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르네상스 레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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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독일 르네상스 레포트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독일 르네상스
1)특징
2)주요인물
①그뤼네발트(Mattias Grunewaltl: 1470-1528)
②뒤러 [1471.5.21~1528.4.6]
③홀바인 [1465~1524]

#1 - 독일 르네상스 회화의 뒤러
알브레히트 뒤러

작품소개
1)기도하는 손


2)자화상
3)멜랑꼴리아.
2. 홀바인

작품 소개
1.대사들
2.무덤에 누워있는 죽은 예수



1)판화의 발달 과정

2.초상화의 발달과 개념
 초상화 (portrait)


본문내용
.

세상의 중심에는 내가 있다. 내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부와 명성 그리고 권력도 다 소용없는 일이다. 하지만 세상의 중심에서 확고하게 자신의 존재를 부각시키기 위해서는 자신을 알리는 일에 적극적이어야 한다. 미술 역사상 처음으로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알리기 위해 자화상을 제작한 화가는 알브레히트 뒤러(1471~1528)다. 뒤러는 자신의 흔적을 자화상 형식을 빌려서 표현했는데, 이는 자신을 선전하는 도구로 사용하기 위해서다.

뒤러는 열네 살 때 최초로 독자적인 스타일의 자화상을 제작하기 시작했는데 이전의 화가들에게서는 볼 수 없는 방식이다. 그는 자신의 모습을 돋보이기 위해 화려하고 우아한 남자로 묘사했다. 그 당시 르네상스 시대의 화가 누구도 자화상을 통해 부와 명성을 과시한 사람은 없었다. 자의식이 강한 뒤러는 신분이 낮은 수공업자가 아니라 학자로서 동등한 대우를 원했기 때문이다.

‘모피 코트를 입은 자화상’에서 뒤러는 모피를 덧댄 갈색의 코트를 입은 정면에 있는 자신의 모습을 묘사했다. 화면 정면에 얼굴을 배치하면서 뒤러는 가리마 부분의 머리를 제외하면 좌우 대칭 으로 얼굴을 그렸다. 길고 어두운 고수머리는 어깨까지 내려오고 있어 얼굴과 정삼각형을 이루고 있다. 뒤러의 오른손은 모피 코트의 칼라를 잡고 있다. 오른손도 화면 좌우 중앙 부분에 놓여 있다.

이 자화상에서 뒤러는 그때까지 내려온 예수 그리스도의 초상화법을 이용했다. 6세기부터 시작한 그리스도 초상화법이란 그리스도의 얼굴을 좌우 대칭으로 완벽하게 표현하는 방식을 말한다. 또 뒤러의 짧게 자른 턱수염도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뒤러가 이 같은 방식으로 자신을 표현한 것은 신을 닮은 인간은 화가밖에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인간을 자신의 형상대로 창조하신 최초의 창시자라면 화가의 창조력은 신의 능력과 비슷하다는 믿음에서 나왔다. 뒤러의 이러한 생각은 이탈리아에서 경험한 새로운 인문주의적 자의식이 바탕이 되었고 그것을 자화상으로 표현했다. 이 작품에서 뒤러는 모피를 통해 자신의 부유함을 나타냈으며 잘 다듬어진 헤어스타일과 수염은 귀족의 모습으로 표현했다. 뒤러는 당시 성공한 화가로서 수입이 굉장히 많았다. 모피 같은 화려한 의상을 구입할 수 있는 여유가 있었기에 자신을 부유한 귀족으로 묘사했다.

알브레히트 뒤러는 북유럽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로 불릴 만큼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가졌다. 그는 이 작품을 제작하면서 화면 왼쪽 어두운 배경에 1500년이라는 제작년도와 알브레히트 뒤러의 이니셜 AD을 써놓았다. 또 오른쪽 배경에는 라틴어로 자신에 대해 설명하는 글을 남겼다.

“나, 뉘른베르크 출신의 알브레히트 뒤러는 28세의 나이에 불변의 색채로 나 자신을 이렇게 그렸다.”
뒤러는 이 자화상에 그림과 함께 글을 써놓아 자신의 모습이 영원히 남아 있을 것이라는 것을 암시했다.


그저 잘 그려진 자화상인줄 알았지, 화가들이 그림에 그렇게 많은 의미를 부여하는 지는 몰랐다. 문학 작품을 읽는 것처럼, 그림이 그려진 시대와 작가의 의도와 같은 많은 정보들을 통해서 그림을 봐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뒤러는 독일의 국민적 화가라 불리는데, 당시 화가 스스로의 자부심이나 자존감이 충분히 느껴지는 그림이다. 그림에 본인의 서명을 남기고 글을 남기는 것은 동양화에서 보는 낙관과 같은 형식인 것도 신기했다. 그림만 볼 것이 아니라 그림에 담긴 의미와 화가의 의도를 파악하는 능력이 필요 할 듯 싶다.

 뒤러의 세 자화상의 비교.
(ppt에 나와 있는) 세 점의 자화상은 뒤러 화풍의 변천을 잘 드러낸다. 첫번째 그림은 스무살이 되기 전인 1490년에 볼게무트 공방을 떠나 1494년까지 콜마르, 바젤 등 지금의 프랑스 북동부 및 스위스 지역을 및 이탈리아를 여행했던 시기인 22세에 그린 자화상이다.
뛰어난 소묘실력이긴 하지만 화풍에는 북구 지역의 고딕스러운 분위기가 아직 남아 있을 때다. 이 그림에는 A와 D를 조합한 이니셜 로고가 없는 것으로 짐작컨데 스스로 이룬 경지에 확신이 없을 때라 추정된다. 이니셜 로고는 이 여행에서 귀국하고 사용하기 시작했다. 두번째 자화상은 26세에 그린 작품이고 세번째 자화상은 28세에 그린 작품인데 고딕적인 엄격함에 이탈리아 르네상스 미술에서 관찰한 원근법 등의 요소가 결합된 기풍을 보여준다. 특히 28세의 자화상은 연작 시리즈 판화를 발표해 한창 유명해질 쯤 제작한 그림으로 대단한 자신감과 위풍당당함이 드러나 있다. 당시의 인물화는 약간 측면으로 틀어서 그리는 것이 일반적이었고 예수 그리스도를 그릴 때만 정면 구도를 사용하였는데 뒤러는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 초상처럼 그렸다.

참고문헌
http://kyunam.net/spboard/board.cgi?id=artedu&action=view&gul=32&page=1&go_cnt=1&category=et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