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종교개혁사] 종교개혁사 요약 - 제 5 장 영국의 종교개혁.hwp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1. 헨리 8세의 분열
2. 에드워드 6세 통치하의 종교개혁
3. 메리와 엘리자베드 통치하의 가톨릭 복귀와 영국교회의 확립
결 론
본문내용
대륙과 스크틀랜드에서의 종교개혁이 교회의 인물들에 의해 기도되었다면, 영국 종교개혁은 국가의 보호하에 보다 정확히 말하면 군주제의 보호하에 준비되고, 세워지고, 재건되었다. 헨리 8세는 로마와 결별하면서 종교개혁을 준비하였고, 서머세트공과 노덤버랜드 공이 에드워드 6세 치하에서 종교개혁을 세웠으며, 엘리자베드가 “옛 종교”로 자기 백성을 끌고간 메리 튜더의 죽음이후, 종교개혁을 회복시킨 것이다. 영국에서도 다른 곳에서와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수많은 써클들을 통해 교회 갱신을 갈망했다.
1. 헨리 8세의 분열
16세기 초, 영국의 종교적 상황은 이중의 양상을 띄었다. 한편에서는 경건운동이 꽃을 피워 전통신앙에 매달려 있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수많은 사회계층에서 교회 세금과 교황 지상권에 대한 모종의 적개심이 표출되었다.
헨리 8세는 통치 초기에 토마스 월세이 추기경을 이용하여 수도원을 개혁하고 성직자 양성을 줄이는 시도를 했다. 이 일을 하면서도 그는 전통 신앙에 충실히 남아 있었다.
이처럼 헨리 8세가 “신앙의 수호자”로 자처하던 무렵, 루터주의는 영국 대학들에서 최초의 지지자들을 맞이했다. 특히 캠브리지에서는 서클 하나가 “백마”라는 여관에 모여 비텐베르크 사상을 논했다. 대부분이 성직자들로 구성된 이들은 토마스 크랜머, 존 프릿, 윌리암 틴데일 등이 끼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