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시대의역사인식] 한국 근대사와 서대문 형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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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분단시대의역사인식] 한국 근대사와 서대문 형무소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1. 답사 일정
2. 구성원 역할
3. 서대문 형무소 가는 길
4. 서대문 형무소 소개
5. 서대문 형무소의 역사
6. 서대문 형무소에서 희생된 대표 애국선열들
7. 사진자료
8. 답사 후기
9. 참고문헌







본문내용
근대적 의미에서는 우리나라 최초의 감옥

대한제국 말기 전옥서(典獄署)로 시작된 이곳의 역사는 1904년 '경무청감옥서'로 바뀌고 이후 1908년 10월 21일 '경성감옥'으로 개칭되면서 현재의 무악재로 옮긴이래, '서대문 감옥'이나 '경성 형무소', '서울 형무소', '서대문 구치소', '서울 교도소', '서울 구치소' 등으로 이름을 달리하며 1987년 11월 15일 서울구치소가 의왕시 청계산 기슭으로 이전할 때까지 약 80년간 한국의 대표적 교도소로 기능해왔다. 현재는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으로 개관되었다.
큰 미루나무 한 그루가 불긋한 담장 옆에 서 있고, 그 담장 안쪽으로 나무로 만들어진 사형장이 있다. 특히 그 미루나무를 유심히 살펴보자면, 일명 '통곡의 미루나무'라고 부르는 것으로 처형수들이 사형을 당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잠시 통곡을 했다는 나무이다.
특히 담장을 사이로 두고 안쪽에도 역시 미루나무 한 그루가 있는데 어찌 된 영문인 지 이 안쪽의 미루나무는 바깥쪽의 그것에 비해 볼품없이 말라 있다.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로는 사형수들의 한이 서려 있어 그렇다고 하는데 알 수 없는 일이다. 이 사형장은 당시 전국 각지에서 사형 선고를 받으면 서대문 형무소로 이감되어 사형을 당한 곳으로, 사형수가 앉는 의자와 동아줄, 배석자들을 위한 긴 의자들이 아직도 남아 있다.

사형장의 한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오던 방향 그대로 담장을 나가면 한 구석에 작은 철문이 있는 것이 보인다. 굴같이 보이는 것이 분명 제대로 된 출입문은 아닌 듯 싶다. 일제는 사형집행을 한 다음 시체를 밖에 내다 버릴 필요가 있었는데, 그러한 목적으로 뚫은 것이 바로 이 굴이다. '시구문'이라도 불리는 이 통로는 일제 말기 일본인들에 의해 폐쇄되었으나 1992년 길이 40m로 복원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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