, 두만강 이북의땅은 우리 민족의 발원지이며 고조선과 고구려, 발해의 영토였다.  그러나 이 땅은 막연히 먼 옛적의 땅만은 아니었으며 바로 근대 조선말까지도 청나라와의 영유권 분쟁상태에서 간도라는 명칭으로 불렸고, 우리가 개척하고 실질적 영유권을 행사한우리의 영토였다. 

우리의 외교권을 강탈한 일제는 청나라와 간도협약을 맺으면서 청으로부터 만주철도부설권, 광산 채굴권 등의 각종 이권을 얻는 대가로 간도지역을 청나라에 넘겼고 오늘날까지 중국이 영유권을 행사해 오고 있는 것이다.  국제법적으로 무효인 을사조약에 의해 맺어진 간도협약은 당연히 무효일 수 밖에 없으며, 이에 우리는 간도협약 무효를 중국측에 통고하고 간도땅을 되찾기 위한 실질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중국측은 우리의 통일이 가시화되자 동북공정이라는 이름으로 역사를 왜곡하며 간도의 영유권을 고착화하려 하고 있다. 이제 2009년이면 간도협약이 체결된 지 100년이 되는데 보통 국가간 영유권 분쟁의 암묵적 시효가 100년으로 통용되고 있는 시점에서 우리의 대응은 더욱 시급하다 할 것이다. 

간도의 유래는 본래 두만강 중간의 종성과 온성 사이에 있는 삼각주가 매우 비옥하였는데, 1870년경부터 부근의 주민이 이곳을 개간하기 시작하여 이곳을 간도(間島)라 불렀다.  그 후 무산, 온성 사이의 주민이 도강하여 백두산 동쪽 기슭의 비옥한 토지를 개간하여 이곳을 모두 일컬어 간도(間島)라 부르게 되었는데 조선민족이 개간하였다 하여 개간할 간(墾)의 간도(墾島)라 부르기도 하였다. 

간도는 좁은 의미로 백두산정계비와 관련된 두만강 이북, 토문강 이동 지역인 동간도 혹은북간도를 의미하지만, 넓은 의미로는 압록강 이북 지역인 서간도도 포함한 남만주를 가리킨다. 즉 서북으로는 요동의 봉황, 정북으로는 길림이남, 동북으로는 연길, 용정 및 화룡까지인데 고구려 초기수도인 환인과 집안도 역시 서간도안에 위치한다.  간도분쟁 당시에 우리 선조들이 생각하는 간도 명칭의 개념은 동으로는 토문강에서 송화강을 거쳐 흑룡강 이동의 연해주를 포함한 지역을 의미하였고, 서로는 압록강 대안을 포함하여 고구려의 영토였던 요양․심양 일대(소위 심요선)까지의 봉금지역이 포함되었다. 
하고 싶은 말
많은 공을 들여 작성한 자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