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사기와 일본서기의 편찬자와 편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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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삼국사기와 일본서기의 편찬자와 편찬과정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삼국사기의 편찬
1. 편찬자
2. 편찬과정


Ⅱ. 일본서기의 편찬
1. 편찬자
2. 편찬과정


참고문헌

본문내용
Ⅰ. 삼국사기의 편찬

1. 편찬자
『삼국사기』편찬에 참여한 편수관(編修官)은『삼국사기』끝부분에서 언급되고 있으며, 감수국사(監修國史) 김부식(金富軾)을 필두로 최산보(崔山甫), 이온문(李溫文), 허홍재(許洪材), 서안정(徐安貞), 박동계(朴東桂), 이황중(李黃中), 최우보(崔祐甫), 김영온(金永溫) 등 8명의 참고(參考)와 김충효(金忠孝), 정습명(鄭襲明) 등 2명의 관구(管句) 총 11명으로 이루어졌다.
『삼국사기』편찬을 주도한 김부식은 신라 왕실의 후예로 증조부 김위영(金魏英)이 고려 태조(太祖)가 경주(慶州)의 주장으로 임명된 이래 경주 일대에 세거하였다. 그는 만 21세 때(1096년 숙종 원년)에 과거에 급제하여 중앙 관료로 진출 하였다. 안서 대도호부(安西大都護府) 사록(司錄)과 참군녹사(參軍錄事)로 배치되었고, 임기가 끝날 무렵 직한림(直翰林)에 발탁되었으며, 좌사간, 중서사인을 역임하였다. 1121년(예종 16)에는 임금에게 경사(經史)를 강의하는 임무를 맡기도 했다. 또한 송나라에 사신으로 행차하였으며, 박승중(朴昇中), 정극영(鄭克永)과 함께『예종실록』의 편찬에 참여하여『삼국사기』를 편찬할 수 있는 중요한 경험을 쌓았다. 이 외에도 많은 관직에 올랐던 그는 전에 자신이 축출했던 정적 윤언이(尹彦頥)가 정계에 복귀하자 위기를 느끼고 1142년(인종 20) 스스로 관직에서 물러났다.
김부식은『삼국사기』를 편찬할 때 당시 학자들이 일반적으로 쓰던 사륙변려문체(四六騈儷文體) 대신 당(唐)ㆍ송(宋)에서 발달한 고문체(古文體)를 수용하였다. 고문체는 문장에서 중복되는 수식어를 쓰지 않아 문장이 간결할 뿐만 아니라 논리적으로 쓰는 효과가 있는 문체여서 역사 서술을 하는데 적절하였다. 그리고 송나라에 사신으로 행차했을 당시 사마광(司馬光)이 편찬한『자치통감(資治通鑑)』을 처음으로 구해 와서 이를 통독했는데, 이는 후에 김부식이『삼국사기』를 편찬하는데 많은 영향을 끼쳤다.
참고문헌
※ 참고문헌
Edward J. Schultz,「金富軾과 《三國史記》」,『한국사연구 73』, 1991
정구복,「김부식의 생애와 업적」,『정신문화연구 82』, 한국정신문화연구원, 2001
이강래,「[왜?]김부식은 왜『삼국사기』를 편찬했나?」,『내일을 여는 역사 제16호』, 2004
야마다 히데오 지음, 이근우 옮김,『日本書紀入門』, 민족문화사, 1988
주보돈,「《日本書紀》編纂 背景 任那日本府說의 성립(成立)」, 1998
하고 싶은 말
삼국사기와 일본서기의 편찬자와 편찬과정에 관한 레포트입니다.

좋은 성적 받으세요~ ^^