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한국 정치체제의 정당성 -각 정권의 절차적 정당성 비교연구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서론
1. 기존의 정당성 기준의 한계
2. 정권의 절차적 정당성이란 무엇인가?
1)권력뿌리의 정당성
2)권력창출의 정당성
3)권력행사의 정당성
Ⅱ. 본론
1. 세 가지 분류를 통한 정권의 정당성 분석(이승만~김영삼)
2. 김대중 정권
3. 노무현 정권
Ⅲ. 결론
※보충자료(루소와 베버의 논의)
본문내용
2) 권력창출의 정당성
권력창출의 정당성에는 권력창출 경기규칙(보통선거, 쿠데타, 세습, 국민투표 등) 자체의 공정성과 정당성, 경기규칙 제정과정의 공정성과 정당성, 경기규칙 시행의 공정성과 자유스러움 곧 절차 정당성의 세 하위영역으로 나누어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승만의 권력창출은 5⦁10선거라는 경기에서 시작된다. 그러나 5⦁10선거라는 경기규칙 자체가 역사적 정당성을 가질 수 없는 경기이다. 첫째, 5⦁10선거는 민족분단을 필연적으로 초래하였다. 둘째, 거의 모든 정당⦁사회단체들이 이 선거 자체의 정당성을 부인하고 참여를 거절하였다. 남로당과 인민당 등 모든 좌익, 김규식, 안재홍 등 모든 중도파, 김구 등 대부분의 우익이 선거참여를 거절했다. 단지 친일파 무리의 집산인 한민당과 이승만의 독촉계, 또 극우청년단체 등 친미⦁극우⦁분단세력만이 선거에 참여했다. 셋째, 더 나아가 국민 일반이 이 선거의 정당성을 부인했다. 1948년 4월 12일 한국여론협회가 실시한 선거등록 관계 여론조사를 보면, 서울시내 통행인 1,262명 가운데 등록 대 미등록 비율이 934(74%)대 328(26%)이었고, 등록한 사람 가운데 자발적 등록 대 강요당한 등록은 83(9%) 대 850(91%)이었다. 또 5⦁10선거를 감시하기 위해 내한한 유엔조선위원단이 선정한 조선의 대표적 지도자인 허헌, 조만식, 김두봉, 김구, 김일성, 김규식, 김성수, 박헌영, 이승만, 여운형 10명중에서 5⦁10선거를 지지한 지도자는 단지 이승만과 김성수 둘뿐이었고, 나머지 8명은 “단독선거를 조건없이 딱 잘라서 반대하였다”. 따라서 김성수와 같은 친일 극우분단세력과 그 대부인 이승만이 집권하리라는 것은 5⦁10선거라는 경기 규칙을 시행하기 이전에 이미 정해져 있었다. 또한 강제등록이 91%나 되는 것은 선거라는 경기절차에서 강권, 불법, 공포, 부정선거등으로 자유와 공정성이 전혀 보장되지 않았음을 잘 말해준다.
다음은 이승만의 재집권을 가져온 경기규칙인 대통령 직선제를 성립시킨 발췌개헌안의 제정과정, 흔히 얘기하는 부산정치파동을 살핌으로써 대통령 직선제 경기 자체의 정당성을 평가하겠다. 1950년 5⦁30총선에서 여당인 국민당이 210석 가운데 24석, 야당인 민국당이 24석을 얻고 무소속이 무려 125석을 얻어 이승만 지지세력은 참패하였다. 이승만에 대한 범지지세력들을 다 규합해도 겨우 57석에 불과해 당시의 경기규칙인 국회의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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