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학] 선암사(답사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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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화학] 선암사(답사자료)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대각국사 중창건도기에 의하면 그 때의 중창은 법당 13, 전각 12, 요사 26, 산암 19개소 등의 방대한 규모로 이루어 졌음을 알 수 있다.
이후 고려시대의 기록은 보이지 않고 다만 김극기(1171-1197)의 시에 적막하고 고요한 수행의 사찰로 적고 있다. 조선전기의 선암사의 기록은 중종 35년(1540)년 일주문을 중수했다는 기록이 유일하다.
선암사도 다른 절과 마찬가지로 정유재란 때에 큰 피해를 입는데 모든 전각이 불에 타고 철불, 보탑, 부도, 문수전, 조계문, 청측만이 남았다고 한다.

그 후 선암사는 복구를 못하다가 1660년에 경준(敬俊), 경잠(敬岑), 문정(文正)의 세 대사에 의하여 대웅전을 세우는 등 8년간 괄목할 중수를 이루었다.
그러나 전쟁이전의 상태를 복구하는데는 무리였다.
선암사의 중창불사를 마무리하신 분은 호암약휴(護巖若休)스님이었다. 호암스님은 승선교를 비롯하여 원통전 불조전 등을 만들었다. 중창이후 법당 8, 전사(殿舍) 12, 중료(中寮) 16, 산암 13, 부속암자로 선적암(善積庵), 도선암(道詵庵) 등에 이르렀다고 한다.
영조 35년(1759) 봄에 선암사는 다시 화재를 만나 큰 피해를 입게 되었는데, 상월새봉(霜月璽封)과 서악(西岳)이 다음해인 1760년에 재건 불사를 시작하였다. 이는 아도화상이래 도선-의천-경잠-경준-문정-호암의 뒤를 이은 오창(五創)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