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문명] 베드로 대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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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서양문명] 베드로 대성당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베드로 대성당의 기원
약탈과 파괴
재건축 역사
미켈란젤로의 피에타상
본문내용
재건축 역사

1503년 교황 율리우스 2세(1503-1513)는 상갈로의 줄리아노에게 대성당의 신축을 위해 전문가로 구성된 건축위원회를 조직하도록 명한다. 수차례에 걸쳐 새로운 대성당의 설계도를 모집한 결과, 브라만테의 설계도가 채택되었다. 그의 첫 번째 설계도에 따르면, 로마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큰 판테온(Panteon)의 돔 형식을 도입하고 있으며, 성전 구조는 그리스식 십자가 모양으로 설계되었다. 1506년 4월 18일 교황 율리우스 2세에 의해 초석이 놓이면서 대공사가 시작되었다. 공사가 시작된 후 4년간은 4개의 거대한 주 기둥을 받쳐 줄 받침대를 세우는 데 모두 소요되었다. 이 기간 동안 브라만테는 성당 내부에 세울 주 기둥들의 모델을 판테온의 내부에 있던 화려하고 아름다운 기둥을 참조하여 설계하였다.
특별히 성당 내부 벽의 기둥 형태는 우아한 도리스식으로 설계함으로써, 단순하고도 거룩한 성전으로서의 모습을 표현하려고 했다. 이 설계는 후에 미켈란젤로가 다시 도입하며, 현재의 대성당 중앙 제대를 중심으로 한 왼쪽 윗부분은 첫 번째 설계자였던 브라만테의 설계 구상이 그대로 남아 있다. 1514년 교황 율리우스 2세가 서거하고, 새 교황 레오 10세는 브라만테가 죽기 바로 전에 자신의 후계자로 천거한 라파엘로를 대성당 신축 공사의 총감독으로 임명한다. 그러나 교황 레오 10세는 라파엘로가 아직 건축 설계의 경험이 적을뿐더러 나이가 어리기 때문에 그 임무를 수행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 보완책으로 경험이 풍부하고 나이가 많은 두 건축 설계자를 파견시켰는데, 이들이 바로 상갈로의 줄리아노와 베로나의 조콘도 수사였다. 교황은 새로이 구성된 새 성당 건축 책임자인 세 사람에게 앞으로 신축될 대성당이 콘스탄티누스의 기념 성당 구조를 가능한 파괴하지 않도록 하는 범위 내에서 설계하고 공사를 진행하도록 각별히 당부하였다. 이에 따라 브라만테가 그리스식 십자가 형태로 설계했던 성당을 다시 원래의 모습인 라틴형 십자가형태로 바꾸고, 돔의 위치도 사도 베드로의 무덤을 중심으로 하여 세우도록 설계를 수정했다. 바로 이 시기에 커다란 두 사건으로 인하여 성당공사는 거의 제자리 걸음을 하게 되었는데, 그 첫 번째는 1517년, 마르틴 루터가 비텐베르크의 주교좌 성당문에 95개의 조문을 내걸고 로마 교황의 교도권에 항의했던 일과, 두 번째는 1527년 란치케네키를 중심으로 한 독일 용병의 로마 침입으로 로마뿐 아니라 이탈리아 전체가 많은 피해를 입은 일이다.
그 후 1534년, 바오로 3세가 교황에 즉위하면서 공사를 재개(再開)하였다. 상갈로의 안토니오를 중심으로, 조수로는 야고보 멜레기노가 임명되었다. 1538년까지는 대성당을 받쳐줄 벽면 기둥들을 세우는 데만 주력하였다. 공사는 계속 활발히 진행되었고 1546년 8월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