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계열] 대완구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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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구(碗口)란 둥근 돌인 단석(團石)이나 멀리 날아가서 폭발하는 둥근 쇠공인 진천뢰(震天雷)를 쏘는 조선시대의 유통식화기(有筒式火器)이다. 주로 공성용 병기로 사용되었으며, 때로는 해상전에서 선박을 침몰시키기 위하여 사용되었다. 여기서 완구라 함은 발사물인 단석과 진천뢰를 올려놓은 포구(砲口)의 모양이 사발과 흡사한 데에 연유하였다. 그리고 완구의 종류에는 별대완구ㆍ대완구ㆍ중완구ㆍ소완구가 있다.
완구는 최무선(崔茂宣)이 화통도감(火熥都監)에서 제작한 화기 18종에는 없고, 그 후 태종 때에 최해산(崔海山)이 대ㆍ중ㆍ소의 완구 20개를 만들어 시험 발사했다는 기록이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화약고기(火藥庫記)에 전하는 점으로 미루어 조선전기부터 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 후 완구는 재료와 형태에서 계속적인 발전을 거듭하고 전국적으로 보급되었다. 이는 대마도(對馬島) 경차관(敬差官) 이예(李藝)가 돌아올 때, 무쇠로 만든 중국식 화통완구(火筒碗口)를 가져와 개량을 시도한 사실로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세조 4년(1422)에 전국 해안에 연대(烟臺)를 증축하고 무쇠로 만든 완구와 신포(信砲)를 전국적으로 보급한 사실도 위의 사실을 뒷받침한다. 그리고 ≪국조오례의서례≫ 병기도감조에 총통완구(銃筒碗口)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등장하는데, 이 때 다른 총통과 마찬가지로 완구에 대한 개량도 일단락되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이후 중기에는 ≪화포식언해(火砲式諺解)≫에는 대완구ㆍ중완구ㆍ소완구ㆍ소소완구가 소개되어, 그 종류가 다양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후기에는 ≪융원필비(戎垣必備)≫에 별대완구ㆍ대완구ㆍ소완구ㆍ소소완구 등으로 구분되고 있어, 이전 단계의 대완구보다 더 큰 별대완구가 제작되었던 사실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조선시대 전 시기를 걸쳐 널려 제작 보급된 완구는 세조 13년(1467)에 이시애(李施愛)의 난 때에 무려 250문이 보내진 사실로 미루어 공성용 무기로 적극적으로 실전에 활용되었고, 특히 임진왜란 때에는 이장손(李長孫)이 만든 비격진천뢰를 발사하는 데에 완구가 이용되어 경주성을 탈환하는 데에 중요한 공헌을 하게 된다.
참고문헌
한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박영규,웅진씽크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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