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후기 부보상(負褓商)과 부보상단

 1  조선후기 부보상(負褓商)과 부보상단-1
 2  조선후기 부보상(負褓商)과 부보상단-2
 3  조선후기 부보상(負褓商)과 부보상단-3
 4  조선후기 부보상(負褓商)과 부보상단-4
 5  조선후기 부보상(負褓商)과 부보상단-5
 6  조선후기 부보상(負褓商)과 부보상단-6
 7  조선후기 부보상(負褓商)과 부보상단-7
※ 미리보기 이미지는 최대 20페이지까지만 지원합니다.
  • 분야
  • 등록일
  • 페이지/형식
  • 구매가격
  • 적립금
자료 다운로드  네이버 로그인
소개글
조선후기 부보상(負褓商)과 부보상단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보부상의 이동경로-저산팔구(苧産八區) 모시가 많이 생산되고 유통되는 부여, 홍산, 남포, 비인, 서천, 한산, 임천, 정산의 팔읍.
의 예
부보상들은 1일 20~60리 정도의 거리를 주로 밤시간을 이용하여 이동하였는데, 시장간의 거리는 남한지방이 20~35리 내외, 북한지방이 30~60리 내외에 위치하고 있었다. 강선민, “조선시대 부보상의 경제활동에 관한 연구”, 경기대 대학원, 1989, 90쪽
남한지방의 시장간 거리와 북한지방의 시장간 평균 거리에 차이가 있는 것은 북한지방이 남한지방에 비해 산이 많아서일 것으로 생각된다.
저산팔구란 모시(苧)가 많이 생산되는 부여, 홍산, 서천, 비인, 남포, 한산, 임천, 정산의 팔읍을 말한다. 특히 한산과 임천지방은 15세기경부터 모시가 생산되었으며 위의 책, 86쪽
19세기쯤에 와서 보부상의 활동이 두드러지기 시작하였을 때 쯤에는 충분한 시장을 형성하고 있었을 것이다. 지금도 저산팔읍의 하나인 서천군의 한산장에서는 끝자리 1일과 6일의 5일장으로 새벽에 모시장이 열리고 있으며, 한산 세모시짜기는 충남 시도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어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현재까지도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을 정도이므로 보부상의 활동이 활발하던 조선 후기에는 그 명성이 자자하였을 것이다. 이 지역 부보상들의 이동 경로를 나타내보면 아래의 그림과 같다.
충청도 지방에서 모시가 가장 많이 거래되었던 시장은 한산의 장등장, 부여의 은산장, 홍산의 신기장, 인천의 읍내장, 비인의 판교장, 남포의 간치장 등 이었으며 경상도와 전라도 지방의 시장에서도 대량으로 거래되었다. 위의 책, 같은 쪽

1800년대 후반기 충청지방에 있어서 저산팔구의 보부상들은 개시일에 따라 2개 경로로 나뉘어 행상하고 있었다.

참고문헌
네이버 부보상 카페(http://cafe.naver.com/bubosang)
조재곤, 『근대 격변기의 상인 보부상』, 서울대학교 출판부, 2003
이훈섭, 『부보상을 아십니까』, 한마음사, 2005
『시간여행 역사속으로』, 2004.5.24, KBS 미디어
오늘 본 자료
더보기
  • 오늘 본 자료가 없습니다.
해당 정보 및 게시물의 저작권과 기타 법적 책임은 자료 등록자에게 있습니다. 위 정보 및 게시물 내용의 불법적 이용,무단 전재·배포는 금지되어 있습니다. 저작권침해, 명예훼손 등 분쟁요소 발견 시 고객센터에 신고해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