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독도영유권주장에 대한 반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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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일본 독도영유권주장에 대한 반박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목차

서론

- 독도 소개
- 독도의 가치

본론

- 일본 외무성 독도영유권주장에 대한 반박
1) 일본주장 1 - 일본이 옛날부터 독도를 인식했다
2) 일본주장 2. 안용복의 진술내용에는 거짓이다
3) 일본주장 3. 한국이 옛날부터 독도를 인식하고 있었다는 근거는 없다
4) 일본주장 4. 일본정부는 1905년 독도를 시마네현에 편입하며 독도영유의사를 재확인

- 독도가 한국땅이라는 역사적, 지정학적, 국제법상의 증거, 근거
1) 지정학적 증거, 근거
2) 역사적 근거
3) 국제법상 근거


결론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
1) 정부의 적극적인 예산지원
2) 감정적으로 대응하기 보다는 냉정하고 차분하게 대응
본문내용
Ⅱ. 본론

본론에서는 왜 독도가 우리땅인지에 대한 근거에 대하여 설명하고자 한다. 먼저 일본 외무성의 독도 영유권 주장에 대한 반박 함으로써 독도가 일본땅이 아니라는 점에 대해서 설명하고 다음으로 독도가 왜 우리나라 땅인지에 대하여 조사해보았다.

1. 일본 외무성 독도영유권주장에 대한 반박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의 주요 근거 4 가지를 제시하고 이를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여 비판하겠다.
일본주장 1 - 일본이 옛날부터 독도를 인식했다
“일본은 울릉도로 건너갈 때의 정박장이나 어채지로 독도를 이용하여 늦어도 17세기 중엽에는 독도의 영유권을 확립하였다. 에도시대 초기 1618년 돗토리번의 요나고 주민인 오야, 무라카와 양가는 막부로부터 도해 면허를 받아 울릉도에서 독점적으로 어업을 하며 전복을 막부에 헌상했다. 독도는 울릉도로 도항하기 위한 항행의 목표나 도중의 정박장으로서 또 강치나 전복 포획의 좋은 어장으로 자연스럽게 이용되었다.”
일본주장에 대한 역사적기록에 의한 일본주장의 허구성을 비판.
도매면허란, 자국의 섬으로 도항하는 데는 필요가 없는 문서로 ‘외국’에 건너갈 때 국가에서 허가해 주는 '면허장‘이다. 결국 일본은 울릉도와 독도를 자국의 영토가 아닌 외국, 즉 조선의 영토로 인식하고 있었음을 스스로 보여주는 것이다.
1) 『은주시청합기』의 기록
‘은주는 북해의 가운데에 있다. 그래서 은기도(오키 섬)이라고 말한다. (중략) 서북 방향으로 1박 2일 가면 송도(松島, 독도)가 있고, 또 거기서 하루거리에 죽도(竹島, 울릉도)가 있다. (속설에 기죽도라고 하는데, 대나무와 물고기, 물개가 많다.) 무인도인 이 두 개의 섬에서 고려(조선)을 바라보는 것이 운주에서 오키 섬을 보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일본의 서북 경계는 여기(오키 섬)에서 끝난다.’
① 17세기 일본의 서북쪽 한계는 오키 섬이라고 일본 스스로 인정하고 있으며, 울 릉도와 독도는 조선의 영토임을 인정하고 있다. 현재 일본이 주장하는 17세기 중 엽에는 독도 영유권을 확립했다는 주장이 허구임을 알 수 있다.
② 조선은 15세기 태종 이후 왜구의 노략질로부터 울릉도와 독도의 주민을 보호하 기 위해서 섬 지역의 주민을 강제로 육지로 이주시키는 쇄환정책을 추진하였다. 이 쇄환 정책은 영토를 포기한 것이 아니다. 그리고 조선은 17세기부터 일본인들 의 울릉도 고기잡이와 벌목이 문제가 되자, 일본 측에 울릉도 출입 금지를 요구하 고 약속을 받아냈으며, 1697년(숙종 23년) 4월 13일 영의정 유상운의 건의에 따라 ‘수토,순시 제도’를 채택하였다. ‘수토,순시제도’란 2년간격(매 3년째마다 1회)로 동 해안의 국경 근처에 무장한 군사들로 하여금 규칙적으로 감시 선단을 편성하여 울 릉도와 독도에 들어가서 순찰하고 돌아오는 제도였다.
태종의 쇄환정책, 숙종의 수토,순시제도는 모두 울릉도와 독도를 관리하고, 우리나 라의 영토 주권을 강력하게 행사한 관리 정책의 하나였다.

2) 일본 정부의 독도 관련 문서 - 「태정관 지령문」 (1877년 3월 20일)
‘질문한 죽도(울릉도)와 그 외의 1섬(독도)는 우리나라와 관계없다는 것을 명심할 것’
이 문서 내용은 앞서 일본이 독도 영유권 주장의 하나였던 ‘늦어도 17세기 중반에는 일본이 독도를 실효적으로 지배해 영유권을 확립했다’는 주장이 완전 거짓임
을 증명하는 자료이다. 19세기 후반까지도 일본은 울릉도와 독도를 자신의 영토가 아니라고 정부가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결정적인 자료이다.
3)일본 실학파의 최고 학자인 하야시 시헤이(1738~1793)가 1785년경에 『삼국통람도설』이라는 책을 간행하면서 그 부록 지도로 그린 「삼국접양지도」에서 국경과 영토를 명확하게 구분해서 나타내기 위하여 나라별로 채색해서 조선은 황색으로 일본은 녹색으로 채색하였다. 하야시 시헤이는 동해 가운데 울릉도와 독도(우산도)를 정확한 위치에다 그려 넣었고, 울릉도와 독도를 모두 조선 색깔인 황색으로 채색하여 조선 영토임을 명확하게 표시했다. 그렇게 해 놓고도 혹시 훗날 무지한 일본인들이 억지가 있을 것을 염려했는지, 이 지도들은 울릉도와 독도 두 섬 옆에 다시 “조선의 것으로”라고 문자를 적어 넣어,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의 영토임을 거듭해서 더욱 명확하게 강조하였다.

위 세 가지 자료를 요약해보면, 그들이 독도 영유권 주장의 근거로 든 도해면허는 사실 울릉도와 독도가 자신들의 영토가 아닌 조선의 영토로 인식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며, 17세기 중엽의 『은주시청합기』, 1877년의 「태정관의 지령문」, 하야시 시헤이의 「삼국접양지도」등에서 당시 일본의 영토 인식에는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의 영토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조선 시대의 쇄환 정책으로 비워둔 울릉도와 독도는 두 섬을 포기한 것이 아니었으며, 숙종 시대에 와서는 보다 적극적으로 수토, 순시하는 정책으로 울릉도와 독도를 관리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일본주장 2.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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