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몽의 변증법`에 나타난 `오디세이`의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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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계몽의 개념

부연설명 1 오디세우스 또는 신화와 계몽

본문내용
그러나 계몽의 제물이 된 ‘신화’자체도 이미 계몽의 산물이었다(p28). 신화는 보고하고 이름 붙이고 근원을 말하지만 이로써 기술하고 확정하고 설명하는 것이다(p28). 자연으로서의 자연을 나에게 있어서의 자연으로 설명하고자 하는 욕망은 계몽뿐만 아니라 신화에 있어서도 동일하다. 신화 역시 세계를 나의 질서로 구조화하려 한다. 물론 더욱 정교하게 계몽과 신화를 구분하자면, 계몽은 나의 질서로 세계를 구조화하려는 반면, 신화는 나에게 익숙하지만 그렇다고 온전히 나의 질서는 아닌 것으로 세계를 구조화하려 한다고 할 수 있다. 신화의 세계는 무규정적인 혹은 무구별적인 상태라는 의미에서의 ‘뒤엉킨 자연 전체’를 체험한 인간의 외침으로 구성되어진다. 이러한 외침은 애초에 자연에 대한 공포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이것은 하나의 이름이 됨으로써 그 출발인 공포 혹은 불안의 근거를 초월성과 성스러움의 근거로 전환 시킨다. 인간의 자연에 대한 불안을 표현하는 것은, 곧 그것을 해명하는 행위가 되는 것이다(p39). 해명된 자연은 구조화된 질서가 실현되는 곳이며, 그러한 질서는 또한 새로운 사건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신화는 계몽과는 달리 체계화 너머의 미지의 것에 대한 불안을 가지고 있다. 불안의 근거는 언어화 되었을지언정 완전히 계몽적인 의미에서의 대상화가 되지는 않았다. 신화는 아직 초월성을 간직하고 있다. 그것은 자연의 피설명항들을 설명하는 설명항을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설명항은 결코 설명되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의 인식에 완벽하게 포획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의 외부에 있다.
앞서 논의된 것처럼, 신화와 계몽 역사적으로 신화와 계몽은 분명 구분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변증법적 사유의 전개과정에서 언제나 그러하듯이, 개념들은 그 자체로 자기모순을 가진 채 운동하고 있으며, 서로 모순 되는 것 같은 개념들은 그러한 개념의 운동의 종착점에 맞닿아 있다. 신화와 계몽은 따라서 역사적인 맥락 안에서는 명료하게 구분될지언정, 사유의 전개과정에 있어서는 만족할 만큼 명료하게 구분되지 않는다. 사실 어떤 의미에서 두 개념간의 엄밀한 구분은 변증법적 사유의 전개를 가로막는 최대의 장벽이다.
사이에 본질적인 단절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계몽과 신화를 탄생하게 한 불안은 동일하다. 계몽은 신화적 불안에 시달리는 강박적인 정신에 다름 아니다. 계몽은 불안의 원천인 ‘밖’을 완전히 제거함으로써 불안을 제거하려 한다. 이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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