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 여성의 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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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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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 목 차 >

Ⅰ. 서론

Ⅱ. 본론

1. 전통시대 여성의 지위
2. 고려시대 여성의 지위
(1) 양측적 친족관계
(2) 혼인
(3) 상속
(4) 가족 내의 지위
3.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여성의 모습

Ⅲ. 참고문헌


본문내용
2) 동성혼과 근친혼
고려시대에는 동성혼과 근친혼이 성행하였다. 『기년아람(紀年兒覽)』에 나타난 고려 왕실의 세계에서 왕비 51명의 출신을 보면 왕녀 출신 13명, 종실 출신이 9명으로 22명의 왕비가 동성자임을 알 수 있다. 또한 동성혼과 더불어 근친혼을 보여주는 사례도 있다. 일본인 학자 都守泰一의 『조선인의 혼인과 족성』에 사례들이 나와있는데 광종과 광종의 이복형제 욱은 부친 태조의 딸을 비로 삼았고, 덕종과 문종은 부친 현종의 딸을 비로 삼았다고 한다. 이외에도 많은 사례들이 있는데 이는 고려 왕실에서 동성혼과 근친혼이 성행하였음을 보여주는 예이다. 동성근친혼을 했을 경우 왕비는 아버지의 성을 따르지 않고 어머니의 성을 따서 붙였다. 고려 왕실뿐만 아니라 근신, 양반 계급에서도 동성혼과 근친혼이 성행하였다고 한다. 초기의 고려왕실에서는 동성혼이나 근친혼 같은 족내혼이 많이 이루어졌으나 족외혼이 비중이 점차 갈수록 높아지는 현상을 보였다. 특히 현종 이후에 귀족가문의 딸이 왕비가 되는 현상이 일어나는 데 이는 고려왕권이 족내혼을 굳이 안해도 될 만큼 강화되었다는 것과 문신관료들이 문벌을 형성하면서 이들이 가문의 격을 높이기 위해 왕실과의 혼인을 원하였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동성혼과 근친혼은 금제 규정은 11대 왕 문종 12년(1058년)부터 대공친 9개월복, 종형제 간
간 혼인으로 태어난 자식은 관리로 진출하지 못하게 한다는 규정이 생기면서 시작되었다. 이어서 15대 숙종 원년(1096년)에는 소공 이상의 근친과 혼인하지 못하게 하고 그 자식에게는 관리등용금지령을 내렸지만 제대로 실행되지는 못하였다. 18대 의종 원년(1147)에 재차 소공 이상의 근친과의 혼인을 금지하였다. 왕실과 양반 간의 동성혼을 국법으로 최초로 제정한 사람은 26대 충선왕(1309년) 때이며 이는 원의 세조가 왕가의 동성혼에 대해 비판을 가했기 때
참고문헌
III. 참 고 문 헌

단행본
『고려의 혼인제와 여성의 삶』, 권순형, 이화여자대학교, 2006
『한국사시민강좌』제15집-한국사상의 여성 특집호, 이기백, 일조각, 1994
『한국사시민강좌』제15집-양반사회와 여성의 지위, 한희숙, 일조각 1996
『한국여성사』최숙경, 하현강이화여대 출판부 1993

논문
「『고려사』에 나타난 고려여성의 사회적 지위 :혼인관계를 중심으로」, 강민순, 제주대 교육대학원, 2000.
「한국 전통사회 여성의 삶에 대한 연구 」, 강숙자, 이화여자대학교, 1987
「고려시대 서류부가혼 (壻留婦家婚)에 대한 연구」, 권순형, 이화여자대학교 사학회, 19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