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문화] 전등사 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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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전통문화] 전등사 답사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Ⅰ.서론
Ⅱ.본론
1.조선왕조실록
2.삼랑성(정족산성)과 성문(승전비와 윤장대)
3.양헌수비
4.대조루
5.대웅전
6.약사전
7.명부전
8.삼성각
9.향로전
10.범종
10.정족사고
11.정족산 가궐지
12.목조삼존불좌상
13.강설당 아미타불탱
Ⅲ.결론
본문내용
Ⅰ.서론
전등사(傳燈寺)는 강화에 있는 문화재이다.
단군 왕검의 세 왕자가 쌓았다는 정족 산 삼람성(사적 130호)내에 위치한 전등사는 창건연대는 확실치 않으나 381년(고구려 소수림왕 11)에 진나라에서 건너온 아도화상(阿道和尙)이 이 절을 창건하여 진종사(眞宗寺)라 하였다. 그 후 고려 제27, 28, 30대의 충숙왕(忠肅王)·충혜왕(忠惠王)·충정왕(忠定王) 때에 수축하였고, 1625년(인조 3)과 1906년에도 중수하였으며, 또 일제강점기에도 두 차례 중수하였다.
전등사라는 이름은 충렬왕(忠烈王:재위 1274∼1308)의 비 정화궁주(貞和宮主)가 승려 인기(印奇)에게 부탁하여 송(宋)나라의 대장경을 가져와 이 절에 두게 하고 이 절에 옥등(玉燈)을 시주한 데서 비롯되었다. 이때 정화궁주는 승려 인기(印奇)에게 《대장경》을 인간(印刊), 이 절에 봉안하도록 하였다고 한다.
1614년 광해군 때 모든 전각이 불타 소실된 것을 1621년 중건했다. 나부상으로 유명한 대웅전도 이때 지어졌다. 숙종 때인 1678년, 조선왕조실록을 전등사에 보관하기 시작하면서 전등사는 왕실종찰로서 더욱 성장했다. 병인양요 때 양헌수가 이끄는 부대가 프랑스군을 크게 물리쳤던 곳이다. 지금도 양헌수 기념비가 남아있다이 절에는 보물 제178호인 전등사 대웅전(大雄殿), 보물 제179호인 전등사 약사전(藥師殿), 보물 제393호인 전등사 범종(梵鐘)이 있다. 또 대웅전에는 1544년(중종 39) 정수사(淨水寺)에서 개판(改版)한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의 목판 104장이 보관되어 있다
대웅전 네 개의 기둥 위에 세워진 나녀상(裸女像)으로 매우 유명한 절이며, 현존하는 한국 사찰 중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최고(最古)의 사찰이다.

Ⅱ.본론
1.조선왕조실록
전등사는 조선왕조실록이 보관되어 있는 곳으로 유명하기도 하다.
본래 왕실에서는 실록을 4부씩 만들어 궁궐 내의 춘추관과 충주, 성주, 전주 등 네 군데의 사고(史庫)에 보관하도록 했다. 하지만 임진왜란 때 모두 소실되고 전주 사고만 무사했다. 이 때 전주 사고본이 보존된 것만 해도 우리 역사에서 천만다행한 일이라고 할 수 있는데, 임진왜란 후 전주 사고본을 4부씩 옮겨 적게 하여 전주 사고본은 강화도 전등사로 옮겼고, 다른 실록은 봉화군 태백산, 영변 묘향산, 평창 오대산에 각각 보관하게 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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