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왕조의 상징, 종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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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조선 왕조의 상징, 종묘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 목 차 -

Ⅰ. 서론 ‥‥‥‥‥‥‥‥‥‥‥‥‥‥‥‥‥‥‥‥‥‥‥‥‥‥‥‥‥‥‥‥‥ 1
1] 종묘를 주제로 선정한 이유

Ⅱ. 본론 ‥‥‥‥‥‥‥‥‥‥‥‥‥‥‥‥‥‥‥‥‥‥‥‥‥‥‥‥‥‥‥‥‥ 1
1] 종묘 소개
(1) 종묘의 유래
(2) 종묘에서의 의식-종묘제례
(3) 종묘를 세운 이유

2] 제사를 준비하는 공간
(1) 향대청 일원
(2) 재궁 일원
(3) 전사청 일원
(4) 악공청

3] 제사를 모시는 공간
(1) 정전 일원
(2) 영녕전 일원

4] 종묘의 장치들
(1) 하마비
(2) 신로
(3) 부알판위
(4) 월대와 계단

Ⅲ. 결론 ‥‥‥‥‥‥‥‥‥‥‥‥‥‥‥‥‥‥‥‥‥‥‥‥‥‥‥‥‥‥‥‥‥ 6
1] 종묘에 대한 견해와 후기

참고문헌 ‥‥‥‥‥‥‥‥‥‥‥‥‥‥‥‥‥‥‥‥‥‥‥‥‥‥‥‥‥‥‥‥‥ 7

본문내용
Ⅰ. 서론
1] 종묘를 주제로 선정한 이유
제사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하나의 의식으로, 문화로, 전통예절로 자리매김되어 있다. 이는, 예를 중시하던 ‘동방예의지국’으로서 당연한 결과일지 모른다. 오늘날에는 종교적인 이유와 집안의 사정으로 제사를 지내지 않는 집도 많이 생겼지만, 조상에 대한 존경과 추모의 표시로 아직까지 제사의식이 이어지고 있다. 종묘는 조선시대 역대 왕과 왕비의 신위를 모셔 제사 지내는 국가 최고의 사당이다. 우리가 지내는 제사의 기원과 조상들의 의식을 알 수 있게 하는 곳이 바로 종묘인 것이다. 또한, 연산군이나 광해군은 모시지 않은 것을 보아 이상사회를 이루는 데 공헌한 임금과 그렇지 못한 임금을 구별하여 온 나라에 명확한 기준을 제시한 제도이기도 하다. 종묘는 단지 조상을 모시는 효(孝)의 공간만이 아니라 조선의 왕실을 상징하는 귀중한 건축물이라 할 수 있다.

Ⅱ. 본론
1] 종묘 소개
종묘의 모든 건물은 장식과 기교를 배재하여 단순하고 엄숙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단순함 속에서 삶과 죽음의 깊은 의미를, 엄숙함 속에서 왕조의 신성한 권위를 읽을 수 있다.

(1) 종묘의 유래
조선의 태조가 한양을 새 나라의 도읍으로 정하고 나서 바로 짓기 시작하여 1395년 9월에 경복궁보다 먼저 완공했다. 중국의 도성제도인 좌조우사(左祖右社)의 원칙에 따라 경복궁의 왼쪽(동쪽)에 자리를 잡았다. 창건 당시에는 종묘를 대묘(大廟)라 하였다. 왕이나 왕비가 승하하면 궁궐에서 삼년상을 치른 후에 그 신주를 종묘로 옮겨 모신다. 정전에는 공덕이 뛰어난 임금들을 모셨고, 영녕전에는 태조의 4대조와 죽은 뒤에 왕으로 추존되었거나 정전에서 신주를 옮겨온 임금들을 모셨다. 정전의 신실 19칸에는 태조를 비롯한 왕과 왕비의 신위 49위를, 영녕전의 신실 16칸에는 신위 34위를 모셔 두었다. 왕위에서 쫓겨난 연산군과 광해군의 신위는 종묘에 모시지 않았다.

