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_역사왜곡의_모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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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임나일본부설의 모순
2. 일선동조론
3. 타율성론
4. 정체성론
5. 당파성론
6. 민족성론
본문내용
일본의 역사왜곡의 모순

1. 임나일본부설의 모순

임나일본부설의 가장 핵심적 자료로 일본측에서 내세우는 것이 720년에 편찬된 일본서기라는 역사서이다. 여기에 보면 369년 진구우 코우고우가 보낸 왜군이 한반도에 건너가 7국과 4읍을 점령하고 그 후 임나에 일본부를 설치한 다음 562년 신라에 의해 임나가 멸망할 때까지의 관련 기사를 수록하고 있다. 일본서기는 천황의 권위가 확립된 이후 이를 미화하기 위해 편찬된 역사서로 후대의 윤색이 많으며, 특히 5세기 이전 기록은 일본에서조차 신화적 전설로 간주되어 신빙성이 약한 것으로 보고 있다. 게다가 기나이의 야마토 세력이 주변 세력을 통합하면서 일본 열도를 장학해 나가기 시작한 것은 6세기 들어서야 겨우 가능하였는데, 그 야마토가 남한을 4세기부터 경영했다는 것은 역사의 흐름으로 보아도 인정할 수 없다. 또한 임나일본부설을 지지하기 위해서 광개토왕비를 들고 있다. 이비는 414년 장수왕이 광개토대왕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서 건립한 것이다. 이 비의 신묘년 기사의 내용을 해석해보면은, 일본인들이 신묘년에 바다를 건너와 백제와 임나, 신라를 격파하여 신민으로 삼았다고 적혀있다. 그러나 당시 일본은 한반도를 지배할 힘이 없었다. 이 구절은 의도적으로 조작되었을 것으로 현재 추정중이다. 그리고 이 능비를 세운 고구려인들이 광개토왕의 백제 정복과 신라와 가야 지역에의 군대 파병을 정당화하기위해서 왜의 존재를 백제나 신라를 정복할수 있을 정도의 힘을 가진 나라로 과장했을 가능성이 높다. 광개토왕비는 고구려의 역사를 돋보이게하는 방향으로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크므로 광개토왕비의 내용이 역사적 사실이라고 전부 다 받아드리는 방법은 문제가 있다. 그리고 일본은 송서의 왜국전을 들고 있는데, 이를 보면 왜의 무왕이 스스로 왜, 백제, 신라, 임나, 가야, 진한, 모한 등 7국의 왕을 칭하면서 송의 황제에게 이를 인정해줄 것을 요청하자 중국의 황제는 이를 인정하는 관작을 수여했다고 한다. 일본 학계에서는 이를 근거로 5세기 경 왜왕은 일본 열도는 물론 백제, 신라, 가야까지도 지배했으며 임나일본부도 인정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임나와 가라가 모두 가야를 가리키는 것인데 왜 중복되어 나타나는 이유와 이미 멸망한 진한과 마한이 왜 나타나는 이유와 관작에서 백제가 제외되었는 이유가 설명이 되지않아 많은 의문점을 남기고있다. 따라서 왜국전안에 기록되 있는 역사적 내용을 사실로 받아드리는 것에는 문제가 있다. 마지막으로 칠지도라는 칼을 주장하고있다. 일본서기에 적혀있는 내용은 칠지도는 372년 백제 사신이 신공황후에게 준 칼이라고 되어있다. 이를 일본에서는 백제에서 일본에게 공을 바친다는 뜻으로 해석하여 백제봉헌설을 제기하고 있다. 하지만 명문의 기록을 보면 “지금까지 이러한 칼은 없었는데 백제의 왕세자가 일본 왕을 위해 만들었으니 후세에 길이 전하라”라고 기록되어있다. 위를 잘 해석하여 보면은 일본의 후왕은 백제의 제후국 왕으로 해석이된다. 따라서 당시 왜왕은 백제의 아래에 있는 일종의 신하 개념으로 보는것이 올바르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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