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운동] 백범 김구와 이승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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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통일운동] 백범 김구와 이승만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서론
Ⅱ. 본론
1. 백범 김구와 이승만의 민주주의론
2. 백범 김구와 이승만의 민족통일운동사상
3. 백범 김구와 이승만의 통일이론
Ⅲ. 결론
본문내용
혹자는 외교의 힘으로 대한의 독립을 달성하려한 이승만을 정치가라 평가하고 자기 이념을 끝내 지키면서 독립노선을 고수한 김구는 혁명가는 되어도 정치인은 못된다고 보는 견해도 있으나 이것은 김구와 이승만을 잘못 평가 한 것이다. 이승만은 하와이 교포들이 말한 것 처럼 말과 행동이 달랐다. 입으로는 민주주의를 내세우고 실제 행동은 언제나 독선과 독재를 일삼고 목적을 위해선 수단촵방법을 가리지 않는(친일파와도 야합)사람이었다. 그러나 김구는 입장이 뚜렸했다. 이승만은 48년 7월 29일의 대통령 취임사에서 "새 나라를 건설하려면은 새로운 헌법과 정부가 필요하지만 새 백성이 아니고는 결코 될 수 없 는 것입니다. 부패한 백성으로 신선한 국가를 이루지 못하니"하면서도 이승만은 수많은 새로운 백성을 제쳐놓고 반민특위의 활동을 폭력으로 해산시키고 그가 말하는 이른바 '새로운 백성'아닌 낡고 썩은 친일 민족 배신자들과 야합, 정권을 잡았다는 것은 세상이 다 아는 일이고, 8.15정부 수립 시정 방침 연설에서 "독재주의가 아니면 초창기의 어려운 대국을 뚫고 나갈 길이 없는 줄로 생각하는 이도 있으나 이것은 커다란 잘못입니다. 민주제도가 어렵기도 하고 더디기도 합니다."라고 하고 시정방침으로서 '민주주의 실현' '자유 민권의 보장' '정당한 자유권의 행사'를 강조했다.

그러나 이러한 이승만은 바로 동대문구의 자기 출마구에서 자기의 경쟁자인 최능진(미군정하의 경찰 간부)으로 하여금 출마를 못하게 구속한 후 1.4후퇴시의 혼란을 틈타 학살했고, 2년 후인 52년 봄 부산 정치 파동때는 반대파 야당의원들을 공산당으로 때려잡는 폭행을 자행했었다. 이승만은 정권 장악을 위해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마키아벨리스트였다. 그러나 김구는 지날 칠 정도로 정직했고 겸손했다.

중국에서는 국무령이 되라는 요청을 자기는 못나고 상민이라 해서 거듭 사양하였으며 귀국후의 정치행동도 자기의 정치이론을 충실히 지켜 나갔다. 김구는 『나의소원』에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 민족으로서 하여야 할 최고의 임무는 첫째도 남의 절제도 아니 받고 남에게 의뢰도 아니하는 완전한 자주독립의 나라를 세우는 일입니다.

김구는 반탁운동을 한 것과 군정을 반대하고 남북 협상을 고집한 것이 국가 민족을 위해 어떠한 의미가 있었는가는 별문제로 치고 하여간 그는 자기의 평소 이념과 이론에 충실했던 것은 사실이다. 언행이 일치 않고 식언을 일삼으며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이 정치인이라면 김구는 그런 점에서 정치인이 아니고 이승만은 탁월한 정치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