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명문] 시대의 증언자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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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명작명문] 시대의 증언자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서경식, 『시대의 증언자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

-서지정보

-본문내용

단순 명쾌?

수치(羞恥)

‘인간’

단절

독일인

레 움베르또 거리

-관련 자료

-토의 주제

본문내용
본문내용
단순 명쾌?

* “레비가 1987년에 자살하지 않았다면 모든 것이 단순 명쾌했을 것이다.” : 이 말에 이끌리듯 여행을 떠나온 저자는 레비의 묘를 보고 난 뒤 레비가 자살한 곳으로 발길을 돌린다.
* 인간은 짐승과 다르다 (문명의 형식만이라도 남기려는 투쟁): 저자의 작은형 서준식은 한국의 옥중에서 오랜 단식투쟁을 하면서도 ‘반드시 이를 닦는 것’을 엄격한 규율로 지킴. 레비는 동료 수인 장(jean)에게 ‘신곡’을 암송해주며, 장은 수용소에서는 쓸모없는 외국어를 굳이 배우려 함.
→ 이 작업을 통해 레비는 자신의 과거와 문화와의 관계를 회복하고, 마음이 기능하고 있음을 확인. 어디서나 자신에게 규율과 질서를 부과하고 자기 생활의 주인으로서 살아가려 하며, 잔혹한 상황에서도 ‘덕과 지’를 추구하는 인간의 모습을 보인다.
* 레비는 아우슈비츠에서 인간성을 철저히 파괴당했음에도 ‘인간’이라는 척도를 재건하고, 그 역유토피아에서 살아 돌아와 증언하였다. ‘인간’의 가치를 한층 보편적인 것으로 높이기 위해 무언가를 해냈던 그가 저자에게는 바로 ‘인간’의 척도였다. 그러나 레비의 자살 앞에 저자는 이 생각이 너무 ‘단순 명쾌했나’ 하는 의문을 갖게 된다.
* 동화(同化) 유대인: 쁘리모 레비와 장 아메리는 자신이 유대인이라는 인식조차 없었다. 그들은 외부 폭력에 의해 억지로 ‘유대인’이 되었다. 그러나 나치의 박해를 받으면서 공통적으로 아이덴티티의 균열을 경험했고, 각국 출신의 유대인들과 고난을 함께하면서 유대인으로서의 아이덴티티가 형성되어 갔다. 그와 동시에 ‘야만적인 파시즘’에 대항한 ‘문명적인’ 이탈리아인으로서의 아이덴티티도 강화되며, 이것은 더 나아가 ‘보편적인 인간’으로서의 아이덴티티로 연결된다.

수치(羞恥)

* 모어의 속박 : 고향이란 특정한 땅이나 집만이 아니라 모어(母語)이며, 문학이나 음악, 문화 그 자체임을 토마스만, 윤동주, 한나 아렌트, 아메리 등의 예로 들어 서술하고 있다. 그러나 저자 자신은 일본어라는 ‘모어’는 존재하지만 ‘국어’는 존재하지 않는 부조리를 안고 있다.
* ‘수치의 감각’ : 아메리는 모든 것을 상실한 후 자살을 통해 최후의 존재 증명을 시도한다. 레비는 ‘수치’라는 글에서 자살로 기우는 생존자의 심리를 분석하고 있다. 생존자의 자살은 죄의식에서부터 나온다. 자신을 삼켜버린 시스템 안에서 저항의 가능성과 용기를 보여준 사례 앞에서 구원의 손길을 내미는 것에 소홀했다는 죄의식, 수치의 감각은 한층 강화된다. 이러한 자기 고발 끝에, 레비는 급기야 자신이 증인으로 자격이 있는지에 의심을 품기 시작한다. 츠베땅 토도로프는 ‘기억으로서의 수치’, ‘살아남은 자의 수치’,‘인간이라는 수치’ 로 3단계에 걸쳐 레비가 시달리던 수치의 감각을 분석하였다.

‘인간’

