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사] 몽고풍으로 살펴본 고려와 원나라의 교류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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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고려시대사] 몽고풍으로 살펴본 고려와 원나라의 교류에 관하여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1. 들어가며
2. 고려양(高麗樣)
3. 몽고풍(蒙古風)
1) 변발
2) 철릭(첩리)
3) 식문화
4. 나오며

본문내용
초록

원나라는 고려를 부마국으로 삼아 7명의 공주를 고려의 국왕에게 시집보냈다. 이 과정에서 양국 사이의 교류는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고려에서 유행한 몽고의 풍습을 몽고풍(蒙古風)이라하고, 원나라에서 유행한 고려의 풍습을 고려양(高麗樣)이라고 한다. 몽고풍은 비록 처음에는 몽고의 풍습이라고 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고려의 풍속에 맞게 변형되어 우리 고유의 풍속으로 남았다고 볼 수 있다.

1. 들어가며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아기들의 엉덩이에는 멍 자국 같이 보이는 시퍼런 반점들이 보인다. 우리는 흔히 이것을 ‘몽고반점’이라고 부른다. 이와 같이 부르는 까닭은 몽고반점이 몽골계 인종이 지니는 습성이기 때문이다.
원래의 몽골인은 중국의 송(宋)나라가 지배하고 있을 당시에 북쪽에서 요(遼)와 금(金)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 그런데 12세기 후반, 금의 통치력이 약화되자 세력을 키워 강력한 통일 제국을 건설하고자 하였다. 테무진(Temujin)이 몽골 지역을 통일한 후에 그는 전체 부족장들의 회의인 쿠릴타이(Khuriltaim)에서 최고 지도자로 추대된다. 이 사람이 우리들에게도 익숙한 이름인 칭기즈 칸이다.
칭기즈 칸은 몽골 부족의 정치 ․ 군사 조직과 제도를 개혁하여 강력한 군사력을 확보하고 일원적 지배 체제를 확보하였다. 그는 이 기세를 바탕으로 세계 곳곳을 정복하여 대 제국을 건설하였다. 그의 후예들도 정복 사업을 지속해서, 오고타이(Ogotai)에 경우 유럽 대원정에 나서 폴란드, 헝가리, 오스트리아까지 진출하였다. 이광호, 『(기독교적 관점에서 본) 세계문화사』(서울 : 예영커뮤니케이션, 1996), p. 141
몽골는 태조(太祖) 칭기즈칸부터 세조(世祖) 쿠빌라이에 이르는 70여년 동안 유럽과 아시아에 이르는 광대한 영토를 정복하였다.
이 중에서 우리가 현재 중국의 왕조 중 하나로 알고 있는 원을 세운 사람은 세조 쿠빌라이이다. 그는 칸의 자리에 오른 후 수도를 몽고 내륙에서 대도(大都, 지금의 북경)로 옮기고 국호를 바꾸었다.(1271) 우경윤, 『(청소년을 위한) 세계사= History of world: 동양편: 고대에서 현대까지]』(서울: 두리미디어, 2004), p. 173
또한 중국식의 국가를 건설하고자 하여, 중앙 집권적 관료 제도를 채택하고 송 대의 제도를 모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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