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학] 1945~48년 해방정국, 좌익정당의 실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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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정치학] 1945~48년 해방정국, 좌익정당의 실패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1. 서론 : 문제의식
2. 폐쇄된 정치사회가 형성된 과정
(1)남한
①미국의 점령 및 인공과의 대립(45년 8월~12월)
②우파 중심의 대표기구 형성(46년 1월~46년 5월)
③대표기구를 확대하려는 시도(46년 5월~47년 6월)
④보수적으로 폐쇄된 정치사회의 형성(47년 7월~48년 5월)
(2)서독과 일본ㅡ개방적 정치사회의 형성
3. 좌익정당에 주어진 제약
4. 좌익정당의 잘못
(1)공산주의 계열의 잘못
①미군정 및 우익과의 대결
②대중과 유리
(2)중도좌익 계열의 잘못
ㅡ공산주의 계열과의 연합
5. 결론 : 가능성의 공간에서 닫힌 공간으로
본문내용

3. 좌익정당에 주어진 제약

한국 · 서독 · 일본이 공통적으로 미국의 점령아래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각국의 좌익세력이 똑같은 외적 조건 아래 있었던 것은 아니다. 서독과 일본에 비해 남한의 좌익세력은 보다 불리한 조건 아래 있었다.
미국의 공통된 세계적 목표는 대소반공블록을 형성하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미국 점령정책의 최종적 목표는 점령지에서 친소 정권의 수립을 막는 것이었다. 이점에서는 한국, 일본, 서독에서 차이가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미국이 공산주의 세력을 점령 초기부터 탄압했던 것은 아니다. 서독의 경우, 미군정이 공산당을 탄압한 일이 없었다. 일본의 경우, 점령 초기에 미국과 노동운동세력 간의 긴장이 없던 것은 아니지만 대결이라 부를 정도는 아니었다. 미국과 공산당 세력 간의 전면적 대결은 1949년이 되어서야 시작되었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미군은 점령초기부터 좌익을 탄압했다. 여기에는, 후술하겠지만, 공산주의 계열이 불필요한 탄압을 자초했던 면이 있다. 하지만 미 점령군의 잘못 또한 컸다. 점령군 사령관 하지 중장은 반공적 신념의 소유자였고, 정치적 감각 없이 직선적인 성격을 가졌으며, 무엇보다도 한국에 대해 아는 바가 없었던 사람이었다. 강준만, 위의 책, 제1권, 68쪽.
한국에 대해 사전 지식이 없었던 하지 중장에게, 조선총독부와 한민당에서 왜곡된 정보가 전달되었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미 본국에서 주어진 지령은 애매한 것이었고 박찬표, 위의 책, 97쪽.
따라서 사실상 점령군의 독자적 판단에 의해 통치가 이루어 졌다. 이러한 이유로 미 점령군의 초기 정책은 극우적인 성격을 띠게 되었다. 해방 초기부터, 미 점령군은 공산주의 세력뿐만 아니라 중도좌익 세력과도 전면적으로 대결하였던 것이다.
1945년, 미 점령군의 극우적인 정책은 우파에게 커다란 도움이 되었다. 점령군은 우파를 협력의 하위 파트너로 삼았는데, 이 과정에서 우파가 점령기구의 관료로서 충원되었다. 이때 우파는 경찰 기구를 장악하였는데 가령 한민당 계열의 조병옥과 장택상이 각각 경무국장, 수도경찰청장으로 임명되었다.
, 이는 이후 좌우 대결에서 승리하는 중요한 기반이 되었다. 우파는 경찰 기구를 장악함으로서 합법적 폭력기구를 손에 넣었을 뿐만 아니라, 비합법적 폭력기구 또한 조직했다. 자본가, 지주 출신이 많았던 우파는 풍부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대한민청, 전국학련, 서청, 족청 등의 우익청년단체를 부릴 수 있었는데, 우익청년단체의 조직원 수는 323만 명에 달했다. 강준만, 위의 책, 제1권, 269쪽.
우파는 좌파와의 힘겨룸 과정에서 우파는 경찰과 우익청년단체라는 합법적 · 비합법적 폭력기구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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