* 인간이라는 수치: 아우슈비츠의 생존자들이 인간이라는 수치에 시달려야 했던 이유는 자신들이 ‘유대인은 인간 이하’ 라는 사상에 의해 희생된 까닭에, 그 사상을 인간 평등사상으로 대치해야 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독일인도 인간에서 예외가 아니다. 나치에게는 유대인, 집시, 아프리카인 등이, 기독교인에게는 인디오, 아프리카인, 일본인에게는 조선인, 중국인 등이 바로 인간 이하의 존재였다. 이런 피해자들은 인간이라는 척도를 재건하려고 하는 한, 가해자를 포함한 새로운 보편성의 틀을 재구축해야 하는 쉽지 않은 과제를 갖게 된다.
* 아우슈비츠는 끝나지 않았다: 독일은 에스파냐, 영국, 프랑스 등의 국가가 유럽 ‘바깥’에서 자행해온 동일한 행위를 단기간에 ‘안’을 향해 터뜨린 것이다. ‘안’에서 자신들의 이웃에게 영향이 미치게 되자 그제야 ‘인간’ 이라는 이념의 보편성을 둘러싼 그들의 자기모순이 드러나게 된 것이다. 이런 ‘일부 인간은 인간 이하’라는 사상은 현재에도 여전히 존재하며, 레비 또한 나찌즘이라는 ‘야만’에 ‘문명’이라는 위험한 관념으로 맞서고 있다. 그런 그에게서 이 ‘문명’ 세계의 자기 모순을 짊어지고 새로운 보편적 문명의 구축이라는 난제를 안게 된 현대인의 모습을 본다.

단절

* 레비는 ‘인간의 마음을 알고 싶어서’ 해방 이후에 독일인을 다시 만나고 소통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그들은 ‘눈을 감고 귀를 막고 입을 다물고’ 있다. 22년 후 공장의 화학자였던 뮐러와 연락이 닿지만 가해자 편인 뮐러는 ‘과거의 극복’이라는 상투적인 문구를 사용할 뿐이다. 아우슈비츠는 불특정한 인간 전체의 책임이며, 부나의 공장은 유대인을 보호하기 위해 건설되었고, 자신은 유대인의 살육을 전혀 알지 못했다고 하는 무기력한 모습에 레비는 불쾌함을 느낀다.
-세계는 여전히 단절되어 있으며, 일본인 중에도 심지어 재일조선인 중에도 ‘뮐러’는 다수 존재한다. 이들은 원인이 된 현실을 개선하려고 하기는커녕 가해자의 책임을 모호하게 만들고, 상처를 치유할 수 없는 피해자에게 과거는 잊고 앞을 보라고 은근히 강요한다.

독일인

* 레비는『독일인들에게서 온 편지』를 통해 독일 독자와 교류함으로써 독일인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인간’이라는 척도를 재건하기 위해 ‘독일인’을 이해하는 것은 그에게 필수적인 과업이었다. 여기서 ‘독일인’이란 전통, 습관, 역사, 언어, 문화의 총체로서의 독일인, 범죄행위를 실행한 개개의 범죄자들의 배후에서 지지하고 수혜받으며 이를 묵인한 대다수 ‘독일인’을 말하는 것이다.
* 그러나 대다수 독일인은 ‘독일인’은 실체가 없는 관념이라며 자신은 공범이 아니라는 환상을 만들어 낸다. 그들은 이런 의도적인 태만만 보일 뿐 극복을 위한 노력은 실제로 보이지 않았다.독일인을 ‘이해’하고픈 욕구와 초조함, 그리고 ‘이해’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거부로 쁘리모 레비는 죽는 날까지 고뇌했다.

레 움베르또 거리

* 쁘리모 레비의 집: 저자는 열차에서 내려 거리의 배경과 레비의 집에 대해 서술한다.
-아우슈비츠 이후에도 사회는 계속되고 있다. 이는 크나큰 구원임인 동시에 사회가 전과 마찬가지로 계속된다는 것에 레비는 어색함, 불안을 느꼈을 것이다.
* 아우슈비츠의 생존자는 두 부류로 나누어진다. 첫 번째는 잊으려 하면서도 악몽에 시달리며 가책을 받는 자 혹은 무(無)에서부터 다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 둘째는 기억해내는 것이 의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로 레비는 자신을 두 번째 부류로 규정하고 살아갔다. 레비와 같은 희생자들은 자신들이 겪은 불가능한 상황을 증언해야 하는 어려운 일을 부과 받았지만, 결국 부당한 의심과 무관심만 받는다. ‘이편’의 사람들은 귀 기울이지 않고 증인들은 점차 사라져 간다.

관련 자료
쁘리모 레비,
빅터 프랭클,
토의 주제
1. ‘이제 사과는 그만해도 되지 않느냐’ 라는 일본인에게 우리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
2. 실제로 식민 지배를 받지 않은 세대인 우리는 일제강점기와, 우리가 이 시대를 살면서 가져야 할 ‘의무감’ 에 대해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솔직하게 이야기해 보자.
3. 나에게 고난을 이겨내는 ‘인간으로서의 힘’은 어떤 것이 있을까?
4. 자신은 어떤 면에서 가해자고, 어떤 면에서 피해자라고 할 수 있는가?
5. 피해자의 ‘수치’와 가해자의 ‘죄책감’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6. 진정한 ‘속죄’와 ‘용서’는 어떻게 이루어져야 할까? 그 조건은 어떻고 주체는 누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