(2) 종묘에서의 의식-종묘제례
종묘제례는 임금이 직접 받드는 길례로 사직단의 제향과 하께 가장 주요한 제사였다. 제사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첫 달, 즉 1, 4, 7, 10월에 지내는 대제와 납월이라 하여 12월에 치르는 것을 합하여 1년에 다섯 차례를 기본으로 한다. 설날, 한식날, 단오, 추석, 동지 등 속절(철이 바뀔 때마다 사당이나 선영에 차례를 지내는 날)에 간략한 의식을 치렀으며 또한 국가에 큰 일이 있을 때도 종묘에서 제사를 올렸다. 현재는 매년 5월 첫째주 일요일에 종묘제례 행사가 열린다.
종묘제례악은 악기․노래․춤을 갖추고 종묘제례 의식에 맞추어 연행하는 음악이다. 악기의 여주에 맞추어 돌아가신 왕의 공덕을 기리는 노래를 부르며 제례의식을 위한 춤을 춘다. 종묘제례악은 연주 위치와 악기 편성에 따라 등가와 헌가로 나뉘는데, 상월대에 배치되는 등가는 노랫말이 없는 음악을 연주하는 악단이고, 하월대에 배치되는 헌가는 노랫말이 있는 음악을 연주하는 악단이다. 화려하고 시원한 음색과 아름답고 장대한 음률은 엄숙하고 장엄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특히 중간 중간에 울리는 서슬퍼런 박 소리는 종묘제례의 장엄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종묘제례 및 종묘제례악은 2001년에 ‘인류 구전 및 무형유산걸작’으로 등재 되었다.
■종묘제례의 순서
① 재계: 종묘제례 7일전부터 왕이 몸과 마음을 경건하고 정결하게 한다.
② 취위: 제집사들이 신을 맞이하기 위해여 손을 씻는 관세 의시을 행하고, 미리 정해진 자리에 나아가 각자 맡은 역할을 할 준비를 한다.
③ 신관례: 신을 맞이하는 의식이다. 향을 세 번 피우고, 울창주를 신실 바닥 관지통에 세 번 나누어 붓는다. 그리고 신에게 바치는 예물로서 흰 모시를 올린다.
④ 천조례: 신을 위해 음식을 올리는 의식이다. 희생의 털과 피, 익힌 내장 등을 올리고, 간 및 기장, 피, 쑥 등을 기름에 발라 숯불 화로에서 태운다.
⑤ 헌작례: 신이 즐기는 절차이다. 세 번의 술을 올리는데, 초헌례에 축문을 읽는다. 왕이 첫 술잔을 올리고, 두 번째 잔과 세 번째 잔은 왕세자와 영의정이 올린다.
⑥ 음복수조례: 신이 베푸는 절차이다. 태조실에서 술과 고기 일부를 왕이 대표로 먹음으로써 조상이 주는 복을 받는다.
⑦ 망료례: 제사에 올렸던 축문과 폐백을 모두 모아 예감(묘정 월대 서북쪽 뒤에 있는 사각의 돌 구덩이. 망료위라고도 함)에 가서 태우는 것으로 제사는 끝난다.

(3) 종묘를 세운 이유
종묘의 건립은 유교의 조상 숭배 사상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유교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혼과 백으로 분리되어 혼은 하늘로 올라가고 형체인 백은 땅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보이지 않는 영혼을 모시는 사당과 백을 묻어 모시는 무덤을 각각 만들어 조상을 숭배하였다. 특히 죽은 조상의 혼이 깃든 신주를 만들어 제례를 올리며 후손들의 정신적 지주로 삼았다.

2] 제사를 준비하는 공간
(1) 향대청 일원
향대청은 향청과 집사청으로 구성된 건물이다. 향청은 제사 전날 왕이 종묘제례에 사용하기 위해 친히 내린 향․축문․폐백과 제사 예물을 보관하는 곳이고, 집사청은 제사에 나갈 집사자들이 대기하면서 재계를 하는 곳이다. 향대청 앞에는 행각이 길게 자리잡고 있어 두 건물 사이에 남북으로 긴 뜰이 만들어졌다. 향대청 남쪽으로 망묘루가 있고, 그 뒤쪽에 공민왕 신당이 있다.
-망묘루: 임금이 종묘에 도착하면 잠시 머물러 쉬면서 선왕과 종묘사직을 생각하는 곳이다. 정면 7칸, 측면 2칸의 규모인데, 연못 방향의 한칸은 누마루로 구성되어있다. 종묘에서 유일하게 팔작지붕 형태(지붕 위까지 박공이 달려 용마루 부분이 삼각형의 벽을 이루는 지붕)를 보인다.
-공민왕 신당: 고려 31대 공민왕과 왕비인 노국대장공주의 영정을 모신 사당으로, 정식이름은 ‘고려공민왕영정봉안지당’이다. 조선 왕조 최고의 사당인 종묘에 고려의 왕을 모셨다는 점이 특이하다. 역성혁명에 정통성을 부여하기 위한 의도로 해석하기도 하고, 종묘를 창건할 때 공민왕의 영정이 바람에 실려 마당으로 떨어졌는데 조정에서 회의 끝에 그 영정을 봉안키로 하여 공민왕 신당이 건립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