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신학] 발터침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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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구약신학] 발터침멀리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하나님 앞에서의 삶
침멀리의 구약 신학 방법론
근본적으로 중요한 요소들
계시된 이름
출애굽 이후로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신 야웨
하나님 앞에서의 삶
순종의 응답
옮긴이의 말
서술방법
구약선포의 개방성
본문내용
하나님 앞에서의 삶

침멀리는 1907년에 스위스의 쉬어스(Schiers)에서 태어났다. 그는 취리히와 베를린, 괴팅엔 등지에서 신학과 셈어를 배웠다. 그는 수년 동안 아르부르크에서 개혁 교회 전통에 선 목사로 봉사하였다. 1935년에 그는 취리히 대학에서 구약성서, 종교사, 근동 언어 등을 가르쳐 달라는 요청을 받고 수락하였다. 1951년에 그는 하이델베르크 대학으로 옮긴 폰 라트의 자리를 메꾸기 위해 괴팅엔 대학으로 옮겨갔다. 그는 1975년에 은퇴하여 1983년 12월 4일에 스위스에서 운명하였다. 괴팅엔 대학의 교수였던 침멀리는 알트, 노트, 폰 라트, 베스터만 등과 함께 유럽 대륙을 대표하는 구약 학자들 중의 한 사람으로 이해된다. 그는 문헌 비평, 양식 비평, 전승 비평에서 뛰어난 주석가로 알려져 있다.
침멀리의 학문적인 경력의 절정인 1972년에 그는 ꡔ구약 신학 개관ꡕ(Old Testament Theology in Outline, 영어 번역판은 1978년)을 출판하였던 것이다. 1972년에 침멀리는 이 구약 신학 개관에 이어서 방대한 구약 신학서를 저술하려는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러한 희망은 그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인하여 이루어지지 못했다.
폰 라트와 계약 개념을 중심점으로 본 아이히로트, 프리젠 등과는 다른 입장을 가지고 있는 침멀리는 아이히로트와 프리젠 등에 동의하면서도 “이스라엘의 하나님, 살아 계신 분, 자유로우신 분이신 야웨”야말로 구약성서의 중심점이라고 주장했다. 이처럼 중심점을 지향하는 서술하는 침멀리의 구약 신학은 전승사적이고 통시적인 방법론을 비롯한 다른 방법론들과 대조를 이룬다. 침멀리는 이스라엘의 시작인 출애굽 사건으로부터 시작한다.
침멀리가 저술한 ꡔ구약 신학 개관ꡕ의 구조는 전쟁과 승리를 통하여 선물들을 주시는 야웨에 대한 다양한 표현들(이스라엘의 하나님, 창조주와 왕, 시내산의 하나님)로 시작한다. 그는 땅을 주시며 자신의 임재를 드러내신다. 야웨는 계명들을 주시는 분으로 알려져 있다. 이에 상응하여 이스라엘은 하나님 앞에서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하나님의 가르치심은 인간의 응답을 요청한다.
침멀리는 폰 라트를 비롯한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구약성서의 지혜를 구약 신학 안에 통합시키는 문제를 가지고 씨름한다. 침멀리의 구약 신학 마지막 부분은 원역사와 역사적인 설화들, 예언서, 예언에 뿌리를 둔 묵시문학 등에 있는 “위기와 희망”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침멀리의 구약 신학 방법론

구약성서의 신앙이 자신의 비밀을 지키기 위해 세계와 역사에 등을 돌리는 것이 아니라 세계나 역사적인 사건들의 흐름과 깊은 관계를 맺고서 역사 안에서 마주치는 것들과 대화를 나눈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다른 한편으로 이것은 단순히 “통일성을 가진 전체,” 곧 구약성서가 하나님에 관하여 말하는 것들 - 이에 관하여 서술하는 것이 구약 신학의 과제임 - 이 단순히 역사의 연속성, 즉 역사적인 사건들의 연속으로만 이루어져 있는지의 문제를 불러일으킨다.
구약성서는 야웨라는 이름으로 알고 있는 하나님이 언제나 동일하신 분이라는 확고한 신앙을 가지고 있다. 구약성서는 모든 변화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야웨라는 하나님이 자기 백성 이스라엘에게 대단히 적극적인 관심을 기울이고 계시다고 주장한다. 온갖 고통과 괴로움 앞에서도, 그리고 ‘지극히 높으신 자의 오른손“이 힘이 없는 것처럼 보일 때조차도, 경건한 사람은 그러한 신앙은 지나간 시대의 행동들을 통해서 자신을 알리신 야웨 안에서, 자신이 의존할 수 있는 진정한 연속성을 발견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이 신앙은 야웨가 세계가 처음 시작될 때부터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세상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설명하는 이야기에서 이스라엘은 창세기 10장에 있는 민족들의 목록에 아직 나타나지 않는다. 아브라함 이야기가 시작되는 창세기 12장과 그로부터 생겨난 “조상들”의 이야기에 이르러서야 이스라엘 역사에 대한 약속의 먼 메아리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창세기 32:29(35:10)에 의하면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은 먼저 야곱에게 주어진다. 출애굽기 서두에서 우리는 한 민족으로서의 이스라엘을 만난다.
이처럼 두드러진 현상은 또 다른 현상과 더불어 나란히 나타난다. 세상이 어떻게 시작되었는가를 설명하는 이야기에 속한 창세기 2:4b에서 J는 야웨가 세상의 창조주이시라고 자연스럽게 말한다. 반면에 두 개의 자료층인 E와 P는 “야웨”라는 이름이 이스라엘을 이집트로부터 인도하여 내라는 명령이 모세에게 주어졌을 때 처음으로 그에게 계시되었다고 말한다. 이 두 자료는 구약성서의 야웨에 관한 더 정확한 기억, 곧 그가 자신을 이스라엘의 하나님으로 계시하시고 출애굽 해방을 이루실 때에 가서야 비로소 야웨에 관하여 말할 수 있다는 정확한 기억을 분명하게 보존하고 있다.
이러한 시각에서 볼 때 구약성서의 신앙이 특히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야웨라는 이름으로 고백하는 이 초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