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서평 ‘삼국유사’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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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독후감] 서평 ‘삼국유사’를 읽고..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 [독후감]: 서평 ‘삼국유사’를 읽고..>

1. 줄거리 및 느낀점

2. 참 고 문 헌
본문내용
1. 줄거리 및 느낀점
삼국유사를 펼쳐 읽었을 때 처음으로 궁금한 것이 있었다. 고등학교 국사 시간에 ‘말갈은 고구려의 후예 대조영이 세운 것인데, 주지배층은 고구려 유민이었고, 피지배층은 말갈인이었다.’라고 배웠다. 그런데, 말갈( 靺鞨 ; 또는 물길 < 勿吉 >과 발해 < 渤海 > )에 대해서 삼국유사는 ‘추장 조영은 나라를 세우기에 이르러 스스로 진단( 震旦 )이라 부르다가 선천 ( 先天 )중에 비로소 말갈이란 호칭을 버리고 오로지 발해라고 불렀다.’라고 되어있다. 또 삼국사에서는 ‘의봉 ( 儀鳳 ) 3년 고종 ( 高宗 ) 무인년에 고구려의 남은 무리들이 무리를 모아 북쪽으로 태백산 ( 太伯山 ) 아래에 의지하여 국호를 발해라 하였는데, 개원( 開元 ) 20년 사이에 명황( 明皇 )이 장수를 보내 토벌하였다. 또, 성덕왕 32년 현종( 玄宗 ) 갑술년에 발해와 말갈이 바다를 건너 당나라의 등주( 登州 )를 침략하니, 현종이 토벌하였다.’라고 했다. 또, 신라고기에 따르면 ‘고구려의 구장( 舊將 ) 조영의 성은 대씨( 大氏 )인데, 남은 군사를 모아 태백산 남쪽에 나라를 세우고 국호를 발해라 했다.’라고 되어 있다. 실제로 말갈과 발해의 관계가 모호하고, 각 역사서의 내용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내용 -그것도 우리나라가 우월성을 가지는 - 을 교육한다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진다. 이는 일본이 자국의 국사책에 조선 침략을 ‘진출’로 표기한다고 해서 항의하는 것에 비하면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우리가 반드시 타국보다 우월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가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발해에 대해 보다 적극적인 탐구가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램이고, 정확한 서술을 교과서에 실었으면 한다.
또 전에는 알고 있었던 내용이지만 실제로 느끼지 못했던 부분이 있다. 고구려와 신라의 시조에 관한 신화를 살펴보면 고구려의 시조 주몽( 朱蒙 )과 신라의 시조 혁거세( 赫居世 )는 모두 알에서 태어 났다. 또, 주몽은 북쪽에 위치하고 있었던 부여에서 나타났고, 혁거세는 태어날때에 6개의 알과 함께 있었다고 한다. 이를 미루어 보았을 때, 내 사견으로는 당시 한반도의 대부분이 새를 신으로 삼는 샤머니즘이 정치적인 주도권을 쥐고 있었던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삼국중 북쪽 끝과 남쪽 끝 나라에서 알( 새의 상징 )이 왕을 상징할 수 있을까. 그리고 한반도 중간에 위치하고 있었던 백제는 고구려에서 내려온 통치자( 비류와 온조 )가 나라를 세웠다고 하는데, 이 내용이 그것을 뒤받침 해주는 것이 아닐까.
또한 북쪽의 부여의 정치 구조는 중앙집권적 제도 였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시조가 태어난 신화에서 알 수 있을 것 같다. 북쪽에서는 하나의 알에서 왕이 탄생하였다. 이는 당시의 정치 구조를 대변해 주는게 아닌가 한다. 그 당시의 현실이 신화를 형성하는데 있어서 절대적인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남쪽 나라들은 소위 제후국( 諸候國 )이었을 것 같다. 실제로,
참고문헌
- 일연,김원중역 / 삼국유사 / 을유문화사 / 2002
하고 싶은 말
삼국유사를 보고 핵심내용과 그에 대한 저의 개인적인 생각과, 교훈, 시사점을 중심으로 작성한 레포트 입니다.
지난 학기 문학의 이해 수업에서 20점 만점 받은 감상문 입니다.
삼국유사 독후감을 작성하시는데 많은 도움 되실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