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의 역사] 시대별 여인으로 본 화장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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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화장의 역사] 시대별 여인으로 본 화장의 역사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I . 시작하는 말.

II. 화장은 소리없이, 그러나 쉴새없이 변해왔다. 그리고 또 변할것이다.
  1. 근대 이전 화장의 모습.
- 근대 이전의 여성들도 희고 고운 피부를 갖고 싶어 하였다.

2. 근대 이후 화장의 모습
1) 1900~ 1930 - 년대 새빨간 입술, 강렬한 향기와 엷고 엷은 화장이 대치되던 시대.

2) 1940년대 - 흰 얼굴, 반달눈썹, 불그레한 두 뺨 그리고 붉은 입술의 시대.

3) 1950년대 - 밝은 피부에 두껍고 진한 눈썹, 그리고 강렬한 눈매의 시대.

4) 1960년대 - 색조화장의 시대.

5) 1970년대 - 입체 화장의 생활화, 계절별 화장의 성행, 그리고 눈화장이 각광받은 시대.

6) 1980년대 - 개성 표현과 과감한 연출, 그리고 화려한 색상의 시대.

7) 1990년대 - 소비자가 선택하는 시대.

 
3. 맑고 자연스러운 피부에 개성대로 화장하는 시대.

4. 우리가 추측해 본 10년 후 화장의 얼굴

III. 맺는 말.

본문내용
2. 근대 이후 화장의 모습

▣ 1900~1930년대
강화도 조약(1876년)에 따른 개항 이후 우리나라에는 신식 메이크업 테크닉과 화장법이 물밀 듯 밀려 들어왔다. 재래의 미용법, 화장품, 그리고 화장품의 제조 유통방식은 새로운 화장품과 화장법으로 변화되었다. 재래에 화장품을 팔던 육의전이 붕괴되면서 화장품을 판매하던 분전은 그 기능을 상실하게 되었다. 육의전 붕괴 이유에는 외국으로부터 밀려들기 시작한 수입상품의 영향도 컸는데, 처음에는 주로 일본과 청나라로부터 유입되었으나 한일합방 이후 1920년대에는 프랑스를 주로 한 유럽으로까지 확대되었다. 수입화장품은 주로 크림, 백분, 비누, 향수 등이었는데 포장과 품질이 우수하여 여성들로부터 대단한 인기를 끌었다. 이러한 상품의 한 예가 박래품인데, 하지만 수요가 급증함에 따라 가격도 높았기 때문에 거의 상류 여성층에게만 사용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1916년에 등장한 국산 최초의 관허 1호 화장품 ‘박가분’은 저렴한 가격과 잘 발라진다는 특성 등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1922년에는 정식으로 제조 허가를 받아 '박가분제조본포'라는 이름으로 등록허가를 받기도 했다. 박가분의 성공으로 잇따라 미용백분과 서울분 배달 기름(머리), 연부액(미백로션), 유액(로션), 연향유등도 시판되었다. 하지만 박가분은 납 성분이 들어있어 심각한 부작용을 낳았고, 또한 1920년대 말부터 국내로 밀입된 일본의 고급 화장품에 밀려 결국 1937년 박가분은 사라졌다. 그 후 여성 일본 유학생 오엽주가 종로 화신 백화점에 처음으로 미장원을 개업하고 새로운 메이크업 테크닉과 바니싱 크림 (흡수가 잘 되는 크림, 무유성 크림) 등의 신식 화장품을 소개하였다.
이 시기에 도입된 신식 화장법은 입술연지의 색깔이 진해지고 향수와 비누향내가 강렬했다. 이 시기의 신여성은 짧아진 치마의 길이와 하이힐을 신고 양산을 든 차림으로 대표되었다. 하지만 이런 신여성의 화장과 옷차림은 기생과 접대부에 의해서 먼저 유행되었고, 화장품 또한 그러했다. 일부 신여성의 자유연애 예찬으로 빚어진 비난 때문에 여염집 여인들은 종전보다 더욱 엷은 화장을 선호하는 현상을 보이기도 하였다. 또한 1930년대 말 일본 유학생 오엽주에 의해 입술연지를 아랫입술에만 빨갛게 바르고 눈썹을 초승달 모양으로 그리는 화장법이 유행하기도 했다.




여염집 여성 기생의 모습

▣ 1940년대
1945년 8.15 광복을 계기로 한국의 화장품 산업은 전환기를 맞이하게 된다. 일제 화장품은 사라지고, 일제 말기에 가장 활발한 활동을 한 화장품업자 김동엽의 동방화학은 에레나랑 상표로 바니싱 크림등을 만들어 냈고, 이밖에도 모나미 크림, 스타 화장품 등의 국산 화장품이 생산되었다. 그러나 8.15 직후, 원료가 부족해지고 일본인들의 철수로 제조 회사의 규모가 작아진데다가 6.25와 같은 수차례의 전쟁으로 생활고는 심해졌으며, 물가까지 치솟아 화장을 하지 않는 경향을 보였다. 1945년 8.15 해방을 계기로 우리나라의 화장품 산업은 일시적으로 퇴보를 보였으며, 6.25 이후 수입 화장품, 밀수 화장품, 미군 PX 유출 품이 범람하였다.
1940년대 이러한 시대 상황에도 불구하고 화장은 끊임없이 유행을 만들었다. 1940년대에 외국에서 도입된 현대식 화장법은 얼굴을 희게 하고 눈썹은 반달 모양, 볼연지와 붉은 입술을 하는 것이다. 해방 후의 화장 기법은 피부는 번들거리고 눈 화장은 마스카라와 아이라이너로 강조함으로서 강조한 눈 화장 부분에 포인트를 주는 것이다.




참고문헌

- 신인섭
- 김수정
- 타 기관 가정교육학 논문
< 여러 인터넷 자료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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