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민족운동의 전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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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근대민족운동의 전개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Ⅰ. 갑오 농민 전쟁

1. 갑오 농민 전쟁의 명칭에 관한 문제
2. 갑오 농민 전쟁의 배경
3. 갑오 농민 전쟁의 전개
4. 갑오 농민 전쟁의 성격
5. 의의와 영향

Ⅱ. 독립신문과 독립협회

1. 갑오 농민 전쟁 이후의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
2. 독립신문
3. 독립협회
4. 독립협회의 실패원인, 비판, 의의

Ⅲ.계몽운동 (1905 ~ 1910)

1. 등장배경
2. 계몽운동의 두 흐름
3. 정치, 사회단체의 활동
4. 언론기관의 발달

Ⅳ.항일 의병 전쟁

1. 을사조약(1905) 전후의 의병항쟁
2. 군대해산 후의 의병항쟁(1907~1910)
3. 의병활동의 의의
본문내용
Ⅰ. 갑오 농민 전쟁

1. 갑오 농민 전쟁의 명칭에 관한 문제
1894년 연대기를 온통 차지하고 있는 '일대 사건'이 1백년이 넘은 오늘날까지 마땅한 제 이름을 갖지 못하고 있다. '갑오동학농민혁명'(甲午東學農民革命)은 한동안 역사의 뒷전에 익명으로 묻혀 있었고 한동안은 오명을 뒤집어쓴 채 역사의 왜곡에 시달리기도 했다. 최근에는 그 익명과 오명을 보상 받으려는 듯 너무 많은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한 때의 명명법은 시대적 정치적 편의에 따르기도 했으며 심지어는 집권세력의 의도에 가름된 적도 있었다.
오늘날은 '갑오동학농민혁명'을 연구하는 여러 학자들에 의해 여러 가지 명칭이 제시되고 있다. 대사건에 대한 저마다의 역사적, 사회적, 정치적 성격규정에 따라 제각기 다른 이름을 내놓고 명명의 정당성과 타당성을 주장하고 있다. 지난 90년 6월에는 명명 문제만을 놓고 학계의 대규모 토론회가 열리기도 했으나 아직까지 일치된 결론이 도출되지 않은 상태다. 갑오동학농민혁명에 처음 부여된 이름은 '동적(東賊)의 난(亂)', '동학배(東學배輩)의 난', '동학비도(東學匪徒)의 난', '동학도당(東學徒黨)의 난', '동학비란(東學匪亂)', '동학변란(東學變亂)' 등 이었다. 이는 구한말 봉건 지배세력의 시각에 비친 모습이었다. 사건 당시나 직후에 기록된 각종 관찬 사료나 양반 지배계급에 의해 씌어진 문집 등이 이 같은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
일제시대 일본인 관학자들의 연구시각도 당연히 이러한 범주를 벗어나지 않았다. 그들은 오직 갑오동학농민혁명을 축소왜곡하고 박제화, 형태화 하는 데만 기여했을 뿐이었다. 결국 구한말부터 일제기간 동안 갑오동학농민혁명은 '난'(亂)의 개념으로 정리된 채 일반화 됐다.
저서《한국통사》(1914)를 통해 '동학란'이 양반 지배층의 압제와 관리의 탐학에서 비롯됐다는 점을 지적하고 이를 봉건적 모순을 극복하려는 반봉건운동으로 파악해, 당대의 유학자들과는 달리 탁월한 역사적 식견을 보여주었던 사학자 박은식도 용어사용에서는 '동학란'을 벗어나지 못했다.
참고문헌
한영우, 다시 찾는 우리역사, 경세원
이기백, 한국사신론, 일조각
고려대 한국사연구실, 한국사의 재조명, 고려대출판부
신용하, 갑오개혁과 독립협회 운동의 사회사, 서울대출판부
이현희·교양국사연구회, 이야기한국사, 청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