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 의상학] 조선의 궁중 고유복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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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역사학, 의상학] 조선의 궁중 고유복식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1) 왕
2) 왕비
3) 세자
4) 공주
본문내용
조선왕조(AD1392-1910)는 유교사상의 예(禮)를 기본으로 한 철학이념으로 통치되었으므로 유교윤리의 가정적, 사회적 기능 중 관혼상제를 예로서 행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행사였다. 따라서 복식문화도 예를 표현하고 그것을 지키기 위한 목적을 가장 중시하였으며, 그 외에도 그 시대적인 미적 예술 감각의 표현 등에 부응하여 500년간 변천되어 왔다.
조선 전기는 고려복식을 계승하여 조선왕조 복식제도의 초석을 만든 시기로 명(明) 복식의 영향 하에서 점차적으로 조선의 관복제도가 확립되었다. 중기는 초기에 완성된 「경국대전(經國大典)」을 영세불이의 대법전으로 삼아 경국대전에서 제정된 관복대로 습용한 시기인데, 이 시기는 궁중의 행사를 그린 의궤도(儀軌圖)와 사대부가의 모임을 기록한 계회도(契會圖)를 통하여 구체적인 복식 착장 형태를 볼 수 있다. 또한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으로 인해 관복제도의 변화가 일어났던 시기이기도 하다.
후기는 조선왕조의 중흥기로 민족적 특색을 나타내는 문화가 발달했으며 복식문화도 다양하게 발전하였다. 영ㆍ정조대에는 문예부흥의 절정을 이루는 한편 실학이 융성하고 천주교가 전래되었으며, 특히 서민문화가 발달하여 김홍도, 신윤복과 같은 풍속화의 대가들이 당시 서민들의 생활상을 잘 표현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 인물들이 입고 있는 복식형태는 우리 민족만이 지닐 수 있는 멋을 잘 나타내주고 있다. 말기에는 대원군의 쇄국정책으로 병인양요(1866)와 신미양요(1971)가 있었고, 일본의 강압적인 위협으로 병자수호조약(1876)을 맺어 외국의 문호가 개방되었는데, 한ㆍ양복의 혼용이 시작되었다. 광무9년 을사보호조약 체결 이후, 한일합방(1910)이 이루어져 조선왕조의 건국 이래 27왕 519년의 종말을 맞게 된다.

옷의 소재는 계절별로 달랐다. 먼저 봄과 가을에는 전통 문양의 사철사, 자미사, 국사 등을 사용하였다. 그리고 겨울에는 명주와 양단 등을 사용하여 따뜻하고 포근한 느낌을 주었으며, 여름에는 생 명주나 모시, 옥사, 노방 등을 사용하여 시원한 느낌을 주었으며 이렇게 계절별로 다른 옷을 입어서 4계절을 보냈었다.


1. 곤룡포(袞龍袍)
곤룡포(袞龍袍)는 조선시대 국왕의 시무복(視務服)을 뜻한다. 곤룡포는 여름에는 사(紗), 겨울에는 단(緞)으로 만들어졌다. 왕은 대홍색(大紅色)에 남색 안을 넣은 곤룡포에 금사(金絲)로 수를 놓은 사조룡보(四爪龍補) 4개를 양어깨·앞가슴·뒷등에 각각 달고, 황제는 황색 곤룡포에 붉은색 안을 넣어 오조룡보를 같은 위치에 단다. 깃은 둥근 곡령(曲領)으로 하여 오른쪽 어깨에서 단추를 끼우며 양쪽의 무의 여분을 뒤쪽으로 반정도 접어서, 무의 윗부분을 꿰매어 고정시킨다.
곤룡포 착용 시에는 익선관(翼善冠)-조선시대 왕이 상복인 곤룡포를 착용할 때 익선관(翊善冠)을 썼다. 익선관을 처음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곤룡포와 마찬가지로 세종 26년(1444) 3월 명나라 황제가 사여한 데서 비롯되었다. 형태는 모체가 2단으로 턱이 지고 앞쪽보다 뒤쪽이 높으며 뒤에는 매미날개 모양의 소각 2개가 윗 쪽을 향해 달려 있다. 이러한 날개형태 때문에 익선관이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
하고 싶은 말
조선시대의 궁중의복에 관한 자료입니다^^
상세히 설명되어있으니 많은 도움을 받으셨으면 하네요.

이걸로 에이쁠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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