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문]문화유적답사 기행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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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선림원터, 진전사터, 낙산사를 다녀와서
본문내용
깊은 산 속 폐사지


1.

차는 속사교차로에서 고속도로를 버리고 국도로 접어들었다.
이제 바야흐로 운두령이라는 해발 1,000미터가 넘는 고개를 넘어야 할 참인데 마악 나서는 지점에 '이승복 반공 기념관'이 있다. 냉전시대에 독재정권의 반공이념이 남긴 유산이다. 나는 혼자서는 이곳에 들르는 일이 없지만 동행이 있으면 그가 거부하지 않는 한 그냥 지나친 적이 없다. 나같은 녀석이 반공정신이 투철해서임은 물론 아니다. 가장 큰 이유는 입장료가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반공사상을 고취시키든 옛날의 감회에 사로잡히든 유행가의 가사처럼 '저마다 감정은 다 다른 거니까' 내 알 바 아닌데 내 알 바 아닌 일에 돈을 들일 이유는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인 것이다.
이 기념관이라는 곳은 다른 곳에 개인이 만들었다면 '호화' 내지는 '사치' 소리를 들을만한 이승복어린이의 묘를 필두로 그의 복원된 생가, 다니던 학교, 기념관 등으로 이루어져 있고 한 편에는 탱크와 비행기 따위를 늘어놓아 전적기념관 생기기 이전 여의도광장의 축소판같다는 생각을 떠올리게 하는데 어쨌거나 설립목적에는 충실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게도 한다.
이중에서 내가 압권이라고 생각하는 곳은 생가라는 곳인데 여기는 다가가서 살펴 보면 벽에 메주도 걸어놓고 가재도구들도 갖추어 놓은 다음 친절하게 안내팻말까지 달아놓아서 반공기념관에서 민속박물관의 역할까지 하게끔 하고 있는 것이다. 이승복네 식구들이 쓰던 것이라고 여기면 그만이겠으나 나는 이곳을 보면 매번 실소가 나오는 것인데 그것은 아마도 "'멧돌질 하는 승복 어머니상'의 밀랍인형이라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황당한 생각을 하기 때문일 것이다.
조금만 지켜보면 방문객들은 '반공'보다는 '문화'에 관심이 있어서인지 이곳에서 가장 오래 머문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게 되겠지만, 묘를 찾는 사람들과의 빈도를 비교해 보면 목숨을 바쳐서까지 반공정신에 투철했다던 어린이의 일화를 생각해 보는 이는 거의 없는 것 같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하물며 획일적 사고의 주입으로 그를 죽음에 이르게 만든 책임을 지기는 커녕 오히려 정권강화의 호기로 삼은 당대의 위정자들을 돌이켜보는 사람들은 몇이나 되랴.
하기야 승복이가 싫어했던 것은 '콩사탕'이었다는 이설도 있는 판에 아무렇거나 들러서 민속이든 전쟁무기든 잘만 배워가면 좋은 것 아니겠느냐는 생각으로 얼버무리곤 하였었는데 이번에는 혼자 가는 길이라 그런 부질없는 자만에 빠지지 않고 지나쳐 갈 수 있었다. 얼핏 지나치는 눈길에 그가 다니던 학교가 비껴가기에 매번 확인하려고만 하고 못했던 '저 학교에 지금도 학생들이 다니는지'를 또 모르고 지나간다는 생각이 스쳐갔다.

하고 싶은 말
제가 직접쓴 레포트입니다.

많은 참고 되길 바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