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원 `열하일기`

 1  박지원 `열하일기`-1
 2  박지원 `열하일기`-2
 3  박지원 `열하일기`-3
 4  박지원 `열하일기`-4
 5  박지원 `열하일기`-5
 6  박지원 `열하일기`-6
 7  박지원 `열하일기`-7
 8  박지원 `열하일기`-8
 9  박지원 `열하일기`-9
 10  박지원 `열하일기`-10
 11  박지원 `열하일기`-11
 12  박지원 `열하일기`-12
 13  박지원 `열하일기`-13
 14  박지원 `열하일기`-14
 15  박지원 `열하일기`-15
 16  박지원 `열하일기`-16
 17  박지원 `열하일기`-17
 18  박지원 `열하일기`-18
 19  박지원 `열하일기`-19
※ 미리보기 이미지는 최대 20페이지까지만 지원합니다.
  • 분야
  • 등록일
  • 페이지/형식
  • 구매가격
  • 적립금
자료 다운로드  네이버 로그인
소개글
박지원 `열하일기`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1. 연암의 생애

2. 시대적 상황과 정조의 문체반정
1) 18세기 문풍의 특징
2) 정조의 문체반정
(1) 문체반정이란?
(2) 정조의 탕평책 속 문체반정

3. 연암 박지원의 사상
4. 연암의 문학관
1) 사실주의 묘사
2) 비유
3) 민족적 언어표현

5.『열하일기(熱河日記)』 개관
1) 『열하일기』의 특징
2) 『열하일기』의 구성

6. 작품분석
1) 「호곡장(好哭場)」- 통곡할 만한 자리
2)「거제(車制)」
3)「상기(象記)」
4) 「야출고북구기」-한밤중에 고북구를 나서며
5)「일야구도하기(一夜九渡河記)」
6)「환희기」

본문내용
2. 시대적 상황과 정조의 문체반정

1) 18세기 문풍의 특징

18세기는 조선왕조의 문예부흥기로서 조선 고유문화의 난숙기이자 '북학'이나 '서학'과 같은 외래 학문이 유입되어 일대 파문을 일으키던 전환기로서 다음과 같은 특징을 보였다

첫째, 호란(胡亂) 이후 전개된 지속적인 경제발전과 장기간의 평화상태에 힘입어 明이 멸망한 상태에서 조선의 문화를 곧 중화의 문화로 자부하는 '진경문화론'이 형성되어 영조시대에 그 절정기를 이루었다. 물질적 풍요와 국가적 안정이 '우리 것'에 대한 관심을 촉진하고 '우리 문화'에 대한 자부심을 자극한 것이다. 금강산을 비롯하여 우리나라의 산수를 그린 정선(鄭敾)의 '진경산수화'나 조선의 문장을 강조한 박지원(朴趾源, 1737 ∼1805)의 '조선풍' 등이 그 예이다.
둘째, 18세기 후반은 병조호란 후 '적국'으로 설정되어 1세기 이상 '복수'의 대상이던 청나라가 군사대국의 한계를 벗어나 문화대국으로 부상하면서 노론의 일부에서는 '북벌론'(北伐論) 대신 청을 배워야 한다는 '북학론'(北學論)이 제기되었다. 예컨대 북학파의 박제가(朴齊家,1750∼1805)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단지 오랑캐족[胡族]이 중국을 빼앗았다는 것만을 알 지, 빼앗긴 것이 곧 중국이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면서, "진실로 백성에게 이로우면 그 법이 비록 이적(夷狄)한테서 나왔다 하더라도 聖人이 장차 취할 것"이라고 말하였다. 박지원 역시 "법이 좋고 제도가 아름다우면 아무리 오랑캐라 할지라도 떳떳하게 스승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참고문헌
고미숙,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그린비, 2003
김명호, 『열하일기 연구』, 창작과비평사, 1990.
김명호, 『지금 조선의 시를 쓰라』, 돌배개, 2007.
김혈조, 『박지원의 산문문학』, 성균관대학교출판부, 2002.
박수밀, 『박지원의 미의식과 문예이론』, 태학사, 2005.
박지원, 『국역 열하일기』1ㆍ2, 민족문화추진회, 1968.
이상익 외, 『고전수필 어떻게 읽을 것인가』, 집문당, 1999.
정민, 『비슷한 것은 가짜다』, 태학사, 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